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더독의 반란?' 데뷔곡 음원차트 TOP 100 진입까지

'20년 차 신인 걸그룹’이라는 말만큼 모순적인 표현이 또 있을까. 데뷔 20년 차를 맞이한 소녀시대 멤버들이 신인(?)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이 처음부터 데뷔를 염두에 둔 거창한 기획 속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웃자고 만든 콘텐츠가 어느새 자칭 ‘6세대(2세대+2세대+2세대=6세대) 괴물 신인’을 탄생시켰다.
시작은 효연의 개인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 내 ‘가짜 김효연’이었다. 효연이 소녀시대의 유닛 태티서에 대항하는 유닛을 만들어보겠다며 농담처럼 제안했고, 여기에 유리와 수영이 합류했다. 그룹 내에서 누가 메인보컬을 할지, 누가 센터가 될지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됐다. 가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소녀시대 멤버들이 만든 웃긴 유닛’ 정도로 소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반응과 함께 판이 커졌다. 유튜브 안에서만 존재하던 효리수는 TV 예능으로 무대를 넓혔고, 멤버들이 실제로 그룹 활동을 준비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들의 ‘진짜 데뷔’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효리수는 디지털 싱글 ‘Skibidi(스키비디)’를 발표했다. 콘텐츠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룹이 실제 음원을 가지고 무대에 서는 하나의 팀이 됐다. ‘Skibidi’는 멜론차트 TOP100에도 진입해 3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효리수의 데뷔곡 ‘Skibidi’는 1990년대 유로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댄스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는다. 그러다 중반부에서 힙합 사운드로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이 변화무쌍한 구성이 소녀시대의 ‘I GOT A BOY(아이 갓 어 보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음악을 반복하지도, 복제하지도 않는다. 스타일링 역시 마찬가지다. 흰색 민소매 상의와 청바지를 활용한 의상은 어쩐지 소녀시대의 ‘Gee’를 떠올리게 하지만, 과거의 의상을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는 세 멤버의 현재 매력을 극대화한 변주에 가깝다. 이런 지점에서 효리수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소녀시대의 익숙한 DNA를 가져오되, 모든 것을 효리수라는 새로운 이름에 맞게 재조립한다.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팬들에게 익숙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추억팔이와 계승은 다르다. 효리수는 소녀시대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기억을 가져와 지금의 자신들에게 맞게 다시 쓴다.
이 과정에서 ‘태티서와의 경쟁’이라는 설정을 실제 그룹의 정체성으로 끌고 가지 않은 것도 영리하다. 콘텐츠 안에서 효리수는 태티서를 향한 경쟁심을 마음껏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다. 누가 메인보컬이 될 것인지, 누가 센터를 차지할 것인지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는 과정 자체가 효리수라는 콘텐츠의 재미가 됐다. 하지만 실제 음악과 브랜딩에서는 태티서의 대항마가 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효리수는 결국 효리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룹 이름도 ‘소녀시대-효리수’로 소녀시대의 20년의 역사를 놓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소녀시대라는 거대한 과거와 효리수라는 새로운 현재가 한 이름 안에서 공존한다. 태티서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 아니라 소녀시대 멤버들이 지금의 자신들로 새롭게 만들어낸 하나의 팀이라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는 셈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은 데뷔 전부터 세계관을 만들고, 멤버들의 캐릭터를 구축해 콘텐츠를 쏟아내며 팬덤을 형성한다. 하지만 효리수는 그 과정을 거꾸로 밟았다. 이미 콘텐츠가 존재했고, 그 안에서 멤버들의 관계와 캐릭터가 형성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에 나중에 음악이 붙고, 실제 데뷔로 이어졌다. 이 역순의 공식은 자칫 유튜브 콘텐츠에서만 재미있었던 프로젝트로 끝날 수 있었다. ‘데뷔 빼고는 다 하겠다’며 웃고 즐기던 이야기가 실제 그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만들어낸 기대를 음악과 무대로 증명해야 했는데, 효리수는 콘텐츠로 시작했지만 정식으로 데뷔를 이뤄냈다.
결국 효리수가 진짜 그룹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소녀시대’라는 이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화제성만으로는 미흡하고, 오랜 팬덤만으로도 부족하다. 세 사람의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고, 그 캐릭터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기대를 증명할 음악과 무대가 존재해야 한다. 효리수는 콘텐츠에서 만들어진 기대를 실제 음악으로 연결하며 그 과정을 완성했다.
효연 유리 수영은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있어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지닌 20년 차 베테랑이기에 이들에게 ‘신인’이라 붙이는 건 어쩌면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효연, 유리, 수영이 하나의 이름 아래 팀을 이뤄 자신들만의 색깔로 활동하는 건 처음이다. 콘서트 무대에서 유닛으로 세 사람이 호흡을 맞춘 경험은 있지만, 효리수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발표하고 활동하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경력은 20년 차지만 그룹으로서의 서사는 신인인 셈이다. 2세대 아이돌 세 명이 모여 ‘6세대 걸그룹’이라고 농담하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돌에게 ‘신인’이란 단지 데뷔 연차를 뜻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이 있고, 처음 만들어가는 관계와 이야기가 있다면 다시 신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효리수의 진짜 데뷔는 어쩌면 이제부터일지도 모른다. 20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다시 처음처럼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효리수가 보여주는 가장 유쾌한 ‘새 길’이다.
조이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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