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품 브랜드에게 불량 로트는 단순한 재고 손실이 아니다.
홈쇼핑 방송이 중단되고, 리뷰가 악성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법정에서 손해 전부를 인정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외선 차단 기능성화장품의 내용물이 굳어 판매가 중단된 사건에서, 감정 결과 하자 발생 원인이 제조사가 만든 내용물의 배합비율 문제로 확인됐다. 한 하급심 법원은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손해액을 하자 재고 가액 3억 3,251만여 원으로 산정한 뒤, 여러 사정을 고려해 책임을 1억6000만 원으로 제한했다. 제조간접비와 브랜드 이미지 손상 손해는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입증의 벽은 더 높다. 발주자가 내용물과 용기를 모두 제공하고 제조사는 충진과 포장만 맡은 구조에서 곰팡이 클레임이 터진 사건에서, 법원은 하자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제조사의 작업에서 비롯됐다는 점까지 발주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체 시험 결과는 중립성이 부족하다고 보았고, 발주자가 제공한 내용물에서도 진균이 검출되자 발주자의 청구는 기각됐다.
그러나 제조사의 공정 불량이 뚜렷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튜브 씰링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용물이 흘러 단상자까지 오염된 사건에서는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되어 튜브와 단상자 제작비, 내용물 생산비가 배상 범위에 포함됐다. 수출 거래였고, 최종 바이어의 전수검사 결과가 하자 입증의 핵심 자료가 됐다. 계약서에 제3자 검사 결과를 하자 판정 자료로 인정한다는 조항을 두면, 이런 상황에서 입증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회수와 재제조, 항공운송비 같은 부수비용의 배상 범위를 함께 적어 두는 것도 방법이다.
제품 하자와 관련해 그 승패는 단순히 하자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원인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그리고 그 증명의 준비는 사고가 터진 뒤가 아니라 계약서를 쓰는 날 시작된다. 계약 단계에서 할 일도 정해진다. 원부자재 수령 시 검사와 부적합 통지 의무를 제조사에 부과하고, 원인이 불명일 때의 감정 절차와 비용 분담을 미리 정하고, 제조번호별 품질검사 성적서를 납품 요건으로 두는 것을 적극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손해배상액의 예정 조항이다. 사후에 브랜드 가치 하락을 입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회수와 폐기, 재작업에 드는 실비와 판매중단 기간의 손실을 미리 숫자로 적어 두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여기에 제조사 계약서에 흔히 들어가는 책임상한 조항도 확인해야 한다. 책임은 물품대금 상당액을 한도로 한다는 한 줄이, 경우에 따라 불법행위 성격의 청구까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발주자 입장에서 대형 제조사를 상대로 모든 조항을 유리하게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반드시 필요한 조항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해 계약서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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