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주사 맞았네요" 류현진답지 않았던 복귀전, 새삼 깨달은 '투수는 제구'라는 교훈 [잠실 현장인터뷰]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3.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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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류현진이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결국 제구인 것 같아요. 아무리 150㎞를 던져도 한국 타자들 콘택트 능력이 있어 아무 소용없더라고요."

보여주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결국에 문제는 제구였다. 90마일(144.8㎞)도 되지 않는 공으로도 성공했던 이유가 속구에 있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류현진은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3⅔이닝 동안 86구를 뿌리며 6피안타 3볼넷 5실점(2자책)을 기록, 패전 투수가 됐다.

2012년 10월 14일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끝으로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11년 간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치고 8년 170억원이라는 국내 역대 최고액에 친정팀에 복귀했고 12년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원정 경기임에도 많은 한화 팬이 찾았고 2만 3750 관중석이 가득 들어찼다.

그 때문인지 류현진의 투구가 우리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1회는 단 9구 만에 삼자범퇴로 마무리했지만 유독 속구 비중이 높았고 지난해 타격 1위팀 LG 타자들은 집요하게 류현진의 속구를 공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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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류현진이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안타를 맞고 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2회 3연속 피안타로 2실점한 류현진은 4회말 2사 후 문현빈의 수비 실책 이후 다시 3연속 안타를 내주며 5실점했다. 4회 내준 3실점은 모두 비자책이었으나 불어난 투구수로 인해 4회를 채 마치지 못하고 조기강판됐다.

경기 후 류현진은 "1회말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많은 팬들이 이름과 응원의 함성을 외쳐주셔서 너무 기뻤고 감회가 새로웠다"며 "그동안 준비를 잘 해왔고 오늘 날씨도 좋았기 때문에 구속이나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다만 제구가 좋지 않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이날 경기 전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문현빈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류현진이 5회에도 등판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투구수를 봐서는 그랬을 것"이라며 "오랜 만에 한국에 와서 류현진의 위엄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석도 많이 하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패턴을 너무 역으로 간 것 같다. 그게 오히려 악수가 된 케이스"라며 "원래 현진이가 다양한 코스와 구종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인데 어제는 패스트볼을 특히 좌타자 몸쪽으로 많이 던졌다"고 부진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 감독은 "조금 빠른 템포에 결정구를 직구로 많이 가기도 했다. 전력분석을 통해 타자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역으로 간 것"이라며 "투구 수를 줄여 이닝을 길게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악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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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류현진이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공을 뿌리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최 감독은 "역으로 가서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냥 정석대로 가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며 "구위나 구속 같은 건 현진이도 엄청 세게 던진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30경기 나가야한다. 본인도 좋은 경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류현진은 패전 투수임에도 이례적으로 이날 다시 취재진과 만났다. "기분 좋게 마운드에 올랐다. 가장 큰 구장에서, 한화 팬들도 많이 와주셨고 많은 팬분들이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짜릿했다"며 박해민이 경기 시작 전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했다. 감사했다. 경기 시작했을 때 타자뿐 아니라 상대측 더그아웃에서 다 나와 있어서 뭐 때문에 그런지 몰랐는데 (알고 나서) 감사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천하의 류현진도 긴장되는 무대였다. "당연히 (긴장감이) 있었다. 시즌 첫 경기였기에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직구는 초반엔 괜찮았는데 마지막에 가운데로 몰렸다. 변화구 제구가 아쉬웠다. 예방주사를 맞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날 경기를 돌아봤다.

그동안 개막전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류현진은 "어떻게 보면 그 이약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다"며 "컨디션은 좋았고 날씨도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컨디션 좋아도 투수는 제구력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구속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힘줘 말했다.

류현진의 말대로 제대로 된 예방주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는 KBO리그에서 가장 강한 타선을 갖췄고 전날엔 류현진을 상대로도 좌타를 7명이나 배치하고도 좋은 결과를 냈다. 최원호 감독은 "MLB에도 이렇게 컨택트형 타자들이 즐비한 경우는 없다"고 했고 류현진도 "타석에서 LG 타자들이 잘 달라붙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방망이를 컨택트하는 능력도 많이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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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류현진(오른쪽)이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2회 실점하자 코칭스태프가 마운드를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불안한 제구는 피안타와 볼넷으로 이어졌고 이는 투구수 증가로 직결됐다. 결국 또 제구였다. 류현진은 "(다음 경기에선) 조금 더 제구를 신경 써서 던지겠다. 어제는 투구 수부터 맞추지 못할 만큼 많이 던졌다. 그런 거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운 장면도 있었다. 4회말 문현빈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5회까지 마운드에 올랐을 것이고 나아가 승리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더 열악한 한화의 내야진과도 함께 했던 류현진이다. "(문현빈이) 수비하고 들어와서 못 막아서 미안하다고 했다"며 "한 번 에러해서 대량실점으로 이어지는 등 영향이 있을까봐 고개 들고 하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문현빈에게도 좋은 예방주사가 된 실책이었다.

LG 타자들은 이날 무려 6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실패는 없었고 류현진을 상대로도 4회말 박해민이 한 차례 도루를 성공시켰고 이후 득점으로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그런 건 신경 안 썼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서 98승, MLB에서도 ERA 1위를 차지하며 통산 78승을 거둔 베테랑이다. 시범경기를 통해서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 차례 시행착오였을 뿐이다. 류현진은 "(결국) 제구인 것 같다. 아무리 150 던져도 한국 타자들 컨택트 능력이 검증됐다. 아무 소용없다. 140㎞ 초반이라도 코너워크가 되면 조금 더 좋은 성적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염경엽 LG 감독도 "전체적으로 전력분석을 하고 타격 코치가 준비도 잘 했지만 어제는 현진이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 현진이가 갖고 있는 커맨드는 아니었고 실투도 많았다"며 "경기를 다시보기로 봤는데 실투도 많았고 그걸 놓치지 않고 우리 선수들이 좋은 타격을 한 게 이길 수 있는 포인트였다"고 돌아봤다.

그렇기에 다음 경기에 더 기대감이 쏠린다. 류현진은 오는 29일 KT 위즈와 홈 개막전 등판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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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류현진이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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