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스크린 뒤에는..' 짙은 애정-깊은 시선의 영화에세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영화 에세이 모음 '스크린 뒤에는..'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0.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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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2번째 영화에세이 '스크린 뒤에는..' 표지


"한 마디로 영화는 우리에게 스크린에 환영을 보여 줄뿐이다. 한 번 비쳐지면 바로 사라지는 실재 없는 그림자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우리 마음에는 오래가는 파장을 남겨준다….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 눈으로 스크린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감탄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감동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캐릭터와 동화되기도 하고 캐릭터를 미워하기도 하고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바로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쓴 영화책. 저자의 이력과 언뜻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에세이집 '스크린 뒤에는..'은 뻔한 예상을, 아니 흔한 편견을 빗나간다. 기업 인수합병을 가르치는 법학자 겸 로스쿨 교수의 눈으로 영화를 따지고 분석한 결과물이 아니라, 영화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분야를 망라하는 디테일로 풀어낸 '영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배우와 감독, 그리고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는 48편의 글을 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볼 맛 나는 할리우드 영화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한가득 대화를 나누며 근사한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지난해부터 스타뉴스를 통해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를 연재하며 할리우드 영화와 그 주역들을 조명해 온 김화진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학교 'SNU in Creative California' 프로그램 강의 내용을 더해 '스크린 뒤에는..'을 완성했다. 이는 2014년 출간된 '영화를 바라보다'에 이은 저자의 2번째 영화 에세이집이다. 영화를 축에 두고 종으로 횡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풀어낸 글은 연재 당시에도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굴지의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자체적으로 코너를 만들어 추천해 소개했을 만큼 반향을 일으켰는데, 여러 에세이 중에서 핵심적인 글을 추리고 최신의 소식과 지면 제약으로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깃거리를 더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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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2번째 영화 에세이 '스크린 뒤에는..'이 출간됐다. / 사진=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제 1부 배우'에서는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시작으로 '톰 크루즈'까지 총 17명의 배우 이야기를 다루며, '제 2부 감독' 편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예찬'부터 '히스패닉 감독 파워'까지를 7편의 글에 담았다. 이들의 인생사부터 필모그라피, 직업관, 직업관, 주변의 평가까지 다양한 면면을 살폈는데, 관객을 대신해 여러 인생을 살아주는 배우와 영화의 마법을 진두지휘하는 감독들에 대한 저자의 오랜 관심과 경탄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제 3부 영화'에는 가장 많은 24편의 글이 수록됐다. '영화 속의 스나이퍼', '영화 속의 피아노 음악', '돈에 대한 영화', '영화와 표현의 자유', '영화 속 명대사', '영화와 와인' 등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깨알 같은 정보와 위트 넘치는 평가를 씨줄 날줄로 엮었다.

이를테면 저자를 피아노의 세계로 인도한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홀로코스트 영화 '피아니스트'를 이야기하다가, 실화 속 연주곡은 쇼팽의 녹턴 20번이었음을 상기시키며 해당 곡이 쓰인 미미 레더 감독의 '피스메이커'를 짚고, '피아니스트' 애드리언 브로디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탈 때 흘러나온 프렐류드 E단조 작품 28-4번은 '노트북'과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등장했다고 귀띔하는 식이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멜로디처럼 경쾌하고도 유려한 리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매 글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성한 정보도 빼곡하다. 영화 전문 매체는 물론이고 로튼 토마토와 IMDB,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각종 데이터베이스, 영상 인터뷰와 토크쇼, 대담을 망라한 방대한 자료 속에서 건져낸 알짜배기 에피소드를 엄선한 결과다. 하버드 출신 저자가 슬며시 풀어놓은 하버드 교내 '장난신문' 기사도 다른 곳에선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 널리 사랑받은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느낌을 강요하거나 줄거리나 스포일러에 가급적 지면을 할애하지 않은 건 '관객'이기도 할 독자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태도다.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는 세련된 위트가 곳곳에 묻어있어 읽는 맛이 더 남다르다.

그러면서도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할리우드부터 한국까지, 세계를 뜨겁게 달군 '미투'(Me Too)를 다루면서 저자는 권력에 기댄 성폭력에 대해 "자존감을 뒤로하면서 참고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약자에게 그 알량한 힘을 마음 놓고 휘두르는 것"이라 일갈한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도처에 숨어서 비겁하게 자신의 행동을 감추거나 잊은 척하는 성희롱, 성추행의 가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가 당신 딸에게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 상대가, 새로 접한 주제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이는 법이다. 영화 에세이 '스크린 뒤에는..'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다 결국엔 사람이, 그리고 영화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장단점을 두루 소개하면서도 매력을 콕콕 짚어낸 작품이며 사람마다 글쓴 이의 애정이 짙게 배어 나오는 탓이다. 책 막바지 소개된 저자의 영화 톱10 리스트와 비교해보며 나만의 인생영화 리스트를, '보고싶은 영화 리스트'를 업데이트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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