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끝날 때까지 못 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불과 반년 전 세계 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해결사로 떠올랐던 문보경(26·LG 트윈스)에게도 긴 슬럼프는 두려웠다. 기록상으로는 이미 반등하고 있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아직 완전히 돌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보경은 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정규시즌 두산 베어스와 방문 경기에서 5번 타자 및 3루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LG의 5-1 승리에 힘을 보탰다.
첫 타석부터 해결사 역할을 했다. 0-0으로 맞선 1회초 1사 2, 3루에서 두산 선발 최승용을 상대로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터트렸다. LG는 박동원의 2타점 적시타까지 더해 1회에만 4점을 뽑았고 그대로 승기를 잡았다.
올해 문보경에게는 유난히 많은 일이 있었다. 3월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영웅이었다. 1라운드 호주전에서 선제 투런포를 포함해 4타점을 쓸어담으며 한국의 17년 만의 2라운드(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1라운드에서 기록한 11타점은 2006년 김태균이 작성한 한국 선수 단일 WBC 대회 최다 타점과 타이였다.
하지만 대회 도중 수비 과정에서 펜스와 충돌해 허리를 다쳤고 정규시즌 개막 후 한동안 수비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4월까지 타율 0.311(90타수 28안타)을 기록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고,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와일드카드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택됐다.

진짜 시련은 6월 찾아왔다. 발목 부상 이후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 6월 타율 0.194(72타수 14안타), 7월에도 0.192(73타수 14안타)에 그쳤다. 문보경은 "개인적으로 발목 부상 때문에 밸런스가 무너졌다. 축이 되는 발이 잡혀야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서 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영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타석에서 느끼는 감각은 전혀 달랐다. 문보경은 "지난해 좋았을 때나 올해 초 좋았을 때와 똑같이 치는 것 같은데 힘이 안 써지는 느낌이었다"며 "연습 타격에서도 예전에는 홈런이 나왔는데 그게 안 나오니까 '내가 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답답함에 경기 후 늦게까지 특타를 해보기도 했다. 문보경은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시즌 끝날 때까지 이럴 수는 없으니까 빨리 감을 올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히 짚었다.
최근에는 숫자상 반등이 뚜렷하다. 8월 17경기에서 타율 0.333(45타수 15안타), 최근 10경기에서는 타율 0.394(33타수 13안타)를 기록했다. 그래도 문보경은 "(타격감을) 찾았다기보다는 괜찮아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엄청 좋을 때만큼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다. 매일 경기할 때 조금 의심을 갖고 시작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답답한 마음은 플레이에도 나타났다. 전날(1일) 잭 로그를 상대로는 초구 기습번트까지 시도했다. 붙박이 4번 타자로 뛰던 시절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선택이다.

문보경은 "4번에 있을 때 번트를 대면 보여지는 부분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조금 그랬다. 지금은 타순이 내려가 마음이 편해졌고 상대 수비 위치를 보면서 어떻게든 나가는 게 목표라 그런 시도도 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오히려 4번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 반등에 도움이 됐다. 현재 LG에서는 송찬의와 문정빈이 중심 타선에서 장타력을 보여주고 있다. 문보경은 "(송)찬의 형이 4번을 쳐주고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4번이라는 자리가 아예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안 맞을 때는 찬스가 많이 오고 어떻게든 쳐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게 된다. 그런 부분이 줄어들면서 결과도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고 웃었다.
다시 4번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자 답은 단호했다. 문보경은 "그러고 싶지 않다. 타순 욕심은 없다. 그냥 나가라는 타순에 맞춰 치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문보경은 오는 14일 경기까지 소화한 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약 2주간 팀을 떠난다. LG도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어 남은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
한때는 부상 이전의 감각을 끝내 찾지 못할까 겁도 났다. 그러나 문보경은 이제 그 긴 부진까지도 하나의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보경은 "슬럼프가 차라리 어린 나이에 빨리 와서 다행이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어서 왔다면 돌파구를 찾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빨리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쩌다 보니 아시안게임 앞두고 성적이 나는데 오히려 '시즌 끝날 때까지 못 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다. 그래도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 못 치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지금 한창 순위 싸움 중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잘해야 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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