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염혜란 인터뷰.
"왕관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배우 염혜란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돌아왔다. '더 글로리', '마스크걸', '폭싹 속았수다'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그는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를 통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매드 댄스 오피스'는 24시간 완벽하게 살아오던 공무원 '국희(염혜란 분)'가 조금 망해버린 인생 앞에서 플라멩코 스텝을 밟으며 몰랐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염혜란은 이번 작품에서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신을 선보인다. 그가 연기하는 '김국희'는 냉철한 완벽주의로 조직을 장악해온 인물이지만, 승진 누락과 딸과의 갈등이라는 삶에서의 첫 균열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매드 댄스 오피스'의 주연으로 스크린에 복귀한 데 대해 "사실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워낙 적은 예산으로 찍어야 하는 영화라서 하루에 소화해야 하는 장면이 많았다. 짧은 시간 안에 이걸 해내야 하는데 제가 출연하지 않는 회차가 없더라"며 "분량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장면 숙지를 위해 노력했고, 체력 안배도 너무 중요했다. 하루종일 찍으니까 힘들더라"라고 밝혔다.
염혜란은 주연의 무게감과 부담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저에게 무거운 부담감이 밀려올 때마다 잠식당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한 장면 한 장면 충실하게 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며 "부담스러울수록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까 이 영화가 말하는 바대로 힘 꽉 주고, 한 장면 한 장면 해보자는 마음으로 해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조연 배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내가 조연이었을 때, 주연 배우 중 누군가가 내 연기를 든든하게 생각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영화 '시민덕희'(2024)를 언급했다. 염혜란은 "코미디적인 요소도 있고, 여성 주연이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분이 비슷하다. 찍을 때 (라) 미란 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당시 미란 언니가 '조연일 때는 한 신을 살리기 위해 온힘을 다해야 하는데, 주연은 조연의 도움을 받는 역할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던 적 있다. 언니가 정말 힘든 역할을 해낸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털어놨다.
특히 염혜란은 이번 작품에서 공감되는 지점에 대해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나 이런 영화 좋아하지. 재밌겠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요즘 여성 서사의 작품이 많아지는데 제가 그동안 제안받았던 건 세거나, 장르적인 작품이었다. 그냥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모든 여자가 킬러고, 능력자일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시기에 '매드 댄스 오피스'를 제안받았고, 2024년에 촬영했다.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라서 좋았다"며 "아무래도 힘이 들어간 연기를 하다가 평범함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잘 맞았다"고 전했다.
그는 일과 육아의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염혜란은 "최대한 (아이를) 제가 키우려고 노력했고, 그 부분이 힘들긴 했다. 이 작품을 통해 공감했던 건 저도 딸에게 제 식대로 뭔가를 강요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내가 먼저 살아본 입장에서 너한테 가르쳐 주려고 했던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제가 먼저 인생을 살면서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딸에게 충고의 탈을 쓴 강요를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희'의 그런 모습에서 실제 저처럼 느껴졌다. 딸은 나와 다른 사람이고,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존재인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그런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염혜란은 작품 촬영 이후 변화된 점이 있냐는 질문에는 "저는 하루에 한 번씩 다짐하고, 늘 바뀌려고 노력한다. 근데 작심삼일이다. 화냈다가도 후회하고, 다시 결심하는 과정인 거다. 모녀들은 특히 그렇다"고 덧붙였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더 글로리', '마스크걸' 등 다양한 작품에서 강렬한 존재감으로 서사를 단단히 지탱해 온 만큼, 배우 염혜란의 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이에 대해 염혜란은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왕관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어떤 캐릭터로 기억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광례, '더 글로리'의 현남을 맡았던 것은 하늘이 도운 경우라고 본다"며 "어느 작품, 어느 연기에서는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그럴 때도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염혜란은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배우는 시기를 타는 것 같다. 바로 전에 끝났던 작품과 비슷한 결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강렬한 캐릭터와 다른 걸 해야 다른 기대도 생길 것 아닌가"라며 "그래서 안타깝게 보내는 작품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그 정도 롤에 그 정도 이야기면 무조건 했을 텐데 전작과 비슷하면 자신이 없다. 캐릭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걸 내가 다르게 표현할 자신이 없는 거다. 연기력의 한계가 보일 거 같으니까 안타깝게 보내주는 작품이 생기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저를 많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한데 오히려 (작품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그래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상황"이라며 "요즘 같이 힘들 때 영화를 계속 찍는 걸 부러워하는 배우들이 많다. 스크린에 어렵게 걸린 작품들이기 때문에 더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지금까지 버텨온 힘도 단기적으로 봤다. 근시안적으로 봐서 여기까지 온 거다. 너무 좋은 작품이 많지만, 결과를 떠나서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제는 '결과가 장담이 안 될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관객 수에 대해 고민도 한다. 점점 순수해지지 않는 거다. 이제 다른 것들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런 것에 초연하고,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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