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초반부터 ‘한국프로야구(KBO) 출신 슬러거’들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2016 시즌이 두 달째로 접어든 현재 이들은 이미 13개의 홈런을 합작했다. 이중 강정호는 지난 주말 복귀하자마자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 피츠버그 중계진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잊고 있었다”는 탄성을 자아냈고 이대호도 1루 플래툰 시스템에 막혀 파트타임 선수로 있으면서도 단 39타수 만에 이미 홈런 4방을 쏘아 올렸다. 코리안 슬러거를 대표하는 위치로 올라선 박병호는 이미 홈런 7개로 팀에서 홈런 2위에 3개차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홈런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타구의 질도 뛰어나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거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대형 홈런을 쏟아내며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의 이 같은 홈런 페이스는 이들을 향한 메이저리그 측의 기대는 물론 한국팬들의 기대까지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사실 전형적인 파워히터인 박병호의 경우는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정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KBO리그에서 마지막 2년 연속으로 50홈런을 돌파한 그의 파워가 빅리그에선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나타날지가 최고의 관심사였다. 이를 놓고 많은 예상이 나왔는데 대부분은 20~25개 수준이 가장 많았다. 30개 이상을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고 20개만 쳐도 성공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박병호의 파워는 인정하지만 과연 그가 타구를 ‘정기적으로’ 담장 밖으로 쳐낼 수 있을 만큼 메이저리그 피칭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들은 그 이유로 박병호가 KBO에서 기록한 높은 삼진 비율을 지적했다. 박병호는 KBO에서 마지막 2년간 홈런 105개를 치면서 무려 303번이나 삼진을 당했다. 삼진 비율이 각각 24%와 26%로 상당히 높았다. 많은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 피칭을 만나면 박병호의 삼진비율이 3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점쳤다. 삼진 비율이 그 정도로 높을 정도로 공을 맞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힘이 좋아도 ‘종이호랑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박병호를 위시한 이들 KBO 출신 슬러거들의 파워풀한 방망이는 메이저리그 팬들과 언론들의 의심쩍은 시선을 펜스 밖으로 훌쩍 날려버리고 있다. 사실 박병호는 9일 경기까지 29차례 삼진을 당해 삼진비율이 29.6%에 달할 만큼 이 부문에선 아직까진 우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첫 6경기에서 삼진 12개를 당한 뒤엔 다음 20경기에선 17차례만에 삼진을 당해 삼진 비율을 대폭 떨어뜨렸다. 초반 6경기를 제외한다면 박병호의 삼진 비율은 22.7%에 불과하다. 박병호 같은 파워히터가 이 정도 삼진 비율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시즌 30홈런을 거뜬하고 40홈런 돌파도 불가능한 목표만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병호만이 아니다. 출장기회가 워낙 적은 탓에 메이저리그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대호의 홈런 파워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대호는 거구의 체격과 엄청난 파워에도 불구, 타격 스타일 측면에서 전형적인 슬러거의 틀에선 약간 벗어나 있는 선수였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인 지난 2010년 9경기 연속홈런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시즌 44홈런을 때린 적이 있지만 그해를 제외하면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이 29개(2007년)로 시즌 30홈런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가 KBO리그에서 홈런왕에 오른 횟수(2회)보다 타격왕에 오른 횟수(3회)가 더 많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대호가 전형적인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본 무대에 진출한 뒤에도 4년간 24-24-19-31개의 홈런을 때려 시즌 30홈런을 넘긴 경우가 지난해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런 그가 시애틀에서는 벌써 39타석에서 이미 홈런 4방을 때려내 홈런 당 타수(AB/HR) 수가 9.75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표본 사이즈가 너무 적기에 이 통계수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매 10타석마다 홈런 하나를 친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상대적으로 박병호는 86타석에서 7홈런으로 AB/HR이 12.29를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 타자로 메이저리그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는 지난 2003년 뉴욕 양키스 데뷔시즌에 623타수에서 16홈런을 때려 빅리그 첫해 AB/HR 38.94를 기록했다. 거의 40타석마다 홈런 1개를 쳤다는 이야기다. 10타석 전후로 1개씩을 때리는 박병호와 이대호가 첫 해에 얼마나 뛰어난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박병호와 이대호가 이런 페이스를 계속 이어갈지는 미지수지만 기회만 계속 주어진다면 마쓰이의 첫 해 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박병호의 경우는 마쓰이가 기록한 아시아타자 한 시즌 최다홈런기록(31개, 2004년)을 첫 해에 넘어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사실 이들보다 한 해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는 지난해 마쓰이의 데뷔 첫해 홈런기록을 먼저 깰 수 있었다. 421타수에서 15홈런을 때려 마쓰이의 기록에 홈런 1개차로 육박했던 강정호가 지난해 9월18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시즌을 중도에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박병호와 이대호는 마쓰이가 아니라 강정호의 기록을 쫓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강정호의 AB/HR은 28.07으로 시즌 초반 고전에도 불구하고 마쓰이의 시즌 첫 해 38.94보다 훨씬 좋았다.
이들 KBO 슬러거들이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밀리지 않는 파워를 보여주면서 메이저리그에서 KBO를 보는 시각에도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보다 훨씬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일본의 경우도 파워히터로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 선수는 마쓰이 한 명밖에 없다. 명예의 전당 입성을 예약한 이치로가 있지만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13홈런을 쳤음에도 불구, 시즌 최고홈런이 15개일 정도로 파워와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올해 박병호와 이대호, 강정호 등 코리안 슬러거들은 메이저리그가 한국야구를 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전망이다. KBO 출신은 아니지만 ‘코리안 빅리거’ 가운데 가장 확실한 스타로 꼽히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아직 적응과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도 빨리 이 대열에 합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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