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선 '구아이링', 1200억 벌고 다시 스탠포드 '에일린 구'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2.02.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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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구가 지난 18일 베이징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지난 20일 폐막한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는 유달리 '스포츠 노마드(유목민)'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세계화가 만든 이른바 '스포츠 노마드'는 스포츠를 통해 자유롭게 국적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선수나 코치 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축구 등 적지 않은 스포츠 종목에서 많이 나타났다.


동계 올림픽과 관련해서도 개최국으로 귀화하는 선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아이스하키 종목이 중심이 됐던 귀화선수들의 등장은 지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 베이징 대회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중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으로 출전한 25명 중 귀화 선수가 19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골리 제러미 스미스와 같은 이중국적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 법은 이중국적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일부 중국 선수의 이중국적을 허용했다. 스미스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도 뛰었던 미국인이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중국으로 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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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는 에일린 구. /AFPBBNews=뉴스1
이중국적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의 주인공은 미국인으로 성장했지만 2019년 중국 국가대표 선수가 된 스키 프리스타일의 여제 에일린 구(19)이다.


이중국적에 대해 엄격한 중국 법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는 에일린 구는 중국 대표 선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9일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중국은 사실상 에일린 구의 이중국적을 묵인했다.

중국 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동안 그의 이름은 미국식 에일린 구가 아닌 중국식 구아이링으로 불렸다. 그는 동계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중국의 기대에 부응했다. 에일린 구가 획득한 금메달 2개는 크로스컨트리 강국 노르웨이(금메달 16개)와 썰매 왕국 독일(12개)에 이어 중국(9개)이 이번 올림픽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스타로 부상한 그는 12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에일린 구는 올림픽 이후 미국행을 선언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선수로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올림픽이란 축제가 끝났으니 중국의 구아이링이 아니라 미국의 에일린 구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1980년 이중국적을 금지했다. 이중국적 허용은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한 충성심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중국 역시 미국과 같은 이중국적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오히려 엄청난 재능을 가진 미래 중국의 인재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로 유출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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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구의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중국적에 관해 중국 정부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기 힘들었다. 2009년 중국 민족주의와 민족적 자부심 고양을 위해 제작된 '건국대업'이란 영화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외국 국적자가 포함돼 있었고 중국인들은 이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현행 이중국적 금지법에 찬성하고 있다. 이번 에일린 구의 경우처럼 만약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면 그들이 중국에서 돈을 벌어 해외로 떠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파워만 놓고 보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 초일류 국가다. 하지만 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소프트 파워의 부재였다. 중국으로 더 많은 세계인들을 끌어 들이기에는 그만큼 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여전히 문화적 소프트 파워가 강력한 세계의 중심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는 중국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인재 유출을 줄이기 위한 이중국적 허용과 중국의 단결을 위한 이중국적 금지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절충안은 어쩌면 에일린 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실용주의를 최우선으로 삼는 21세기 '스포츠 노마드'의 전형이었다. "중국에 있으면 중국인이고 미국에 있으면 미국인"이라는 에일린 구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어쩌면 이제 에일린 구를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올림피언(올림픽 참가자)'로 부르는 게 더 적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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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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