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정호연, 또 美에서 벼락스타 취급..왜 부끄러움은 그들 몫이 아닌가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22.03.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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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와 정호연이 '오징어게임'으로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AFPBBNews=뉴스1
언제쯤 한국배우들에 대한 미국 기자들의 무례가, 무식이, 무지가 사라질까.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수상한 뒤 또 다시 벼락스타 취급을 받았다. 두 사람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LA 샌타모니카 바커행어 이벤트홀에서 열린 제28회 미국배우조합상에 참석했다. 미국배우조합상은 조합에 소속된 배우들이 직접 뽑는 시상식으로 그만큼 미국에서 상당한 권위를 자랑한다. 이날 이정재는 '오징어게임'으로 TV드라마 시리즈 남우주연상을, 정호연은 TV드라마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배우 개인으로서도, 한국 작품으로서도, 대중문화의 본토라 불리는 미국에서 특히 동료배우들이 수상자로 선정한 만큼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본토 기자들은, 전부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무례하다. 이날 시상식이 끝난 뒤 백스테이지에서 진행된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액세스 할리우드의 한 기자는 두 사람의 수상을 축하하며 "이제 미국배우조합상 수상자가 됐는데 무명시절 때 가장 그립다고 생각나는 게 뭐가 있냐"고 물었다. 그 기자의 수준에서 이정재와 정호연은 무명배우였다가 SAG 수상자로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된 모양이다. 어쩌면 눈물 젖은 빵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그동안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전혀 아는 바 없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정재는 1993년 데뷔한 이래 30년간 한국에서 톱스타로 지내왔고, 정호연 또한 10여 동안 톱모델로 활동해왔지만,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자기가 모르면 무명인 셈이었던 모양이다.

정호연은 이 질문에 단번에 "낫띵(없다)"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이정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이다가 정호연의 대답에 미소만 지었다.


이 영상은 유튜브로 중계된 터라, 한국팬들 뿐 아니라 해외 팬들에서도 무례한 질문이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이정재는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오징어게임' 미국 프로모션 행사에서 액스트라TV의 리포터가 "너무 유명해져서 집 밖에 못 나갈 정도로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은데"라며 "'오징어게임' 이후 어떤 변화가 있냐"고 물었다. 역시 벼락스타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이었다. 당시 이정재는 "당연히 너무 많이 알아봐 주는 수많은 분들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면서 "그건 이 미국에서다"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지난해 4월 윤여정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진행된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엑스트라TV 리포터에게 "브래드 피트 냄새는 어땠냐"는 질문을 받았다. 윤여정이 수상한 뒤 '미나리'의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를 찾으며 촬영장에는 얼굴도 안 비치더니 시상식에는 왔다고 한 걸, 저 먼 동양에서 온 나이 많은 여배우조차 브래드 피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찾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윤여정은 "나는 그의 냄새를 맡지 않았다.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톡 쏘며 말했다. 그래도 "브래드 피트는 나에게도 무비 스타이기 때문에 믿기지 않았다"면서 "그 순간이 '블랙 아웃' 됐다. '내가 어딨지?' '잘 말하고 있나?' 하고 내 친구에게 계속 물어보았다"고 말을 이었다. 상대가 무례해도 예의를 갖춰 답을 정리해준 것이다.

왜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 아니고, 재치는 그 무례함을 겪은 사람의 몫이어야 할까.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라도,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타도, 이정재와 정호연이 '오징어게임'으로 SAG에서 수상해도, 미국의 어떤 기자들, 어쩌면 미국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그들에게는 한국은 여전히 변방인 모양이다.

세계의 변방, 문화의 가장자리에서, 문화의 본토 그 중심으로 이제 막 들어온. 그래서 그들 눈에는 한국에서 무슨 업적을 쌓았든 무명이고, 이제 막 미국에서 인정해준, 그렇기에 벼락스타 취급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지금 그들 눈에는, 자기들에게서 나왔다고 여겨지는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신기하게 자라,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은 이 시기를 코리안 인베이전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1960년대 미국에서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록스타와 문화가 인기를 끌자, 그걸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고 부른 것처럼.

윤여정은 "최근 미국에서 한국 콘텐츠들이 왜 인기가 많은 것 같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서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왔고, 그걸 이제서야 너희들이 알아차린 것"이라고.

벼락스타가 된 소감을 물은 걸, 두고두고 부끄러워할 날이 곧 올 것이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깐.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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