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의 갈림길에서 김경문(67) 한화 이글스 감독의 선택은 김서현(21)이었다. 굳은 믿음에 타선은 대역전극으로 보답했고 한화의 마무리는 무려 26년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김서현은 29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3차전에서 팀이 1-2로 끌려가던 8회초 구원 등판해 1⅔이닝 동안 25구를 뿌려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호투하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200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문동환에 이어 무려 19년 만에 한화의 승리를 이끈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대전에서 열린 한국시리즈로는 1999년 4차전 정민철이 선발승을 챙기고 구대성이 세이브를 올린 승리 이후 26년 만에 거둔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올 시즌 한화의 주전 마무리로 도약해 33세이브를 따내며 팀의 정규리그 2위를 이끌었지만 시즌 막판 SSG 랜더스전이 악몽이 됐다. 승리한다면 타이브레이커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마무리 상황에서 등판한 김서현은 SSG의 무명 타자 현원회와 이율예에게 홈런 2개를 맞고 패전을 떠안았다.
충격적인 결말은 플레이오프로도 이어졌다. 지난 18일 플레이오프 1차전 9회초 세이브 상항에서 등판해 이재현에게 솔로포를 맞고 강판됐고 4차전에서도 6회 앞서가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으나 김영웅에게 스리런 홈런을 허용했다.

주전 마무리를 쉽게 등판시킬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놓였으나 김경문 감독은 "한화의 마무리는 김서현"이라며 믿음을 나타냈다.
한국시리즈 1차전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오스틴 딘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감을 되찾은 김서현은 이날 8회초 한승혁이 흔들리며 1사 1,3루에 놓이자 소방수로 등판했다. 더 점수가 벌어지면 3연패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경문 감독은 믿음을 보였다.
김서현은 볼카운트 1-2에서 폭투를 범해 3루 주자의 득점을 허용했지만 오스틴과 김현수를 연달아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8회말 타선이 김서현의 짐을 나눠들어줬다. 김태연의 2루타, 손아섭의 안타로 차린 1사 1,3루 기회에서 문현빈의 1타점 적시타와 2사에서 채은성과 대타 황영묵의 연속 볼넷으로 3-3을 만들었고 심우준이 역전 2타점 적시타, 최재훈이 쐐기 2타점 안타를 때려냈다. LG 마무리 유영찬을 두들겼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4점의 리드를 안고 다시 9회초 등판한 김서현은 선두 타자 문보경에게 안타를 맞고 박동원에겐 몸에 맞는 공도 허용했으나 1사 1,2루에서 문성주에게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경기를 매조졌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김경문 감독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경험한 걸로 보면 선수는 조그만 자신감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결과로 나오는데 오늘 경기로 서현이도 충분히 잘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심)우준이도 그동안 수비 쪽에서 잘해줬으니까 자신감을 갖고 내일 경기에서 또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회말 심우준의 역전 적시타 이후 추가점 없이 5-3 2점 차였어도 김서현이 9회에 등판했을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믿음을 나타냈다.
자신감을 찾은 만큼 내일도 대기한다. 이날 아웃카운트 5개를 잡아내며 25구를 던졌는데 김 감독은 "안 그래도 30개가 넘어가면 고민하겠는데 그 안쪽이었고 오늘 이기면서 좋은 분위기로 끝났기 때문에 내일도 준비시킬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기 후 수훈 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김서현은 "8회에 역전해 기쁘고 분위기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승리 투수는 신경을 안 썼고 팀이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진 걸 모두 다 쏟는다는 생각으로 던졌는데 너무 좋은 기록이 나왔다. 팀의 승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오랜 만이라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랜더스전 때부터 시작점이었다. 그때부터 자신감을 잃다보니 야구장에서도 많이 위축되고 경기에서도 그랬다"며 "주변 선배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고 감독님과 코치님도 자신감 있게 던지라고 해주셨다. 불펜 투수 형들도 많이 응원을 해줬다. 최대한 빨리 일어나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선배님들이 '너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게 주눅들 필요없다'고 해주셨다. 그런 말을 들으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감을 찾고 경기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힘겨운 시간을 거친 만큼 더욱 쾌감이 큰 결실이었다. 김서현은 눈물의 이유에 대해 "랜더스 전때부터 흔들림이 많았다. 안 좋은 일들도 있었는데 오랜 만에 잘 막아냈다. 특히 9회에 막은 게 너무 오랜 만이어서 그랬다"고 털어놨다.
내심 서운함도 있었다. 주전 마무리라는 위치와 달리 가을야구에서 쓰임새가 확실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플레이오프 3차전에선 문동주가 불펜으로 나서 4이닝을 책임졌다. 김서현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서현은 당시를 돌아보며 "굉장히 나가고 싶었지만 동주 형이 저보다 페이스가 훨씬 좋았다. 서운함도 있었는데 동주 형에게 미안했다. 잘 막아줬는데 끝나고 나서 제가 못 뛰어서 동주 형이 마음이 안 좋았을텐데 고맙다고 하지 못해 미안했다. 동주 형이 잘 막아줘 제가 다시 일어날 기회가 생겼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김서현이 한화의 마무리라며 믿음을 보였다. "저를 그만큼 믿는다는 것이기에 무조건 믿음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는 김서현은 "오랜 만에 팀 승리를 거두며 좋은 기억이 생겼다. 남은 경기에서 자신감을 새기면서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경기에 나가선 안전하게 막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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