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알게 되었다.
조현병을 앓는 누나와 부모님의 삶을 30년 동안 카메라에 담아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감독은 주인공의 남동생으로 누나와 부모님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고 내한하여 GV도 하고 있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30년간 기록했다는 말만으로도 마음이 묵직해졌다. 그게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30년의 기록…, 기록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록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렇다 할 설명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록이란 무엇일까.
내가 몸담고 있는 K-POP과 음악 산업 현장은 늘 즉각적인 변화와 성과를 요구하는 속도전의 세계다. 그 빠른 톱니바퀴 속에서 나에게 기록이란 '변화'를 전제로 하는 증거 자료 같은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달라야 하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노래라는 무형의 청각 예술을 가시화하기 위해 기록은 필수적이다.
'OOO, 이번 곡에서 가성 음역대가 Eb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음.'
레슨을 마치고 노트북을 펼쳐 이런 문장들을 적어 나간다. 이런 한 줄의 글을 쓰고 녹음 자료를 복기하고 레슨 시간을 되뇌며,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다. 단 한 줄의 메모를 적는 데도 이러한데, 30년간 사랑하는 사람을 카메라로 응시해 온 감독의 시간 속에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고통, 그리고 생각이 겹겹이 쌓여 있었을까.
기록이란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묵직한 깨달음은 보컬리스트의 연습과 기록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 놓는다. 레슨을 받는 학생들에게 매일 연습일지를 작성하게 하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성과 중심의 기록법을 전수한 것이 아닐까…

당장 오늘 연습일지를 쓴다고 해서 안 되던 고음이 갑자기 터지거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마이크 앞에서 내 소리를 다듬고, 그 과정에서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의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더라도 매일 제자리를 지키며 남기는 그 기록이야말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무너지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지켜내는 단단한 힘이 되어준다.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성장을 위해 연습일지를 쓰기도 하지만, 우리의 하루하루 기록 자체에도 의미가 있음을 놓치지 않도록.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영화를 통해 그 감독을 만나야겠다. 이 영화는 OTT로 풀리지도 않고, 상영관도 스크린에 걸려 있는 기간도 대형 상업 영화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테니 그 묵직한 30년의 기록을 만나러 얼른 영화관으로 가야겠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