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권 분쟁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지배구조 수준'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일 공시된 2025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100%로 집계됐다. 지난 2024년 80%에서 1년 만에 나머지 항목을 모두 보완해 전 항목을 충족한 것이다. 반면 영풍은 지난해와 동일한 60%를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2024년 당시 충족하지 못했던 주주총회 4주 전 소집공고 실시, 주주총회 집중일 이외 개최, 현금배당 관련 예측가능성 제공 항목을 모두 이행했다. 실제로 올해 제52기 정기주주총회 소집공고를 개최 29일 전에 실시했고, 전자투표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병행해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 편의성을 확대했고 영문 공시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도 높였다.
이사회 구성과 운영 측면에서도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고 사외이사가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는 가운데 여성 4명과 외국인 2명이 이사로 포진하는 등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사회와 이사회 내 위원회, 개별 이사를 상대로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과정과 결과, 개선 사항까지 공개한 점, 2025년부터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소수주주 권익 증진 노력을 기울인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고려아연 측의 설명이다.
배당 정책 역시 시장 친화적 방향으로 개선했다. 고려아연은 결산배당과 분기배당 과정에서 이사회가 현금배당액을 먼저 확정한 뒤 배당기준일을 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금융당국의 개선방향을 따르기 위해 투자자가 배당 규모를 확인한 후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영풍은 주주총회 4주 전 소집공고 실시, 주주총회 집중일 이외 개최, 현금배당 관련 예측가능성 제공, 최고경영자(CEO) 승계정책 마련 및 운영, 집중투표제 채택,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 책임자의 임원 선임 방지 정책 수립 등 6개 항목을 충족하지 못해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 60%에 머물렀다.
영풍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과반이 사외이사다. 또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운영 실태를 보면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2025년 한 해 동안 사외이사만 참여하는 별도 회의는 단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았다. 반면 고려아연은 지난해 사외이사 단독 회의를 네 차례 개최했고 올해에도 관련 회의를 이어가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사외이사만 참여하는 별도 회의를 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영풍은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의견이 존중되고 독립성이 보장되는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사외이사만으로 이뤄진 별도 회의를 개최하고 있지 않다"며 "이사회의 의사 진행은 자유롭게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는 입장이다.
영풍은 고려아연과 달리 사외이사에 대한 개별 평가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영풍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그 이유로 "이사회 구성원 6인 중 사내이사 2명을 제외한 사외이사 4명에 대한 평가로 인하여 이사회 내 정치 상황 발생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ESG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해명이 쉽게 납득되지 않다"며 "사외이사 평가가 이사회의 책임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대표적 지배구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이를 '정치적 상황 발생 우려'라는 이유로 배제한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영풍은 이어 "이미 이사회 내 역할 분담과 참석률, 책임성, 전문성에 대하여 지속적인 의견 교환과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 주요 사항에 대한 의사 결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평가 등 외부 평가 방식의 도입에 대해서는 내부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외이사 개별 평가는 통상 이사회 운영의 객관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내부 지배구조 장치로 평가되는데, 이를 '외부 평가 방식'으로 표현한 데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이다. ESG 업계 등에서는 비공식적인 의견 교환만으로 사외이사의 역할과 성과를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영풍의 이사회 운영과 의사결정 절차를 둘러싼 논란은 MBK파트너스와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을 계기로도 제기됐다. 공시 등에 따르면 2024년 9월 영풍과 MBK파트너스, 장형진 영풍 고문은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앞서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일부 주주들은 영풍 자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려아연 지분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과 계약 조건의 적정성에 문제를 제기했고, 해당 사안은 주주대표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일각에서는 사내이사인 대표이사 2명이 구속된 상황에서 회사의 중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 점에 주목하며, 해당 의사결정이 어떤 논의와 검토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특히 회사의 주요 경영 현안을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이 충분한 논의와 검증, 견제 절차를 거쳤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사회 독립성과 책임성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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