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거포, 그들의 또 다른 이름 '애물단지'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12.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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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럼보. /AFPBBNews=뉴스1



메이저리그 오프시즌인 ‘스토브리그’가 크리스마스 연휴라는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미지근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급 마무리 투수들에 대한 쟁탈전은 역대 최고 수위로 달아올랐지만 프리에이전트(FA) 클래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선발투수 쪽이 이렇다 할 대어가 없는 탓에 분위기가 썰렁한데다 타자 쪽에서도 전체적으로 예년과 같은 열기를 느끼기 힘들다.


여러 포지션 가운데 특히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위기를 보이는 곳이 가장 많은 거포들이 몰려 있는 1루수와 지명타자들이다. 이번 오프시즌 FA들 가운데 최고 대박을 터뜨릴 후보로 꼽혔던 에드윈 인카나시온(전 토론토)이 거의 ‘찬밥’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을 비롯, 마크 트럼보(전 볼티모어), 마이크 나폴리(전 클리블랜드), 크리스 카터(전 밀워키) 등이 아직도 미 계약 상태로 남아있다. 이들 4명의 올해 평균성적은 41홈런과 108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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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엔카나시온 /AFPBBNews=뉴스1


이번 오프시즌에 1루수와 지명타자 자원으로 FA로 나서 현재까지 계약을 얻은 행운을 잡은 선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피츠버그 시절 강정호의 절친이었던 숀 로드리게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2년 1,100만달러에 계약했고 스티브 피어스가 토론토와 2년 1,250만달러, 미치 모얼랜드가 보스턴과 1년 550만달러에 계약한 것이 1루 쪽의 전부다. 지명타자 쪽에선 카를로스 벨트란이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년 1,600만달러, 켄드리 모랄레스가 토론토와 3년 3,300만달러에 계약한 것이 전부다. 모두 눈이 번쩍 뜨일 빅딜은 아니다.


그런데 이 리스트에 빠져 있는 계약이 하나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가 이안 데즈먼드를 5년간 7,000만달러에 붙잡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 포지션이 외야수(센터필더)인 데즈먼드는 콜로라도에서 1루수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루수/지명타자들 입장에선 가뜩이나 빈자리가 없는데 외야수가 들어와 이번 오프시즌 포지션 최고 계약을 가져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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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와 계약을 체결한 이안 데즈먼드 /AFPBBNews=뉴스1


최고 파워히터들인 이들이 이런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보니 이들 다음 레벨로 분류되는 그룹들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페드로 알바레스(전 볼티모어), 마크 레널즈(전 콜로라도), 애덤 린드(전 시애틀), 로건 모리슨(전 탬바베이) 등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썰렁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전망이다.

그리고 아직 메이저리그 복귀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이대호(전 시애틀)의 경우도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될 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새 팀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들 가운데 워낙 많은 선수들이 아직도 팀을 찾고 있어 구단들이 선수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바이어스 마켓’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들 선수들에 대해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어야만 이대호가 갈만한 새로운 팀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이대호가 내년에도 메이저리그 도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어쩌면 지난해와 같은 시점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처럼 거포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올해 오프시즌이 특이하게도 파워히터들에게 불리한 분위기로 가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중 하나는 최근 그동안 파워포지션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숏스탑과 3루수, 2루수, 포수 등에서도 많은 홈런을 치는 선수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소위 1루수/지명타자로 대표되는 파워히터들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홈런은 총 5,610개에 달한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근래 가장 홈런이 적게 나왔던 지난 2014년 4,186개와 비교하면 무려 1,424개나 치솟았고 지난해(4,909개)에 비해서도 701개가 더 늘어났다.

팀당 홈런평균은 187개로 지난 2000년 이후 단연 가장 많다. 이 기간 중 올해를 제외하고 팀당 평균홈런이 가장 많았던 해는 지난 2000년과 2001년, 그리고 2004년으로 모두 182개를 기록했고 이후 2003년(174개)과 2006년(180개)을 제외하면 170개를 넘겼던 해도 없었다. 올해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많은 홈런이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많은 홈런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방망이로 먹고사는 파워히터들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표적인 수비형 포지션인 2루수만 봐도 브라이언 도저(미네소타)가 무려 42홈런을 때렸고 30홈런 이상을 친 선수가 4명, 20홈런을 넘긴 선수는 14명에 달한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절반 정도가 수비가 우선인 2루수 포지션에 20홈런 이상을 때리는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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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소속이었던 브라이언 도저 /AFPBBNews=뉴스1


또 다른 수비형 포지션 유격수에도 20홈런을 넘긴 선수가 12명에 달한다. 반면 1루수로 20홈런을 넘긴 선수는 17명으로 2루수에 비해 단 3명이 많을 뿐이고 지명타자로 올해 2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10명에 불과하다. 물론 지명타자는 아메리칸리그에만 있는 포지션이기에 직접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타격만 하는 포지션이라는 점에선 분명히 기대에 못 미친다. 홈런은 1루수나 지명타자 포지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그동안의 선입견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통계 수치로 봐도 올해 메이저리그 1루수들이 기록한 OPS+ 114는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엄청난 돈을 쓰면서 1루수나 지명타자 거포를 영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다른 포지션에서 ‘대포’들을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면서 구단들이 슬러거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기를 주저하는 추세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슬러거들 상당수가 제대로 맞추면 언제라도 펜스를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콘택트 능력 자체는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앞서 언급된 거포 4인방 가운데 카터는 올해 시즌 41홈런과 94타점에도 불구, 타율과 출루율이 0.222와 0.321에 그치고 삼진은 메이저리그 전체 2위인 206번을 당하면서 결국 밀워키에서 내년 계약을 받지 못하고 방출됐다. 나폴리도 34홈런과 101타점에도 불구, 타율 0.239, 출루율 0.335와 194삼진(ML 3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47홈런으로 메이저리그 홈런왕에 오른 트럼보는 이들에 비해 다소 괜찮은 편이고 외야수로도 뛰었다는 점에서 약간 차별화가 되지만 여전히 낮은 타율과 높은 삼진 비율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시즌 WAR 수치(베이스볼 레퍼런스)를 살펴보면 카터 0.9, 나폴리 1.0, 트럼보 1.6으로 높은 홈런-타점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것도 이들의 가치가 생각만큼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직 인카나시온(42홈런 127타점)만 WAR가 3.7로 엘리트급 대열에 올랐으나 이 역시 메이저리그 전체로는 상위 50위 내에도 들지 못한다.

이밖에 이번 오프시즌에 거포들이 푸대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한마디로 1루와 지명타자 포지션에 빈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상위팀은 이미 기존 주전선수가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하위팀들의 경우는 빈자리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플레이오프 도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거액을 써가며 거포를 영입해야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에 이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계약할 팀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기 전에 이들은 대부분 거액의 계약을 받고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래 원했던 기간과 액수에 맞는 계약을 얻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파워만 뛰어나고 볼을 방망이에 맞추는 능력은 떨어지며 발도 느리며 수비에서도 뛰어나지 못한 거포들은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메이저리그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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