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자 판단 기준 흔들어놓는 매력의 늪에 빠져봐

배우 임시완이 또 한 번 낯선 얼굴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tvN 월화극 ‘나의 유죄인간’(극본 문수정, 연출 박단희)에서 윤이준 역을 맡아 호감과 반감을 동시에 자극하며 묘한 긴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웹툰 ‘여자인 걸 왜 모르지’를 원작으로 한 ‘나의 유죄인간’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재벌 3세 윤이준과 그의 수행비서로 위장 잠입한 특수부대 출신 형사 강재희(설인아)의 밀착 스릴 로맨스다. 극 중 윤이준은 첫 등장부터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후계자다운 능력을 과시하며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사내에서는 까다롭고 괴팍한 성미로 반발을 사는 터라,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상황 역시 어색하지 않다.
그런 윤이준을 둘러싼 의구심은 4회에 접어들며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수행비서만을 곁에 둔 배경, 그리고 강재희의 안위를 은근히 염려하는 속내가 드러나면서다. 처음에는 재벌 3세 특유의 안하무인으로 보였던 그의 예민함 뒤에 과거의 상처 혹은 비밀이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임시완은 이처럼 이중적이면서도 들여다볼수록 인간적인 윤이준을 정교하게 빚어낸다. 온전히 미워하기에는 인간적이고, 마냥 호감을 품기에는 어딘가 위태롭고 불편한 인물이다. 얄밉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캐릭터의 매력을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능숙하게 전달한다.
인물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힘을 실은 흔적도 엿보인다. 목소리와 말투 등 연기의 결은 일상적인 자연스러움보다 캐릭터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쪽에 닿아 있다. 다소 과장됐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날 선 윤이준을 구축하는 데는 주효했다. 평면적이고 무난한 소화에 머무는 대신, 자신만의 연기적 장치로 인물의 윤곽을 한층 선명하게 세운 결과다. 그 덕에 때로는 얄미운 반감이 더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간 임시완은 ‘미생’(2014)부터 ‘타인은 지옥이다’(2019), ‘소년시대’(2023)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지평을 넓혀왔다. ‘오징어 게임’ 시즌2·3(2024·2025)에서도 선악의 이분법으로 가둘 수 없는 인물을 그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작품 역시 낯선 톤 앤 매너로 새로운 캐릭터를 직조해 시청자의 시선을 붙든다.

이 반전은 대사보다 임시완의 미세한 연기 결로 설득된다. 윤이준의 날 선 표정이 초반에는 살기 띤 적대감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그 반대편의 정서를 품는다. 틈새로 비치는 빈틈과 괴팍함 이면의 온기가 드러나며, 날카로운 태도가 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음을 납득하게 만든다.
영리한 캐릭터 해석을 뒷받침하는 비주얼도 몫을 톡톡히 한다. 날렵해진 턱선은 예민하고 서늘한 인상을 더하고, 상의 탈의 장면에서 드러난 탄탄한 피지컬은 반전 매력을 완성한다. 섬세한 마스크와 다부진 체격, 화려한 스타일링이 맞물려 독특한 입체감을 빚어낸다.
특히 수려한 비주얼은 극적 장치로서도 기능한다. 강재희가 '백마 탄 기사'가 되고 윤이준이 '티아라를 쓴 공주'로 전복되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비현실적일 만큼 고운 임시완의 비주얼이 클리셰를 비틀며 통쾌한 웃음을 안긴다.
여성이지만 여성성을 지운 채 살아온 강재희와 대비되어, 극 중 이른바 ‘예쁨’의 축을 담당하는 쪽은 외려 임시완이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차지게 붙는 이유이자, 윤이준의 대사 톤이 어딘가 여성적으로 읽힌다는 일각의 반응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목이다.

결국 임시완의 윤이준은 기존 미디어 속 전형적인 재벌 후계자와는 궤를 달리한다. 앙칼지고 섬세한 결을 오가며 호불호의 경계 위에서 호기심과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한다.
물론 지금의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차가운 표정 너머 다정함의 싹은 이미 포착됐다. 임시완은 그 가능성을 조급하지 않게, 한 겹씩 열어 보이는 중이다.
관건은 윤이준의 변화를 이끌 결정적 계기, 그리고 임시완이 그 내면의 진폭을 얼마나 밀도 있게 설득해내느냐다. 윤이준의 다채로운 변모를 지켜보는 일이야말로 ‘나의 유죄인간’을 관전하는 가장 흥미로운 열쇠가 될 것이다.
조성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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