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첫 솔로 정규앨범 '산산조각' 발매

장기하의 음악은 예상대로 전개되는 듯 예상을 벗어나는 데서 재미를 줘 왔다. 엉뚱하고 유쾌하고 질척했던 얼굴들 시절과 EP ‘공중부양’이 제시했던 멀뚱한 파격. 이제 장기하에게 저 두 기존 스타일에서 진정한 음악적 시그니처를 추출 해낼 때가 온 것처럼 보였다. 지난 9월 9일에 발표한 첫 솔로 정규작에서 장기하는 그걸 들려준다.
앨범 ‘산산조각’의 이음새는 제목과 달리 매끈하다. 곡 단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펼쳐내는 대신, 부여잡은 정서나 주제가 엇비슷하게 덩어리로 뭉친다. 이른바 콘셉트 앨범이다. 매 트랙의 가사만 보아선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 투성이지만, 문맥을 벗어나 맥락을 비웃는 서사와 음악의 왜곡이 장기하의 장기인 줄 아는 사람으로선 충분히 이 앨범의 콘셉트를 콘셉트로서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첫 곡과 마지막 곡이 뫼비우스의 띠 또는 홍상수의 ‘북촌방향’처럼 돌고 돈다. 즉 ‘산산조각’과 ‘자야 돼’의 수미상관 구조 속에서 나머지 일곱 트랙이 자라고 구르고 엉기는 시스템이다. 음악은 앞서 말했듯 팀 리더였던 장기하와 솔로 장기하가 이상적으로 어울리고 있는데, 꼭 전일준(드럼)과 하세가와 요헤이(기타)가 참여해서만이 아니다. '얼굴들'은 수시로 이 앨범을 록적으로 넘나든다. 가령 아웅다웅하는 라임이 ‘그건 니 생각이고’와 기시감을 일으키는 ‘너나 나나’나 일렉트릭 밴드라는 배로 일렉트로닉 텍스처라는 파도를 헤치고 헤비한 산울림 풍 로큰롤에 정박하는 ‘내 건데’ 같은 트랙은 과연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어색하지 않을 노래들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는 몇몇 곡들이 초 단위로 펼쳐내는 역동적 구성이다. 제프 벡 마냥 유니크한 기타가 갈팡질팡하는 보컬 라인과 1분대의 단정한 비트를 딛고 2분대 근처에 이르러 예기치 못한 록 사운드에 휘말리는 ‘말도 안 되는 얘기’는 개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예다. 그리고 노래 음정과 연주 리듬을 가지고 노는 장기하의 저 오랜 버릇은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 기타 질감이 떠오르는 펑키 트랙 ‘한순간에 몽땅’에 불쑥 드리우는 스튜디오 트릭이나 터벅터벅 걷던 노래가 힘찬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나 로큰롤 비트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해, 해, 해, 해, 해였네’에서 절정에 이른다. 장기하는 스웨덴의 전설적인 디제이 겸 프로듀서, 작곡가였던 데니즈 팝의 지론(“음악은 지루하면 안 된다”)에 정확히 부합하는 음악을 들고 왔다.

여기까지, 나는 이 앨범의 제작 과정에 일부러 관심을 끈 채 음악만 듣고 썼다. 다 쓴 뒤에 알아보니 음악이 있기 전 장기하의 시(詩)가 있었고 그 시가 앨범 제작을 촉발했다. 두 사람이 한 팀인 모래내거동수상자들이 연출한 무성영화가 바로 저 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기하는 완성된 영화를 보며 음악과 노랫말을 지은 거였다. 영상에 뮤직비디오 대신 ‘비디오 뮤직’이라는 이름표를 따로 붙인 이유다. 지난 5월, 반 시간에 걸친 장기하의 비디오 뮤직이 독립 영화로서 출품된 전주국제영화제엘 가보지 못한 나는 앨범 발매 몇 시간 뒤 공개된 해당 영화도 이제야 보았다. 상실과 변화, 삶의 순환을 다루었다는 영상을 보고서야 나는 앨범 재킷 속 세 캐릭터가 하얀 기하, 까만 기하, 베개몬이라는 걸 알게 된다. 또 “많이 하려 말고, 연기할 땐 그냥 대사만 해라”는 배우 김윤석의 조언을 ‘과유불급’으로 해석한 장기하가 저 말을 이번 음악, 영화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잡은 사실도 영화를 보고 난 뒤 읽은 장기하의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이로써 예상을 따르는 듯 예상을 벗어나는 장기하식 또 한 번의 예술 실험을 나는 분리된 콘텐츠 퍼즐들을 맞춰 얼추 해독할 수 있었다.
질문 하나. 장기하와 잔나비의 공통점은? 첫 번째는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선인지를 증명한 존재라는 점. 두 번째가 중요한데, 산울림과 비틀스의 유산을 자기들 스타일로 꾸준히 재해석 해온 점이다. 그리고 장기하는 이번에도 한국과 영국의 두 거장 밴드를 재미있고 흥분되게 요리해내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에서 ‘나만 그런 걸까 봐’로 넘어가며 가장 뚜렷했던 들쑥날쑥, 오르락내리락 트랙 배치와 함께 손도현의 건반과 전일준의 타악이 이끄는 ‘나뭇잎이었네’의 안정된 정체성까지. 데뷔 때부터 어떤 식으로든 지켜온 60~70년대 록 음악의 변주는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장기하의 음악 본질로서 굳어갈 것으로 보인다. ‘산산조각’은 그 미래를 예고하는 또 한 발의 신호탄이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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