'전후반 극과극' 김성근의 한화, '성공'인가 '실패'인가

대전=김우종 기자 / 입력 : 2015.09.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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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성근 감독(좌)과 선수단. /사진=OSEN





'이런 감독, 한 명쯤은 있어도 어떠한가'


지난여름 어느 날 밤이었다. 심야 특타 훈련을 지휘한 김성근 감독이 감독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한국 나이로 74세의 할아버지 감독. 그는 유니폼 바지를 힘겹게 벗었다. 그리고 청바지를 입었다. 노구였지만 그의 허벅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탄탄해 보였다.

"감독님 언제 나와요". 경기장 밖에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는 몇 명의 팬들 그리고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 김 감독이 나오자 한 어린이 팬이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김성근 감독이 사인을 해줬다. 2~3명의 사인이 끝나자 한 청년이 또 사인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가 김 감독에게 내민 것은 두루마리 휴지 조각. "원래, 이런 데다 사인 받는 거 아니에요". 김 감독의 말을 들은 이 청년 팬은 사인을 받긴 했지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청년 팬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이어 사인을 다 마친 김 감독이 경기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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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선수단.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지난해 이글스 팬들의 염원을 등에 업고 선임된 김성근 감독이 시즌 막바지에 '사면초가'에 몰렸다. 시즌 내내 줄곧 5위를 유지했던 팀 순위도 어느새 8위까지 떨어졌다. 18일 경기서는 NC를 상대로 에이스 로저스를 선발로 냈지만 돌아온 것은 '3이닝 6실점' 강판이었다. 결국 한화는 2-15로 대패, 3연패에 빠졌다.

'5886899'.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의 지난 7시즌 순위. 2012년부터는 3시즌 연속 최하위였다. 이른바, 암흑기 동안 선수단 사이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돼'라는 '패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김성근 감독 영입 후 한화는 모든 게 바뀌었다. 코치 및 선수들의 의식, 그리고 프런트의 신속한 행정까지. 이런 변화에 이글스 팬들이 환호하고 열광했다.

전반기는 감동과 투혼이 점철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44승40패(승률 0.524), 5위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지난 시즌 전반기 승패 마진 '-20(28승48패1무·9위)'였던 팀이 1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이른바 '내일이 없는 총력전' 속에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과 끈기를 보여줬다. 이는 경기에서도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일까. 무더위 속에서도 계속 펼쳐진 '총력전', 그리고 원정지와 야간에 열린 '특훈' 속에 선수들이 하나둘씩 지치기 시작했다. 후반기에서도 전반기 같았다면 통해야 마땅했던 '권혁-박정진-윤규진'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계속해서 이들을 주로 기용했다. 아니,'겁이 나 다른 투수들을 믿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력 투수들의 투구 이닝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 18~19일 NC전에서 출전했던 한화 신진급 투수들은 난타 당하며 아직 영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김성근 감독이 '권-정-진'만 찾았던 이유를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전반기 큰 점수 차 상황서 신진급 투수들의 경험을 쌓는 것도 필요해 보였지만, 김 감독의 선택은 대부분 '권-정-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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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홈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올 시즌 한화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혹자는 5강에 반드시 진입해야 '성공'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자는 '6위면 성공, 7위면 실패'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사실은 이제 어느 팀도 한화를 얕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한화 선수들은 과거 자신들을 뒤덮었던 '패배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하면 된다'라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한화는 10개 구단 중 롯데와 함께 가장 많은 134경기를 치렀다. 62승 72패. 선두 삼성과는 19.5경기 차요, 5위 롯데와는 2.5경기 차다. 이제 한화에게 남은 경기는 10경기. 야구 경기로 치면 9회말 1아웃까지 왔다고 할 수 있을까.

한화는 19~20일 두산과 홈 2연전을 치른 뒤 2일 휴식 후 23일 마산으로 이동, NC와 1경기를 치른다. 이어 하루 휴식 후 25~26일 넥센, 이틀 휴식 후 29~30일 삼성까지 홈 4연전을 차례로 소화한다. 이 경기가 올 시즌 대전 이글스파크 마지막 홈 경기다. 이어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넥센(목동)-LG(잠실)-kt(수원)과의 '수도권 원정 3연전'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한화 이글스. 내년, 그리고 후년에도 리그는 계속된다. 5위를 못하면 또 어떤가. 최근 3시즌 연속 꼴찌를 한 팀이 1년 만에 환골탈태, SK, KIA, 롯데와 치열한 5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선두 삼성과 NC, 넥센, 두산을 상대로도 끈덕진 경기력을 연출해냈다. 매 경기, 포기란 없었다. 배영수와 송은범이 제몫을 못했고, 외국인 타자 카드가 사실상 실패했지만 팀은 단단했다. 그리고 '패배의식'을 벗어 던진 것 하나만으로도 이글스의 2015 시즌은 '성공'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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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선수단이 환호하는 모습.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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