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차인표가 '죽은 시인의 사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직접 전했다.
차인표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길 NOL씨어터 대학로에서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이하 '죽시사')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초연은 1989년 개봉해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한 톰 슐만(Tom Schulman)의 동명 극본을 원작으로 삼은 국내 최초 정식 라이선스 초연이다. 1959년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 기숙학교 '웰튼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새로 부임한 영어 교사 '존 찰스 키팅'과 입시 위주의 현실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소년들의 서사를 그린다.
원작 영화는 피터 위어 감독의 깊이 있는 연출과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로 세계적인 성과를 거뒀고, 권위주의적인 교육 현실과 부모의 욕망 아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청춘들의 비극을 짚어내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작품은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전파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이라는 대사와, 마지막 순간 교장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책상 위에 서서 "오 캡틴, 나의 캡틴"을 외친 학생들의 대사가 명대사로 꼽힌다.
연극에서도 베테랑 배우들의 내공과 신예들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열연이 돋보인다. 학생들에게 주체적인 생각을 전하는 스승 '존 찰스 키팅' 역의 차인표, 오만석, 연정훈은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수행하며 중심축을 이끌어간다. 이와 함께 억압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소년 '닐 페리' 역의 김락현, 이재환, 찬희(SF9)와 '토드 앤더슨' 역의 김태균, 문성현 등 신예 배우들이 라이브 무대 위에서 긴밀한 사제지간의 유대감을 그려낸다.

차인표는 '죽시사'를 통해 오랜만에 연기활동에 복귀한 이유를 묻자 "제가 예전에도 연극 출연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거절을 해왔다. 연극을 해보고 싶었지만 준비 기간도 길고 틀에 박힌 연기생활을 하다보니 그랬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제가 나이도 들고 소설을 쓰고 다른 영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사람이 한 가지 영역에만 안주할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거기서 얻는 기쁨이 크다는 걸 소설을 쓰며 느꼈다"라며 "제 아내나 주변 사람들도 '이번에 연극을 해보면 어떠냐'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차인표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제가 21살 때 봤던 영화인데, 이제 와서 보니 키팅 선생이 던진 질문이 맞았던 거구나 싶더라. 삶을 오래 살고서 이 역을 하면 진정성이 있을 수 있겠가 싶었다"라고 전했다.
차인표는 "저는 제가 가진 것에 비해 대중 연예인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한 평생 잘 살았다. 이렇게 혜택을 잘 받은 사람으로서 연극무대에 뒤늦게 참여하게 됐는데, 정말 수많은 젊은이들이 젊음을 불태우며 연극에 도전하고 땀흘리는 걸 봤다. 제가 대중문화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소설 다섯 권을 냈는데, 그것이 원작으로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라고 덧붙였다.
준비 과정의 비화를 묻자 "연정훈 씨, 오만석 씨 등 많은 분들이 올해 초에 이미 캐스팅 됐고, 저는 올해 4월에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고나서 봤더니 5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연습을 해야 하더라. 연습을 매주 일요일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종일 해야 하더라. 망설이다가 하게 됐는데, 젊은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일찍 와서 몸을 풀고 연습하고 있더라. 그들을 보면서 '이들의 열정에 내가 물을 끼얹지 말아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하고 연습에 거의 빠지지 않고 자극을 받으며 연습했다"라고 말했다.


차인표는 아내인 배우 신애라가 '죽시사'를 본 반응에 대해 "아내가 적극적으로 하라고 해서 연극을 했다. 아내가 첫 공연 전에 '내가 더 떨린다'고 하더라. 보고서는 '거봐. 하길 잘했지'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어떨 때는 아내가 지인을 공연장에 놓고 자기는 그냥 가기도 한다"라고 웃으며 "오늘도 최지우, 유호정 씨를 데려온다고 하더라. 배우, 스태프들에게 멋진 도시락을 선물해주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차인표는 "애들도 다 컸지만 여러 번 관람을 했다. 막내 딸이 19살인데 학생 배우 중에 찬이 씨가 나오는 걸 보고 싶다고 3번 예매를 했더라"라고 전했다.
차인표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무엇일까. 그는 "나도 이번에 공연 연습을 하면서 '나는 어떤 어른일까' 싶었다. 저도 이 다음 작품 오디션을 보는데 다 떨어지고 있다"라고 웃으며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무언가 독차지하지 않고 많이 나누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공연하면서 보니 청년들과 같이 연습했는데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아 미안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어떤 사람이 좋은 리더인가'에 대해서도 물었다. 차인표는 "'같이 있을 때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저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 삶이 값어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드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습기간 두 달 동안 어떤 연습에 중점을 뒀는지 묻자 차인표는 "감독님이 성인 연기자인 저나 오만석 씨, 연정훈 씨에겐 큰 지적을 하지 않더라. '당신 연기에 당신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란 생각이 있으신 것 같았다. 맨 끝에 앉은 관객분이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곤 했다. 성량, 호흡에 대해서 제가 후배들까지 주변에 물으면서 조언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연극은 같은 대사의 연습을 수백 번 하게 된다. 모든 팀이 축구팀처럼 하나가 돼서 합을 제대로 맞춰야 하더라. 팀플레이가 중요하더라. 내가 설령 못해도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공백이 생기면 다른 배우가 채워주기도 한다"라고 연극 무대의 차별점을 밝혔다.
차인표는 "지금 20대가 사는 환경은 제 나이대인 50대가 만든 것 같다. 제가 20대 때는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 희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20대들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책임감도 갖고 미안하단 생각도 갖고 있다. 그것과 별개로 인간 본연으로서 조언은 해줄 수 있다고 본다. '카르페 디엠'은 충고가 아니라 오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습관을 쌓아가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깨우쳐주고 싶다"고 전했다.

차인표는 "저는 원작의 키팅보다 늙은 키팅이지 않냐"라고 웃으며 "'인간은 여러 틀이 있으니 다른 선택지도 봐라'라는 걸 진심을 담아서 연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죽시사'가 현 교육 상황에 비하면 '낭만 주의'란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 같은 지적에 차인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의 이야기를 감성팔이 하듯이 하는 건 아닐까 저도 고민했다. 텍스트를 보시고 연극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린 지금의 틀을 다 부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각자가 태어난 틀이 다 다르고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길 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요즘 청소년이 저희 연극을 보고 얼마나 공감할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에 자립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를 통해 제가 청소년, 청년 200분을 모셨다. 보육원에 있는 학생들 중에 어떤 학생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이 연극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연극이 교육적인 부분에서 큰 담론을 만들거나 어떤 걸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라고 말했다.
주로 드라마를 많이 했던 '매체 배우' 최수종, 이서진도 최근 차인표처럼 연극에 도전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차인표는 "작품 수 자체가 많이 줄어서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라며 "제가 오만석 씨에게 '다른 배우가 연극계에 오는데 연극계에선 시선이 어떠냐'라고 물었더니 오만석 씨가 긍정적이라고 하더라. 다시 대학로가 북적이면 좋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차인표는 같은 롤을 맡은 오만석, 연정훈의 연기를 본 소감으로 "오만석 배우는 베테랑답게 부드럽게, 디테일하게 감정을 잘 살려서 연기하더라. 연정훈 배우는 특유의 다정함이 연기에도 보이더라. 평소에도 젠틀하고 말수가 많지 않은데 무대에서 키팅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칭찬했다.
차인표는 "'아 배우가 되려면 연극을 했어야 했구나'란 후회를 이번에 하고 있다. 대중 배우들도 연기생활을 계속 할 거면 제 충고를 듣고 연극을 하길 바란다. 연극은 대사를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하지 않으면 오르지 못 한다. 앞으로 좋은 작품이 있다면 저는 또 고려해볼 생각이다. 연극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뭐가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다. 젊은 배우들을 위한 세미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일정에 많은 취재진이 모이자 그는 "제가 군대 제대했을 때 이후로 거의 30년 만에 이렇게 취재진이 많이 온 건 처음이다"라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차인표는 '죽시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예전에 제 짝이 학력고사 한 두 달 남기고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다. 그 친구가 나에게 '서울대 가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할까'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나도 공부를 못 했는데 말이다. 저와 담임선생님, 친구들이 굉장히 가슴 아파했는데 이번에 연기하면서 닐 페리와 오버랩되더라. 그 친구에게 '학력고사를 못 봐도 잘 살 수 있더라'라는 걸 말해주고 싶더라"라고 전했다.
차인표는 앞서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이후 대표작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 바. 그는 "어머니가 '인표야, 네 대표작을 '죽은 시인의 사회'로 바꾼 것을 축하한다'라고 해주셨다. 그 평가로 제 꿈은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지난 7월 18일부터 오는 9월 13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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