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척척박사] 2-15. 골프 치러 갈 때 설레는 이유

채준 기자 / 입력 : 2023.12.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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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골프장 부킹이 되는 순간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평소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골프만 생각하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특히 골프장 가기 전 날 밤에는 설레는 기분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다.


아침 라운드가 예정돼 있다면 새벽에 몇 번 깨기도 한다.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걱정하는 한편으로 골프 치러 간다는 설레임으로 깊게 잠이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소풍갈 때 기분처럼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골프 초보자든, 오랜 경력의 골프 고수든 모두가 느끼는 공통된 심리 현상이다. 이른바 '골프 엑스터시(Ecstasy)'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를 통해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현상이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종목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골프 대디', '골프 과부'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찍 나가든 점심 먹고 나가든 골프를 치러 일단 골프가방을 매고 나가면 거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빼어난 자연 환경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라운드 약속을 했으면 가족상 이외에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것이 골퍼들의 불문율(?)이 있는 것도 골프의 특성을 보여준다. 골프는 자신도 즐겁지만, 남들도 함께 즐겁기 때문에 무조건 골프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골퍼들은 세상에서 골프만한 운동이 없다고 말한다.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고, 프로든 아마추어든 경기력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불구하고 같이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대 골퍼가 싱글을 치기도 하지만, 10대 이하의 어린 나이에도 300m의 엄청난 비거리를 낸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골퍼들이 가장 많이 꼽는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재미있는 공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천상의 낙원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필드에서 하얀 공을 치는 것은 '신선 노름'이 따로 없다고 한다. 또 18개 홀을 지나며 각각의 홀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게 골프의 매력이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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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목 마니아들과 다르게 골퍼들이 유달리 골프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러던 차에 수십년전 읽었던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 종교학자이자 문학가인 머치아 엘리아데(1907~1986)의 대표적 저서 '성과 속'을 다시 찾아 보게됐다. 호기심을 갖고 읽다보니 뜻밖에도 골프를 치기 전에 설레는 이유가 신성한 것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엘리아데는 '거룩함'이라는 개념으로서 종교를 단순히 '믿음'의 차원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독일 종교현상학자 루돌프 오토 중심의 비합리적 사고에서 벗어나 '체험'의 차원에서 종교를 설명해 인간이 본질적으로 종교와 '불가분한' 존재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종교학 연구에 있어서 그는 성과 속의 문제를 합리성-비합리성, 자연성-초자연성과 같이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양자택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체험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면서도 합리적인 것에서 비합리성을 '재현'하는 다시 말해, 성과 속의 '총체성'에 기반해 바라보고자 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종교적 인간일 수 밖에 없고, 인류의 시작 초기부터 일정한 종교 체험을 해왔다. 인간은 성과 속을 구분하고 가능한 한 성에 가까이 있고자 하며, 인간의 조건의 한계를 느끼고 막연하지만 구원을 갈망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인은 세속적인 것 안에 깃들여 있는 성스러움을 더 이상 음미하지 못하게 된 존재이다. 근대인은 오직 속된 것과 물질적인 것만이 가치의 전부인 것 양 여기는 유별난 시대의 인간인 것이다. 근대인에게 공간은 어디에나 늘 똑같은 공간이고, 시간은 시계의 시간처럼 언제나 균질적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런 관점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고대인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전(前) 근대인은 그 의미와 중요성에서 늘 성스러운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츠사회학자 앨런 거트만은 자신의 명저 '근대스포츠의 본질-제례의식에서 기록추구로'에서 근대스포츠는 고대 그리스 제례의식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포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신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세상을 만든 태초에 나타난 신들의 성스러운 시간과 맞닥뜨리는 기회를 스포츠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를 모토로 삼아 신의 모습을 닮으려고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근대스포츠는 고대 그리스에 발생 기원을 갖고 원초적인 종교적 개념과 관계가 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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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포츠 종목은 수 없이 많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행해지던 레슬링, 육상 등으로부터 근대 시대에 들어 영국에서 시작한 축구와 골프 등 많은 종목들이 세계적으로 보급돼 있다. 이 가운데 골프에 유독 마니아층이 두터운 것은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세속적인 것과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 까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성스러움이 포함되면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아닐까 싶다.

골프장은 자연 속에 사람이 만든 '성전' 같다. 빼곡이 들어찬 아름드리 나무와 우거진 숲, 화려한 꽃과 연못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골프장을 보면 '지상의 낙원'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잔디 구장인 18개 홀에서 골프라는 종교를 위한 미사가 연속해서 이어진다. 경기장 안에 잔디가 깔려있고 사람들은 마치 구도자처럼 공이 잘 맞기를 바라면서 걷는다. 심판이 따로 없고, 운동하는 사람끼리 스스로 규칙을 배워 행할 뿐이다. 골프 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스러운 질서와 속된 것의 혼동을 막으려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골프는 자연과 함께 하면서 다른 종목과 다른 특징을 갖게 됐다. 골프 맛을 한 번 본 이라면 거기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골프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운동서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영험이 깃든 환경에서 운동을 하며 육체와 정신을 단련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신비적 체험을 통해 영혼이 비상하며 현실적인 세계를 잠시 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골프장은 일상 생활에서 격리된 공간적 장소를 갖는다. 골프장은 대개 일반 주거 시설과 별도로 분리돼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골프장에 '컨트리 클럽(country club)'이라는 이름을 붙인데서도 이러한 공간적 분리를 잘 읽어낼 수 있다. '시골'이라는 의미의 '컨트리'와 모임을 뜻하는 '클럽'의 합성어인 '컨트리 클럽'은 골프장의 특성을 잘 드러낸 단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사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쾌적한 환경을 만든 것이다.

골프장에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여러 상징적인 것들이 많다. 페어웨이와 러프, 벙커와 해저드 등은 다양한 장애물이 펼쳐져 있다. 골프는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극적인 인생 항로를 펼쳐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면 속세에서 벗어나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가는 생각을 갖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펼쳐진 대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려 정겨운 담소를 하며 산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때문에 골프를 나가는 날은 마냥 설레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세속을 벗어난 성스러움을 느끼기까지 한다니 더욱 그런 마음을 갖게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학수 CST선임연구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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