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해일(39)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곧 불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에는 소년 같은 순수함과 '은교'에서 보여준 노인의 모습이 다 담겨 있다. 마냥 순진해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 눈빛 뒤에 무언가를 숨긴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그가 연기했던 용의자 박현규 역할은 많은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15년 동안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애절한 멜로부터,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 속에서 박해일은 변화를 거듭했다.
박해일은 이번에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로 돌아왔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박해일은 영화 속에서 듬직하면서도 부드럽고,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독립운동가 김장한으로 출연한다. 김장한은 실제인물과 영화적 설정이 더해진 복합적인 캐릭터다. 그는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또 위험을 무릅쓰고 영친왕 망명 작전을 이끌고, 해방 후에는 덕혜옹주를 다시 귀국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다.

박해일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인터뷰를 가지고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허진호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배우들과 의견을 나누고 수렴하면서 촬영 전부터 호흡을 맞추며 들어갔어요. 여유 있게 준비했는데 막상 촬영 현장은 빠듯했어요. 한 겨울에 시작해서 끝나니까 봄이 오더라고요. 정신없이 촬영했어요. 예산도 크다 보니까 다들 열심히 했죠. 미리 준비한 것이 많아서 촬영이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덕혜옹주' 속 박해일은 독립투사로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면서도 로맨틱함이 묻어난다. 허진호 감독 특유의 색깔과 박해일이 가진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김장한이라는 캐릭터는 여심 스틸러로 거듭났다.
"영화에서 군인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감성에 충실하자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 마지막 버전을 봤을 때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죠. 관객들이 덕혜옹주의 삶에 주목하면서 나라는 캐릭터가 관객이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렌즈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 속에서 내레이션을 하는데, 그 내레이션을 통해서도 그런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덕혜옹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역사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많다. 덕혜옹주라는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만큼, 영화를 만들면서 더욱 많은 고민과 치열한 논의가 있었을 터. 특히 박해일이 맡은 김장한이라는 역할은 역사 속에 실제 존재했지만,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기에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 출연 전 이런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그 시절에 진지하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허진호 감독의 제안을 받았죠. 김장한이라는 역할은 제가 여러 작품 해오면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녹여내서 재밌게 해 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손예진씨와 첫 호흡인데, 이 작품으로 만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허진호 감독도 마찬가지고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
그의 말대로 박해일과 손예진은 이번 '덕혜옹주'로 첫 호흡을 맞췄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첫 연기호흡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끈끈한 연기를 모여준다. 두 사람은 직접적인 애정표현 없이도 서로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보여주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물었다.
"예진씨는 워낙 준비가 잘 돼 있었어요. 본인의 감정을 항상 놓지 않았죠. 매번 눈이 충혈된 상황의 장면들이 많다 보니까 감정을 안 깨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하하. 손예진씨는 촬영에 집중할 때는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듣더라고요. 그런데 무슨 음악 듣고 있느냐고는 한 번도 못 물어봤어요. (웃음) 무섭게 집중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다 싶으면 농담도 잘했어요. 가끔씩 '이 농담에 웃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었지만 항상 잘 웃어줬어요."

앞서 지난 2012년 영화 '은교'에서 완벽한 노인 연기로 눈길을 끌었던 박해일은 이번 '덕혜옹주'에서도 노역 연기를 펼친다. 안경을 쓰고 다리를 절면서 나오는 박해일의 노역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은교' 촬영 후 다시는 노인 분장을 안하겠다고 했던 박해일은 이번에도 완벽하게 해냈다.
"노역 연기도 나름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작품을 통해서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고 뭔가 배우로서 하나의 무기를 장착한 느낌이에요. 나라는 사람은 한 명인데 그 특수분장을 통해서 나이대를 확장 시킬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관객들이 봤을 때 그럴싸하게 보이면 성공인 거죠. 또 최근에 기술이 더 발달해서 몇 년 전보다 더 편하게 분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일단 당분간은 다시 노역을 안 할 생각입니다.(웃음)"
박해일은 데뷔 후 영화만 촬영했다. TV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팬들이 많지만 그는 단 한편의 미니시리즈나 일일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그는 왜 영화를 고집할까. 드라마에 출연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이번 '덕혜옹주'도 마찬가지지만 계속해서 해보고 싶은 영화작품이 나타나요. 다양하게 영화를 하다보니 거기(드라마)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라는 장르는 영화랑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를 하려면 차근차근 잘 준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더 하고 싶은 영화가 나타나고, 드라마를 패스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해일은 많은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꼽힌다. 잘생겼다기보다 훈훈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의 외모를 많은 여성들이 이상형으로 꼽는다. 또 박해일 특유의 눈빛연기는 여성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남녀노소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저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얼굴이에요. 그냥 제가 생긴 걸로(연기를) 잘 해보는거죠. 하하. 눈빛 연기를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저는 눈에 힘을 빼라고 하면 빼고 눈에 힘이 없다고 하면 힘을 주고 할 뿐이에요. 저에게 좋은 부분이 있다면 배우로서 잘 활용해야죠. 배우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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