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프로야구 717억원 FA ‘외계인 시장’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1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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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와 4년 84억원에 계약한 정우람. /사진=뉴스1





지난달 30일 야구인골프대회 아침 식사 자리에 글쓴이는 우연히 SK 민경삼 단장 옆에 앉게 됐다. 민경삼 단장은 전날 무리를 했는지 매우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는 전 소속팀 우선 협상 대상인 '정우람 선수가 80억원이 넘는 액수에도 계약을 안 하고 FA(자유계약선수) 시장으로 나갔다'고 허탈해 했다. 후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우람에게 SK가 최종 제시한 조건은 최대 82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람(30)은 올시즌 SK에서 69경기에 등판해 7승5패 16세이브11홀드 평균자책점 3.21을 기록했다. 70이닝을 던진 불펜 투수, 마무리였다. 정우람은 바로 그 날 한화와 4년간 총액 84억원에 계약하고 공식 발표했다. 단순 계산하면 연봉 21억원에 달한다.

글쓴이가 오랜 기간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면서 불펜 투수가 선발, 적어도 3선발 이내에 드는 급의 FA 계약을 맺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선발 투수에 비해 불펜, 마무리 투수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런데 한국프로야구 FA 시장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움직인다. 포스트시즌 진출,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무조건 지르고 본다. 두산이 롯데에서 투수 장원준을 영입해 마침내 우승을 차지한 것도 좋은 선례가 됐다. 흥미롭게도 정우람과 장원준은 부산 대동중 동기로 절친이고 FA 계약 조건도 4년 84억원으로 같다. 그러나 장원준은 선발이고 정우람은 불펜 투수다. 몰론 한화 김성근 감독이 정우람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금년 FA 시장에 휘몰아친 광풍(狂風)을 보며 2003년 겨울이 생각났다. 당시 쓴 글을 소개한다. 그해 200억원 시장이 펼쳐져 놀랐는데 올 시즌에는 3배가 넘는 총액 717억원 규모로 역대 신기록을 세웠다. 모 구단 단장의 말처럼 이러다 판이 깨지지는 않을까? 아래 글은 무려 12년 전인 2003년 현재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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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시절 정수근. /사진=OSEN





-한국프로야구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경제 여건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외계인' 같습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무려 2시간을 빈 차로 돌아다니다가 겨우 손님을 태웠다. IMF 때보다 먹고 살기가 더 힘들다"고 푸념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우리 프로야구계에서는 FA 시장이 달아오르자 수준급 선수 한 명에게 수십억원이 오가더니 총액 규모에서 200억원에 달하는 거래가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무조건 지르고 보자는 식이어서 철저하게 손익과 가치를 따지는 '프로 구단'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선수가 구단에게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상식인데 롯데 정수근, 기아 마해영 등 여러 경우에서 선수도 놀란 액수를 구단에서 먼저 제시했다고 합니다.  

KIA가 정재공 단장의 주도로 마해영(33)에게 4년간 28억원을 베팅한 것에 대해서는 돈이 많으니까 그랬거니 하더군요. 지난해에도 거액을 들여 박재홍 등을 데려왔다가 실패했는데 KIA는 아직도 우승 경험이 있는 삼성이나 현대 출신의 스타 선수를 무조건 잡으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구단에 대한 노하우가 적은 KIA 구단 경영진은 야구를 스타 선수 한 명이 팀 승리를 좌우할 수 있는 농구나 배구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거포에게 투자한 KIA는 낫습니다.  

야구계를 더 놀라게 만든 구단은 롯데입니다. 롯데는 두산 출신의 외야수 정수근(26)에게 무려 6년 보장에 총액 40억 6000만원의 계약을 해줬습니다. 정수근은 최고 수준의 1번 타자입니다. 그렇지만 야구에서 1번 타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습니다.

투수가 잘 던지면, 혹은 3,4번 중심타자가 큰 것 한방을 치면 팀이 승리할 수 있지만 1번 타자는 안타를 치고 나가 도루하고 후속 적시타 때 홈을 밟으면 1점입니다. 1점으로 팀이 승리할 수 있습니까? 롯데는 백인천 감독을 영입했다가 지난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야구를 아는 이상구 단장이 1번 타자 요원과 또 이런 계약을 했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냉철한 접근에서 나온 판단이라기보다는 롯데도 돈을 쓴다는 것을 꼭 보여주려다 보니까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년 장기 계약은 실패할 경우 팀을 회생 불능 상태로 만듭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 한 명과 거액의 장기 계약을 피합니다. 돈이 한 선수에 몰려 자칫하다가는 구단 경영의 유동성을 잃게 됩니다. 정수근은 지난 시즌 부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롯데는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신체검사는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안 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는데 구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신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는 KIA, LG 등도 계약의 기본을 무시하거나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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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박찬호. /AFPBBNews=뉴스1





텍사스 레인저스는 박찬호와 5년 장기 계약을 하면서 신체검사를 마친 뒤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했습니다. 텍사스가 780억원을 보장해준 박찬호는 신체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는데도 허리 부상이 발견됐고 현재 팀은 재건이 어려워졌습니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에서는 양 팀이 합의한 트레이드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골드글러브를 무려 9번이나 수상했던 유격수 오마 비스켈이 고향팀 시애틀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시애틀은 카를로스 기옌을 클리블랜드로 보내고 클리블랜드에서 시애틀의 프랜차이즈 스타 오마 비스켈을 받기로 합의했으나 다음 날 실시 된 신체검사에서 오마 비스켈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트레이드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된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떤 슈퍼스타도 구단의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계약이 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 우스웠던 일은 롯데가 FA로 영입한 정수근과 이상목의 신체검사를 뒤늦게 실시해 아무 이상이 없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느닷없이 신문 지상에 두 선수가 건강하다는 기사가 나와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설사 이상이 발견돼도 계약을 무효화 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데 왜 그런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에는 한국 프로야구가 기본을 더 중요시하고 야구단 경영도 프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후기> 위 글을 쓰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KIA는 6년 후 조범현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1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마해영이 은퇴한 후였다.

롯데는 1984년과 1992년 강병철 감독의 지휘하에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후 23년 째 우승과 거리가 멀다. 당시 파격적으로 영입한 정수근과 이상목도 팀 경기력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포스팅을 거쳐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한 '한국형 홈런왕' 박병호의 계약 조건이 4년간 1200만달러(한화 약 139억원)로 기대에 못 미친 것을 주목해보자. 메이저리그는 평가에 객관적이고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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