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20% 육박...2년 만의 성공적 컴백 첫 원톱 주연작서 다층적 면모를 지닌 캐릭터 완벽 소화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4회 만에 전국 시청률 18.5%를 기록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닥터X)의 주인공 계수정(김지원)이 수시로 내뱉는 말이다.
이를 인용하자면, 계수정 역을 맡은 배우 김지원 역시 연이어 히트작을 내며 "나도 실패하지 않습니다"고 외치는 듯하다. 2024년 방송된 ‘눈물의 여왕’으로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역대 케이블채널 드라마 시청률 신기록을 작성한 김지원은 2년여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불패 신화를 이어가는 중이다.
데뷔 초기 ‘오란씨 걸’로 유명세를 얻은 김지원이 주연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어느덧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맨틱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2013)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그는 역시 김 작가의 작품인 ‘태양의 후예’(2016)에서 여군 윤명주 역을 맡아 글로벌 인기를 쌓았다. 그리고 ‘1번 여주인공’으로서 그를 각인시킨 작품은 배우 박서준의 출세작으로도 유명한 ‘쌈, 마이웨이’(2017)다.

이후에도 ‘대작’으로 분류되는 ‘미스터 션샤인’(2018)과 ‘아스달 연대기’(2019)를 거친 김지원은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2022)에서 발군의 연기력으로 ‘정극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웅변했다. 당시 주인공 염미정이 내뱉은 "나를 추앙해요"는 그 해 최고의 유행어가 됐다.
이번에는 ‘별에서 온 그대’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의 ‘눈물의 여왕’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그는 2년여의 담금질을 마친 후 전문직 드라마인 ‘닥터X’로 돌아왔다.
계수정은 결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다층적인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겪는 환자 앞에서는 천재 외과의사로서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술기를 펼친다. 일단 수술방을 나오면 더없이 차갑다. 특히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자신의 출세에만 관심 있는 의사들을 경멸하며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하지만 유독 달디 단 음식을 좋아하고, 의사 용역사무소를 운영하는 장소장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아울러 환자와 그 가족들을 은근히 챙기는 따뜻한 면모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티내지 않는다.

어느 조직이나 의국에서 속하지 않는 계수정은 늘 서늘하다. 특히 부조리로 가득한 의사들을 향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폐부를 찌른다. 불필요한 소통을 자제하고 수술에만 집착하며 일명 ‘수술방의 미친 계’로 불리는 계수정은 윗사람들의 눈치 보기 바쁜 의사들을 향해 "돈 잘 벌고 출세하려고 공부만 한 인간들, 윤리고 신념이고 생각 없이 그저 멍청하게 똑똑한 인간들"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계수정의 참교육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지 않는다. 지명 수술을 받게 된 병원장 김명섭은 개복 수술을 시행하려 한다. 하지만 환자가 고령인 것을 고려해 계수정은 복강경이 맞다고 말한다. 다른 의사들도 계수정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한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병원장을 향해 계수정은 "오랜만에 콜을 받아서 신난 것 같다"며 "노욕이 지나치다"고 꼬집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병원 청소 용역 직원의 개두술을 집도한 후, 계수정은 컨퍼런스 등을 이유로 자리를 비운 교수들의 질타에 당당히 맞선다. 환자의 생사가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은 "기다렸어야지"라는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환자를 다른 방향으로 전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계수정은 이런 모습 또한 그냥 넘기지 않는다. "그쪽만 사람이야? 환자도 사람이야. 의사이려고 노력은 안 하십니까? 그냥 사람이기만 하십니까? 그럼 언제 의사 하십니까?"라는 지적은 시청자들의 가려운 속을 긁어준다.

이처럼 날카로운 메스같은 계수정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한 김지원은 계수정의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도 곧잘 표현한다. 구내 식당에서 돈까스를 한번 더 받기 위해 머리칼을 흩뜨린 채 다시 줄을 서는 모습을 비롯해 인턴 의사에게 달콤한 케이크를 얻어 먹는 모습 등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12부작인 ‘닥터X’는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수거해야 할 ‘떡밥’도 많다. 계수정의 과거 화재 사고 때 어떤 일을 겪었으며 왜 ‘닥터X’라 불리게 됐는지, 왜 큰 빚을 지고 장소장이 운영하는 용역 사무소에서 일하며 이를 갚고 있는지 등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김지원은 그 숙제를 잔뜩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무게가 그리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김지원의 연기력은 한창 물이 오르는 중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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