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에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F1 더 무비>가 국내에서만 50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고, 올해는 국산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이하 WEC) 하이퍼카 클래스에 출전하며 모터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빠르게 확대되는 분위기다.
WEC는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무대를 넘어, 제조사의 기술력과 브랜드 철학, 내구성과 효율성 등을 동시에 검증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주다. 자동차 회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력과 역량을 과시하는 장인 동시에, 미래 전동화 기술과 하이브리드 시스템, 에너지 효율, 공기역학 등을 극한의 실전 환경에서 시험하는 치열한 연구개발(R&D) 현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내에서 WEC와 내구 레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푸조(Peugeot)다. 최근 WEC에 새롭게 도전하는 브랜드들이 늘고 있지만, 푸조는 자동차 산업 초창기부터 모터스포츠를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온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 1895년부터 시작된 푸조의 모터스포츠 DNA

푸조는 1895년 개최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 중 하나인 '파리-보르도-파리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모터스포츠 역사에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후 1913년에는 당시 혁신적인 기술이었던 DOHC 4밸브 엔진 기술을 적용한 경주차로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500 정상에 올랐으며, 이는 훗날 고성능 엔진 기술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전설적인 그룹B 랠리 시대를 대표하는 '205 터보 16'으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을 지배했고, 1987년과 1988년에는 다카르 랠리 우승을 연이어 기록했다. 이후에도 '905'와 '908 HDi' 경주차를 앞세워 르망 24시와 WEC에서 정상에 오르며 내구 레이스 무대에서 확고한 위상을 다져왔다.
이러한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푸조는 2022년부터 '9X8' 경주차를 앞세워 WEC 최고 등급인 하이퍼카 클래스에 복귀했다. 리어 윙을 과감히 제거한 독창적인 공기역학 설계와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기반한 9X8은 기존 경주차의 문법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도전으로 평가받는다.
■ 공용 섀시 대신 '독자 설계(LMH)' 선택한 기술적 정공법
푸조의 레이싱 전략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경주차의 뼈대가 되는 섀시 구조다. 최근 WEC에 진출하는 다수의 팀은 공용 섀시를 기반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조합하는 'LMDh(Le Mans Daytona hybrid)' 규정을 활용한다. 이는 개발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장점이 있다.
반면, 푸조는 'LMH(Le Mans Hypercar)' 규정을 채택했다. 이는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은 물론 섀시 구조까지 레이싱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자체적으로 설계·개발하는 이른바 '인하우스(In-house) 컨스트럭터' 방식이다. 단순히 레이스에 참가하는 수준을 넘어, 자동차 전체를 스스로 만들어 경쟁하는 제조사라는 점에서 푸조는 이미 독보적인 모터스포츠 연구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WEC 하이퍼카 클래스에서 이처럼 경주차 핵심 요소를 독자 개발하는 '인하우스 컨스트럭터' 브랜드로는 페라리, 토요타, 푸조가 있다.
■ 트랙의 극한 기술, 도로 위 운전의 즐거움으로 확장

이러한 푸조의 레이싱 DNA는 우리가 도로에서 만나는 양산차에 그대로 이식된다. 푸조는 오래전부터 '운전의 즐거움'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강조해왔다. 단순히 높은 출력이나 수치상의 가속 성능에 매몰되지 않고, 운전자와 자동차가 하나로 연결되는 직관적인 주행감각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날카로운 스티어링 응답성, 이상적인 차체 무게 밸런스, 안정적인 코너링 감각, 운전자 중심 설계 등은 모두 모터스포츠 최전선에서 축적한 노하우의 결과물이다. 최근 푸조가 전 라인업에 확대 적용 중인 '스마트 하이브리드' 시스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푸조는 단순히 연료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전동화가 아니라, 효율성과 주행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지향한다. 특히 레이스 환경에서 극한까지 검증된 기술력이 녹아든 'e-DCS6' 변속기는 전기모터 통합 설계를 통해 동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전기모드 중심의 매끄러운 주행을 지원한다. 덕분에 운전자는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뛰어난 반응성과 자연스러운 가속 질감을 경험할 수 있다.
모터스포츠는 이제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시대로 접어들수록, 극한의 환경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은 양산차의 기술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푸조는 이미 130년 넘는 시간 동안 그 무대 위에서 기술과 감각, 그리고 브랜드 철학을 다듬어왔다. 새로운 도전자들이 늘어난 지금의 WEC 무대에서 푸조가 단순한 참가자를 넘어 독창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이유 역시, 130여 년간 트랙 위에서 타협 없이 다듬어온 기술과 가치가 도로 위의 푸조 자동차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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