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식당 매니저로선 다 경험했다. 하지만 주방장을 하겠다고 했으니 쉽지 않았다."
마흔 다섯에 늦깎이 영화감독 데뷔. '소수의견'으로 출사표를 던지기까지 김성제 감독은 고단했다. 꼭 영화를 둘러싼 논쟁 때문은 아니다.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에서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을 만큼 영화가 좋았다. 29살에 시네마서비스에 홍보로 입사한 이래 마케팅과 프로듀서 일을 두루 맡았다. '간첩 리철진' '혈의 누' 등 시네마서비스 전성기를 장식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랬던 김성제 감독은 연출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는 "촬영장에 가면 마치 방직공장 라인에 순시하는 느낌이었다"며 "저 안으로 더 들어가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2006년 한국영화 거품이 절정이던 시절, 데뷔를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던 그 시절, 하지만 김성제 감독은 준비하던 영화가 어그러졌다. 열패감에 휩싸였다. 5년 동안 시사회 초대를 받아도 일부러 발을 끊었다. 그랬기에 '소수의견'은 김성제 감독에게 특별했다.
'소수의견'은 지방대를 나와 변호사가 됐지만 로펌에도 번번이 떨어져 국선변호 일을 하던 한 남자가 철거현장에서 경찰을 죽인 한 아버지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그에게 '소수의견'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거창한 의도가 아니었다. 열패감에 휩싸였던 한 남자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맞짱'을 뜨는 이야기였다. 김성제 감독은 '소수의견' 주인공인 윤계상에게도 같은 것을 봤다. 스타지만, 주인공이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열패감이 있을 법 했기에 그에게서 같은 욕망을 봤다.
'소수의견'은 그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내놓기까지 쉽지 않았다. 용산참사 사건을 모티프로 했기에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2013년 개봉을 목표로 했지만 2년이 흘러 아예 다른 배급사에서, 원래 친정인 시네마서비스에서 개봉을 하게 됐다. 영화를 둘러싼 많은 말들 속에서 김성제 감독에게 그와 '소수의견'에 대해 물었다.
-영화감독 데뷔를 계속 준비했었는데, '소수의견'은 연출 제안을 받은 것이었나. 아니면 먼저 제안을 했나.
▶이번 영화를 제작한 선배가 어느 날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 책을 건네주더라. 읽고 난 뒤 이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소수의견'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감독들이 꽤 있다고 하더라. 손아람 작가를 만난 뒤 이야기가 잘 풀려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들어갔다.
-'소수의견'은 법정드라마인데. 이야기가 뜨거워서 선택했는지, 아니면 법정드라마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선택했는지, 둘 다 인지.
▶이야기가 뜨겁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89학번인데 그 시절부터 서울에서 겪었던 풍경들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느낌이었다. 서늘하다고 할까. 그리고 장르 비틀기에 관심이 많았다. 페이소스가 있는 드라마를 선호했고. 그래서 '소수의견'을 하게 됐다. 이제는 메시지가 우선인 영화는 의미가 없는 시대다. 엄숙한 주장을 펼치는 영화보단 재밌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유머로 영화에 쉼표를 주기도 한 것인가.
▶왜 유머 코드를 넣었냐며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 하지만 산다는 게 어떻게 진지하기만 하나. 땅에 발이 붙어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과거에는 한국 법정영화가 배심원 제도가 있는 미국 법정영화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참여재판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한국 법정영화 풍경도 달라졌다. '소수의견'은 거기서 더 들어가 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의견은 결국 권고이지, 판결은 판사가 한다는 걸 부각시켜 모순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미국 법정영화를 번역한 영화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소수의견'이 법정영화지만 정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얀거탑'이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과 같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수많은 정치한 사람들의 욕망이 교집합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참여재판은 출범 초기에 참여했던 사람 중에 지인이 있었다. 말한 것처럼 한국에서 참여재판은 배심원의 법감정 보다는 법이 더 중요하다. 이걸 영화적으로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인공인 윤계상은 영화 속에서 정의감이 불타는 인물도 아니고, 딱히 의지가 뚜렷한 인물도 아닌 것처럼 그려졌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갑자기 이 사건에 왜 깊이 들어가는지가 잘 느껴지지 않는데. 성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무시당했기 때문인지, 뒤늦게 정의에 눈을 떠서인지.
▶그랬다면 내가 연출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윤계상에게 "너는 왜 이 사람이 이 사건에 뛰어든 것 같냐"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나는 "열 받아서"라고 말했었다. 의지도, 뭣도 없었는데, 검사를 만났다가 무시를 받는다. 다 같은 대학 동문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서 지방대 출신 국선변호사라고 커피조차 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같은 법조인이라며 살살하자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것 때문에 열 받아서 뛰어든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양아치 변호사가 개과천선하거나, 감흥을 받아 정의롭게 변하는 것만이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열패감에 시달렸다. 영화감독 준비가 잘 안 풀리자 5년 동안 시사회도 안 갔다.
-윤계상에게도 그런 점을 요구했나.
▶윤계상이 맡은 역할은 남들은 변호사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법조계에 맨 바닥에 있는 인물이다. 다들 명문대 동문으로 그들끼리 단단하게 맞물려 있는 바닥에서 외곽으로 겉돌며 열패감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윤계상 눈빛에서 비슷한 부분을 읽었다. 스타고, 주인공이지만, 배우쪽에선 겉도는, 그래서 더욱 인정받고 싶어하는 열망을 읽었다. 그래서 그런 우리 둘이 이 인물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윤계상은 사실 뜨거운 연기를 하려 했다. 그걸 계속 눌러라 눌러라 시켰다. 열연하는 배우가 싫다면서 힘을 뺀 연기를 주문했다. 대신 윤계상과 만나는 사람들을 최고로 연기 잘하는 사람들을 붙였다. '소수의견'은 윤계상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단역 하나하나까지 다 만난다. 그래서 일부러 연기 잘하는 사람들을 붙여서 승부욕을 자극시키려 했다.
-윤계상이 중간에 다른 사건을 맡는 것은 원래 진행하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밖에 안되는데. 흐름이 좋다보니 자연스럽게 흘러가긴 하지만.
▶인정한다. 최악을 피하고자 선택한 차악의 편집이었다. 원래 다른 내용이 더 있긴 했지만 자연스러운 연결을 하려고 러닝타임을 길게 하다보면 리듬을 놓칠 것 같았다.

-각각의 법정 장면이 앵글과 흐름 모두 자연스럽게 진행됐는데.
▶사실 법정 장면은 제대로 콘티도 없이 진행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배우들에게 법정이 무대이니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참여재판이란 게 결국 배심원 앞에서 하는 연극일테니. 생각하고 선택한 앵글만 찍었다. 이것저것 많이 찍어 편집실에서 붙이는 게 아니라 정확한 장면만 찍도록 노력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변호인'보다 먼저 개봉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에 콘티 없이 최대한 빨리 작업하는 게 필요하기도 했었다.
-철거장면과 법정장면이 '소수의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을텐데. 철거장면 촬영은 어땠나.
▶철거 장면은 아주 정교하게 콘티를 준비했었다. 워낙 중요한 장면이기도 했고. 로케이션 때문에 첫 촬영이기도 했다. 그런데 크랭크인 15일 전에 그 장소에서 촬영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화의 성격 때문에 거절당한 것 같다. 2주 안에 다른 장소를 구하고 섭외를 하고 다시 콘티를 짰다. 첫 촬영 3일 동안은 잠은 못 잤다.
다른 이야기인데 첫 촬영에 이경영 선배가 '더 테러 라이브'를 찍고 새벽까지 술을 먹고 현장에 왔다. 원래 물대포 장면이 없었는데 바로 넣어서 술을 깨는데 도왔다.(웃음)
-'소수의견'은 두 아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런데 두 아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권력층은 비열한 반면 아이를 잃은 아버지들은 선하다. 권력층=악, 서민=선, 이런 이분법적인 구도는 도식적이기도 한데.
▶원래는 국가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의 결과물은 염치에 대한 이야기로 나왔다. 결국은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갖고 있어야 할 게 염치 아닌가. 이 영화는 의경이 화염병을 맞는 것부터 시작한다. 의경이 느꼈을 두려움부터 시작했다. 누가 그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고, 누가 그들에게 사람을 죽이게 했으며, 누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나로 풀어지도록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아들을 죽인 놈을 죽였으니 무죄라고 주장했던 아버지가, 결국 나도 사람을 죽였으니 죄인이라고 토로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자식 죽인 사람을 법정에서 보러 왔던 의경의 아버지가 진실을 알게 되는 모습도 보여 주고 싶었다.
결국 잘 배우고 떵떵거리는 사람들보다 보통 사람들이 더 염치를 알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재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2년 동안 영화 개봉이 미뤄졌는데.
▶당시 심경은 죽음의 5단계였다. 사실이 아닐 거야라며 부인하다가 분노하고 체념하고 그런 나날이었다. 당대성 있는 영화가 싱싱할 때 관객에 도착해야 하는데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를 의심하게 되더라. 구설과 풍문들이 많이 떠돌았지만 남 탓을 하긴 싫었다. 내가 잘 못 만들었으니 개봉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더라.
개봉이 확정되고 영화가 공개된 다음에는 동정 받는 분위기면 어쩌나 싶었다. 만듦새가 부족한 데 그런 걸로 인정받는 게 아닐까 싶었고. 그런데 기자로 출연한 김옥빈이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재미가 없어서 개봉을 못한 줄 알았는데 재밌다고 하더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울컥 했다.
-소설과 결말이 다른데.
▶소설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결말을 바꾸는 것이었다. 소설의 결말과 달리 이 일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공히 연민을 다 주고 싶었다. 소설과 영화에 뿌린 씨앗이 달라야한다고 생각했다.
-에필로그가 여느 상업영화와 다르다. 그런데 2년 전이었다면 느닷없었을 장면인데 2년이 흐르니 이 영화의 많은 것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인데.
▶변영주 감독이 시나리오를 모니터하더니 다 좋은데 이 에필로그는 쓰지 말라고 하더라. 잘난 척으로 느껴진다고. 그런데 이 장면은 대선 마지막 날 고친 것이었다. 그 다음 날 CJ E&M에서 최종 투자 확정 심사가 있었다. 두 가지 버전으로 썼었는데 결국 지금 버전으로 했다. 장르를 비트는 듯한 결말로 맺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작품은.
▶데뷔작을 힘들게 내놓은 지라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