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니무라 준(61). 1981년 데뷔, 연기 경력만 36년에 이르는 그는 이제껏 100편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온 일본의 중견 배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피와 뼈', '갈증 등에 출연한 그는 여러 히트 일본 드라마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얼굴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한 '킬빌 Volumn.1'에도 출연하며 할리우드에도 발을 디뎠다. 그리고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제작 사이드미러 폭스인터내셔널프로덕션)으로 한국영화계에 입성했다.
영화는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발칵 뒤집힌 시골 마을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 전 일본 사람이 흘러들어 온 뒤 흉한 일이 생긴다고 웅성거린다. 쿠니무라 준이 바로 그 외지인이 됐다. 괴이한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낚시를 하고 동네를 오가는 노인이지만 순간순간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끝장을 보여주고야 마는 결말에서는 더욱 섬뜩한 모습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쿠니무라 준은 시종 미소를 잃지 않는 신사였다. 진솔하고도 유쾌한 모습이었다. 지독하기로 이름난 나홍진 감독의 현장을 겪으며 "한국영화는 다 이런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 속 누군들 고생하지 않았으랴마는, 쿠니무라 준은 헐벗은 몸으로 산을 쏘다니고, 생고기를 먹고, 절벽에 매달리며 열연을 펼쳤다. "정말 더는 못하겠다"고 할 때 나홍진 감독은 "2번만 더"를 외쳤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그는 나홍진 감독이 불러준다면 또 한 번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와 감독, 함께한 동료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어떻게 출연을 결정했나.
▶감독님이 먼저 일본에 와주셔서 시나리오를 전달받아 읽고 같이 하게 됐다. 처음 감독님을 뵙고 나서 됨됨이를 봤고 말씀하는 내용을 들으며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때는 시나리오를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해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나홍진 감독은 쿠니무라 준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외지인을 일본인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인연이 있었나.
▶감독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외지인을 일본인으로 설정한 것은 처음 알았다. 이전에는 몰랐다. 나홍진 감독과 이전에 만난 적은 없다. 출연을 결정하고 난 뒤에 '추격자'와 '황해'를 봤다.
-감독의 전작을 보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할 만큼 매력적인 시나리오, 캐릭터였나.
▶결정할 때까지 시간은 걸렸다. 하지만 역할 자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도전이었다. 고민을 했다기 보다는 망설임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를 보고 종합적인 고민을 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거의 옷을 안 입고 있다. 내 몸을 그렇게까지 노출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훈도시(일본식 남성 속옷)도 없이 전라 노출을 하는 설정이었다. 그건 고민이 좀 되지 않겠나.(웃음)

-영화를 본 느낌은?
▶시나리오와도 구성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어를 모르니 전체적인 내용이나 다른 배우의 대사는 기억을 다 못한다. 초반부에 관객이 다 웃는데 혼자만 이해를 못해 조금 쓸쓸하긴 했다.(웃음) 시나리오를 읽어 아는데도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내가 촬영한 장면이 나오니 신기한 기분이 됐다. 대사를 모르고 그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아도 흡인력이 있다. 빨려 들어가서 봤다.
-스스로 내가 아닌 것 같은 장면이 있었나.
▶마지막 장면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가장 부끄러웠던 장면은 시장에 닭을 사러 가는 장면이다. 역할이 아니라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신은 시나리오에 없었고 상황만 놓여 있었다. 현장 여배우(황석정)와 애드리브를 하다보니 내 모습이 표현된 것 같다.
-나홍진 감독의 촬영장은 치열한 현장으로 유명하다. 직접 경험해보니 일본의 영화 현장과 어떻게 달랐나.
▶나홍진 감독의 현장이 힘들다는 것은 촬영이 끝난 뒤에 알았다. 촬영하면서는 한국영화는 다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 일본 영화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현재 일본영화 현장에서는 감독이 모든 걸 콘트롤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 감독님의 현장은 감독님이 모든 걸 콘트롤한다는 게 달랐다. 말을 달리하면 조금 제멋대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웃음)
-한국에서 촬영이 낯설었을 텐데 오래 머물며 촬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렇게 낯설어서 힘들다기보다는 산 속 촬영이 많아서 산에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폭포물을 맞고 있는 신이 있지 않나. 꽤 높은 곳에 있는 폭포였다.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런데 폭포 물을 맞고 있으니 크레인으로 나를 찍더라. '아니 이 크레인은 어떻게 올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태프가 크레인을 올리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니 내가 힘든 건 말을 못하겠더라.

-그래도 육체적 어려움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처음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했다.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았다. 육체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할 때는 더이상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고라니를 먹는 장면을 계속 찍다 보면 아무래도. 원래 육회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속이 니글거릴 정도였다. 더이상은 못 먹겠다고 했다. 속이 안 좋겠다고 해도 '2번만 더 가자'고 했다. 출연 작품을 세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현장은 처음이었다.
-더 힘든 장면도 있었나.
▶고소공포증 비슷한 증상이 있어 높은 곳을 힘들어한다. 절벽신이 있는데 감독님은 원래 그보다 더 험난한 절벽에서 찍고 싶어 하셨다. '부탁이니까 제발 저기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조금 내려 주신 게 그 절벽이다. 많은 힘든 경험이 있었어도 촬영이 끝나면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아 그때 그랬지' 하고 생각난 건 역시 고라니 먹는 장면이다. 멀리서 찍으니 먹는지 안 먹는지 잘 안 보이는 상황이다. 삼키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육회를 물고 연기했다.
-돌아가서 주변 일본 배우들에게 한국영화에 출연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럴 말을 한 적은 없다.(웃음) 돌아가서 현장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한계점까지 몰아가더라는 이야기는 했다.
-그럼 나홍진 감독이 다시 작업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나 감독이 다시 하자고 한다면 할 것이다. 다만 '곡성'보다는 체력이 나빠 한계점이 떨어져 있다는 걸 감안해 주신다면 생각해 보겠다. 가능하면 다음에는 인간 역을 해보고 싶다.(웃음)
-곽도원 등 함께 연기한 한국배우들은 어떤 느낌을 줬나.
▶곽도원 뿐만 아니라 한국배우와 함께 하며 느낀 점인데, 모두 맡은 역할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현장에서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준비하고 온다. 프로정신을 느꼈다. 곽도원과 연기해 보니 그렇게 준비를 해 오지만 현장에서 요구하는 대로 바로바로 변화가 가능하다. 곽도원의 연기가 변하면 내 연기도 변하게 된다. 서로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즐거운 과정이었다. 한국 영화배우들의 강점이랄까. 기초가 탄탄하다. 굉장히 퀄리티가 높은 베이스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촬영 기간 동안 곽도원과 사적으로 밥도 같이 먹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곽도원이 영화계에 들어와 지금에 오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된 게 아니라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으며 실력을 쌓아 지금에 왔구나 하고 느꼈다.

-칸영화제에 가는 소감은.
▶처음으로 가는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영화제는 베니스영화제에 몇년 전 간 적이 있는데 그 대도 굉장히 즐거웠다. 칸에 가는 것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처음 칸에 가는 영화가 한국영화라는 것에 스스로 만족한다. 일본에서는 (내가 칸에 가는지) 아직 잘 모를 것이다.(웃음)
-한국영화에 다시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 제안이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 첫 한국영화를 했지만 한국 배우와의 작업도 즐거웠고 감독과의 작업도 좋았다. 한가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일본인이 적으로 나오는 일반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라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단지 나쁜 편이 아니라 중립적인 상태에서 변화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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