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CC 개론] 60. 글로벌 LCC 공통, 공항 갈등 ②

채준 기자 / 입력 : 2024.02.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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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우리나라의 전체 공항 중 민영항공사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총 15개다.

이 가운데 정식명칭에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8곳은 국내선과 국제선을 동시에 운항할 수 있다. 반면에 '국제'라는 글자가 빠진 채 '공항'으로만 되어 있는 7곳은 국제선은 안되고 국내선만 운항할 수 있다. 또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공항이 적고, 멀수록 공항이 촘촘하다. 그리고 어느 도시든 단일공항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 LCC가 빠르게 성장한 국가의 주요 도시 주변에는 대개 2개 이상의 공항이 존재한다. 그래서 신공항이나 설비가 뛰어난 공항이나 시내에서 가깝다는 장점 등을 가진 이른바 주요공항(Primary Airport)은 기존항공사(FSC)들이 이용하고, 구공항이나 설비가 다소 떨어지는 공항이나 도심 외곽의 2차공항(Secondary Airport)을 LCC들이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항공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항은 신생 LCC에게 카운터 제공에 비협조적이고, 무엇보다 슬롯(Slot, 항공기가 공항에서 해당시간을 배분 받아 이?착륙 등을 허가 받은 권리) 확보가 용이하지 않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K-LCC들은 각 공항에서 슬롯 확보를 위해 기존항공사와 열위의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K-LCC가 없던 시절에는 전국 모든 공항을 두 기존항공사가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었는데, 2005년이후 K-LCC가 생겨나면서 그동안 공고히 유지되었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존항공사의 반발이 워낙 거셌다.

K-LCC 취항이 임박하면 운항예정 노선의 각 공항마다 카운터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김해공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개사 만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제주항공이 처음 진입하면서 2006년 4월 공항측은 기존항공사에게 수하물 수속카운터 2개씩을 반납하라고 전달했다. 김해공항 국내선터미널에는 대한항공이 체크인카운터 16개를 포함 모두 26개의 카운터를, 아시아나항공이 체크인카운터 8개 등 16개의 카운터를 각각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비해 우리가 여객운송능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3배나 큰 항공사인데 카운터 수를 똑같이 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거부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체크인카운터 8개 중 2개를 반납하면 항공사 업무가 불가능해진다"며 버텼다. 제주항공은 "기존항공사들의 카운터 반납이 늦어지면 취항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이는 기존항공사의 신생항공사에 대한 영업방해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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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pixabay


K-LCC 숫자가 더 늘어난 2008년, 제주공항은 신생항공사들의 잇단 제주 취항에 체크인카운터를 추가 설치해야 했다. 공항측은 연초부터 터미널 공간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상업시설을 빼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기존항공사와 협의가 특히 난항이었다. 기존항공사들은 "LCC 취항에 따른 카운터 설치를 위해 우리에게 카운터 반납과 수하물처리시스템 공동사용 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며 반발했다. 이에 제주공항은 "기존항공사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LCC를 방해하는 처사"라며 공개 비난하는 등 갈등이 심했다.

이처럼 K-LCC의 신규 취항을 둘러싼 카운터 배정 및 정비사무실 확보 등을 둘러싼 갈등은 최소 10년이상 전국 주요 공항에서 빚어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나 라이언에어 등 해외의 성공한 LCC들이 기존항공사가 사용하지 않는 서브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삼은 데 비해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공항 현실에서는 필연적이었다.

K-LCC가 출범한 지 10년이 지나 국내선은 K-LCC가 기존항공사보다 2.5배 더 태우는 시대가 열린 2015년에도 이 같은 상황은 여전했다. 당시 K-LCC의 국내선 수송분담율은 빠르게 늘었지만 국내 공항의 탑승수속시설은 여전히 기존항공사가 장악했다. 국내선 주요공항의 탑승수속시설 점유율은 기존항공사가 체크인카운터와 탑승게이트의 60%를 차지했다. 특히 김포공항은 체크인카운터의 66%, 제주공항은 60%가 기존항공사의 몫이었다. 항공수요와 취항항공사 증대로 기존항공사가 양분해서 사용하던 탑승수속시설을 후발업체인 K-LCC와 재분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각 공항에서 기존항공사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는 K-LCC의 잦은 탑승 대기시간 지연 등 서비스 저하와 이용객의 불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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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제주항공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2016년 5월 2∼3일, 태풍급 강풍으로 제주공항을 오가는 국내선 항공편이 전편 결항됐다. 이틀 동안 제주공항 대합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기존항공사 카운터는 붐비지 않는데, 유독 K-LCC들의 카운터 앞만 엄청나게 긴 줄이 서 승객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상반된 풍경은 눈썰미 좋은 기자들에 의해 사진과 영상으로 찍혀 K-LCC업계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K-LCC들은 속절없이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속사정은 한참 뒤에 통계가 나오면서 밝혀졌다. K-LCC의 카운터가 이용객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생긴 현상이었다. 2016년 1분기 제주공항 국내선 카운터 1곳당 처리승객은 제주항공이 4만2671명으로 국적항공사 중 가장 많았다. 카운터 1곳의 처리승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이다. 이어 이스타항공 3만2904명, 티웨이항공 3만1114명 순으로 많았다. 자회사형 LCC들인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2만9906명, 2만6822명으로 아시아나항공 3만883명보다 적고, 대한항공 2만1765명보다는 많았다.

같은 기간 출발편 이용객은 대한항공 58만7648명, 아시아나항공 55만5893명이었다. 제주항공은 51만2053명으로 50만명을 넘고, 다른 K-LCC들도 20만~30만명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운터 숫자는 체크인·발권카운터를 합쳐 대한항공 27곳, 아시아나항공 18곳, 진에어(부산전용 4곳 포함) 14곳, 제주항공 12곳, 티웨이항공 10곳, 이스타항공 9곳, 에어부산 9곳 등이었다. 결항사태시 K-LCC들의 대기줄이 기존항공사보다 길어지는 이유였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에도 해소를 말하는 이는 없이 다짜고짜 비난만 쏟아낸 셈이다.

-양성진 항공산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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