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CC 개론] 58. 글로벌 LCC 공통, 기존항공사의 가격대응③

채준 기자 / 입력 : 2024.02.14 10:15
  • 글자크기조절
image
/사진제공=제주항공


2006년 6월초 제주항공이 김포~제주 노선의 운항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는 항공운임 인하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시아나항공이 제주항공의 5만9100원보다 20원 더 싼 요금으로 견제에 나서면서 "굳이 제주항공을 탈 필요 없다"는 타깃전략을 펼쳤고, 이로 인해 제주항공이 받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항공이 가세했다. 대한항공은 6월 국내선 인터넷 특별할인행사에 들어가면서 19개 국내선에서 5~25% 할인했다. 할인대상 노선에 제주기점 전 노선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김포~제주 노선은 주중 최대 20%까지 할인해 5만8720원을 받고 적용편수도 지난달보다 크게 늘렸다.

대한항공이 8만4400원을 받던 김포~제주 노선 운임을 제주항공이 5만9100원을 받겠다고 하자 아시아나항공이 5만9080원으로 내렸고, 이어 대한항공도 5만8720원을 제시했다. 끝없이 오르기만 하던 제주노선 항공운임이 가격파괴 수준의 할인이 잇따르자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기존항공사들의 파상공세가 잇따르자 궁지에 몰린 제주항공은 궁여지책으로 추가할인을 발표했다. 6월 한 달간 취항기념이라는 명분으로 서울발 오후편과 제주발 오전편에 한해 4만6300원으로 내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견제에 다시 제주항공이 대응하면서 국내 항공업계는 거센 가격파괴 바람이 불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해 온 국내 항공시장이 처음 3자구도로 재편되면서 그동안 국제유가 급등을 사유로 줄곧 오르기만 했던 김포~제주 노선 왕복 항공요금이 10년 만에 9만원대로 떨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서울과 제주 노선을 왕복 9만2600원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1만원짜리 항공권이 나온 적도 있지만 왕복 10만원 밑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image
/사진제공=pixabay


국내 항공시장에서 운임인하 경쟁이 펼쳐진 것은 2005~2006년이 사상 처음이었다. 이는 K-LCC 취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한성항공이나 제주항공이 취항하기 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존항공사들은 1999년 항공요금 자율화 이후 2001년 평균 14%, 2004년 평균 8% 각각 인상했다. 그 때마다 유독 제주도에서 거세게 반대했지만 운임인상은 대부분 원안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제주도민을 다소나마 달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지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제주도민 특별할인 카드를 썼을 뿐이다.

기존항공사들은 K-LCC 본격 취항 이후에는 철저하게 국내선 운임동결 카드를 활용했다.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던 기존항공사들이 국내선 운임을 거의 8년 동안 동결했다. 운항원가는 계속 상승했지만 절대 국내선 운임을 올리지 않고 버텼다. K-LCC들의 국내선 운임기준이 기존항공사 대비 20~30% 저렴하게 책정되는 것이 요인이었다. 기존항공사가 국내선 운임을 현실화하면 자동으로 K-LCC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또 그 같은 함수 안에 숨은 이유가 더 있었다. 기존항공사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매출비중은 한자리 숫자였지만 K-LCC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매출은 100%였다. 구체적으로는, 2007년 상반기 기준 당시 기존항공사 전체매출 가운데 국내여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7%였고, 나머지는 국제여객 53%, 화물 28% 등이었다. 따라서 기존항공사의 국내선 운임 인상이 자신들에겐 작은 이익인 반면 K-LCC들에게는 절대이익이 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때문에 기존항공사의 8년에 걸친 국내선 운임동결은 K-LCC들의 숨통을 조이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대한항공의 뜻(?)으로 국내선 운임이 동결되어 있던 8년 동안 K-LCC들은 죽어 나가는 실정이었다. K-LCC 업계의 운임 기준은 취항 초기에는 대한항공의 70%였고 이후 80%로 조정됐다.

image
/사진제공=pixabay


이 같은 상황은 K-LCC들의 국제선 취항이후 급변했다. K-LCC 선두주자들이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국내선 비중이 급격히 떨어져 국내선 운임동결이 더 이상 K-LCC의 경영압박에 효과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기존항공사들은 다시 국내선 운임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K-LCC 출범 이후 K-LCC에 대한 경영 압박 목적으로 국내선 운임을 동결하자 사실상 두 기존항공사는 국내선에서 적자 상태였고, K-LCC들은 회사 전체 수익에서 적자였다. 때문에 K-LCC들은 기를 쓰고 국제선 취항에 도전했고, 기존항공사들은 기를 쓰고 K-LCC들의 국제선 취항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곤 했다.

지금도 국내 항공업계는 국내선 운임 인상의 첫 단추는 늘 기존항공사의 몫이다. 어느 K-LCC도 국내선 운임 인상을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치고 나가는 경우는 없다. 여러가지 인상 요인이 누적되면 대한항공이 국내선 운임 인상을 발표하고, 나머지 모든 국적항공사들은 속속 인상 대열에 동참하는 눈치게임이 여전하다.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간혹 국내 항공업계의 담합으로 의심되어 공정위 조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담합이라기보다는 항공업계의 생태계에 따른 현상이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

image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