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못 나가면 책임지겠다" 감독의 강한 책임감, VNL 24연패 전에 나왔으면 어땠을까

수원=김동윤 기자 / 입력 : 2023.06.28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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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에르난데스 한국 여자 배구국가대표팀 감독. /사진=VNL 공식 홈페이지
한국 여자배구의 현주소일까 아니면 감독의 관리 소홀일까.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세자르 에르난데스(46) 감독 체제에서 국제 무대 1승 25패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로 한정하면 2021년 이후 무려 24연패다.

한국 대표팀(세계랭킹 32위)은 지난 27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VNL 3주 차 첫 경기에서 불가리아 대표팀(세계랭킹 16위)에 세트 스코어 1-3(22-25, 18-25, 26-24, 15-25)으로 패했다.


불가리아는 한국에서 열리는 3주 차 경기에서 가장 해볼 만한 상대로 여겨졌다. 도미니카공화국(29일·세계랭킹 10위), 중국(7월 1일·세계랭킹 5위), 폴란드(7월 2일·세계랭킹 8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팀으로 분류됐고, 이날 한국과 경기 전까지 1승 7패(승점 5)로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불가리아는 공격 범실 32 대 33, 서브 득점 6개로 동률 등 세계랭킹 16위에 걸맞은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평균 180.1㎝인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신장(183㎝)을 앞세워 블로킹에서는 13 대 4로 앞서 나갔지만, 높이의 아쉬움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실책성 플레이와 매끄럽게 공격으로 이어주지 못하는 수비로 인한 아쉬움이 더 컸다. 18득점의 김다은, 11득점의 강소휘, 서브 에이스 3개를 기록한 김다인이 보여준 공격력은 그나마 위안이다.

경기 후 세자르 감독도 "충분히 잘 싸웠고, 불가리아를 밀어붙일 수 있어 좋았다. 비디오 미팅 때 말했던 플레이를 할 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수비와 서브가 부족했고 중요한 순간에 1~2개를 놓쳐 달아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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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에르난데스 한국 여자 배구국가대표팀 감독(왼쪽)과 기뻐하는 선수들. /사진=VNL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정말 불가리아가 이기지 못할 상대였는지, 전술상 아쉬움은 없었는지 의문을 낳는다. 예를 들어 선발 미들블로커로 투입된 정호영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아 보였지만, 좀처럼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교체 투입된 선수들도 뒤늦게 투입돼 대부분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세자르 감독이 과연 선수단의 기량과 현재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고 있는지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세자르 감독은 그동안 튀르키예 여자배구리그 바키프방크 SK의 코치를 맡으면서 한국 대표팀을 겸임해 왔다. 지난 14일부터는 프랑스 여자배구리그의 넵튠스 드 낭트의 사령탑으로 재직 중이다. 그 탓에 한국 대표팀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번 VNL도 진천 합숙훈련에는 한유미 코치와 김연경 어드바이저가 참여했을 뿐 세자르 감독은 화상 회의로만 참여하다가 1주 차 경기가 열린 튀르키예에서 합류했다.

자연스레 대표팀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그는 "그런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겨울 시즌에는 클럽, 대표팀에서는 대표팀에 집중한다. 오히려 내게 불만을 가져야 할 건 클럽팀 같다"고 딱 잘라 답했다. 이어 "게임 전술 준비에는 문제가 없다. 그보단 선수들이 세계의 수준을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직 부족하다. 국제 수준의 퍼포먼스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VNL 초반 연습이 부족한데 훈련을 하다 보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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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사진=대한배구협회 공식 SNS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당장 2020 도쿄올림픽 4강을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44) 감독도 당시 이탈리아 여자배구리그 세리에 A1의 이고르 고르곤졸라 노바라 사령탑을 겸했었다. 김연경, 양효진 등 2020 도쿄올림픽 당시 멤버들에 비해 지금 선수단이 아직 국제 수준의 퍼포먼스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공·수에서 활약한 강소휘조차 "세계적인 선수들과 차이가 너무 나니까 부끄러웠다. 국내에서 너무 안일하게 배구하지 않았나 반성도 많이 했다"고 자책할 정도로 기량 차이는 확실하다.

하지만 세자르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부임한 지가 벌써 1년 8개월째다. 연패에 빠지는 사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 예선전이 코앞이다. 성과를 내줘야 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연습 부족과 성장 그리고 투지를 운운하는 세자르 감독의 말은 여자배구 대표팀에는 아쉽게 들릴 수밖에 없다.

세자르 감독은 "대회 이후 KOVO컵을 계속 체크하고 그동안의 VNL 경기를 분석해 아시안게임과 파리 올림픽 예선전을 뛸 16명의 선수를 부를 예정"이라면서 "국제배구연맹(FIVB)의 랭킹 시스템 탓에 올림픽에 가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상위 랭크 팀과 경기가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면 감독으로서 상응하는 책임도 질 것이다. 협회와 상의해서 대표팀 방향을 두고 논의하겠다"고 나름의 계획은 밝혔다.

생각해보면 최선은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만약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그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한국 여자배구는 지난 2년을 허송세월한 셈이 된다. 이러한 강한 책임감이 24연패에 빠지기 전에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강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아직 1승 25패의 과정 속에서 세자르 감독만의 색깔과 방향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경기를 준비할 때 항상 이기려고 한다. 지난 25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이 경기도 결과는 패배였지만, 성장하는데 일조했다고 믿는다"면서 선수들이 성장했고 무언가를 얻었다고 말한다. 한국 배구계는 그 말이 남은 경기에서 실현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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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국가대표팀 선수단. /사진=VNL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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