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내년 3월 A매치 평가전 계획이 꼬여버린 모양새다. 무려 2년 6개월 만에 유럽 원정길에 나서는데, 정작 대부분의 유럽 강팀은 유럽을 떠나거나 2연전 대진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정사실이 된 오스트리아와 평가전은 그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으나, 2연전 중 남은 한 상대가 문제다. 경우에 따라선 유럽까지 떠나 정작 아프리카 등 타 대륙팀과 중립 평가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우선 3월 A매치 2연전 중 한 상대는 오스트리아가 사실상 확정됐다. 16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현지 매체와 랄프 랑니크(독일)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 감독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3월 A매치 2연전 중 두 번째 경기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한국시간으로는 4월 1일 새벽이 유력하다.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 조 추첨식과 베이스캠프 사전 답사를 마치고 귀국한 날 "한 국가(상대)는 정해진 걸로 안다"고 밝혔던 대진일 가능성이 크다.
FIFA 랭킹은 한국이 22위, 오스트리아는 24위로 오히려 한국이 2계단 더 높다. 그나마 오스트리아전은 한국과 같은 월드컵 A조에 속하게 될 유럽축구연맹(UEFA) 플레이오프(PO) 패스 D 승자에 대비하는 의미가 있다. UEFA PO 패스 D에는 덴마크와 체코, 아일랜드, 북마케도니아가 속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PO 통과 가능성이 큰 덴마크의 FIFA 랭킹이 21위로 오스트리아와 큰 차이가 없다. '가상의 UEFA PO 패스 D 승자전' 정도로 평가할 수 있는 매치업이다.
문제는 3월 평가전 남은 한 상대다. 유럽팀과 격돌하는 것 자체가 2년 6개월 만인 데다, 월드컵 조별리그를 넘어 토너먼트에서도 확률상 유럽팀과 만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유럽팀과 2연전'은 기본 구상이어야 한다. 더구나 월드컵에서 만나게 될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비 평가전은 이미 지난 9월 북중미 원정, 지난달 가나전을 통해 각각 경험했다. 맞대결 경험 자체가 적은 유럽 대표팀과 평가전, 나아가 되도록 '강팀'과 평가전을 추진하고 성사시키는 게 필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홍명보호가 유럽으로 향하는 사이, 유럽 강팀들은 대거 북중미나 중동 등 타 대륙으로 향한다. FIFA 랭킹 1위 스페인은 중립 지역인 카타르로 향하고, 프랑스(3위)와 포르투갈(6위), 벨기에(8위), 크로아티아(10위)는 북중미 원정길에 오른다. FIFA 규정상 같은 A매치 기간 대륙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유럽에 남는 FIFA 랭킹 상위 유럽팀은 잉글랜드(4위)와 네덜란드(7위), 독일(9위), 스위스(17위)다. 다만 잉글랜드는 우루과이·일본과 평가전을 치르고, 네덜란드는 노르웨이·에콰도르, 독일은 스위스·가나, 스위스는 독일·노르웨이와 평가전이 각각 확정됐거나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이 팀들을 모두 제외하고 남은 유럽 FIFA 랭킹 최상위팀이 바로 오스트리아다. 앞선 팀들의 일정이 갑작스레 변경되지 않는 한, 오스트리아보다 FIFA 랭킹이 더 높은 유럽팀과 평가전을 치르는 건 불가능한 셈이다. 물론 한국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는 유럽 강팀을 만나진 않지만, 최대한 강팀과 평가전을 치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지난 10월 브라질전 0-5 대패 직후 홍명보 감독도 "평가전에서 단점이 나와야 월드컵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눈에 띄는 건 내년 3월 유럽에 남은 팀들 중 같은 유럽팀과 대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팀들은 그동안 월드컵 유럽 예선이나 UEFA 네이션스리그 등 같은 유럽팀 간 경기가 많았다. 월드컵을 앞둔 만큼 '비유럽팀' 평가전 수요는 충분했다. FIFA 랭킹 4위 잉글랜드가 일본 등 비유럽팀과 2연전을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거 유럽을 떠났다고는 하더라도, 한국이 남은 유럽팀과 평가전을 잡지 못한 건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홍명보호가 유럽 강팀들 시선에 매력적이지 못했거나, 대한축구협회 행정력이 속도전 등에서 뒤처졌을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보다 FIFA 랭킹이 더 낮은 유럽팀과 평가전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3월 A매치 기간 유럽을 찾는 '타 대륙팀'과 평가전이 불가피하다. 월드컵이 열리는 북중미도 아닌, 2년 6개월 만에 유럽 원정길에 올라 정작 다른 대륙팀과 중립 평가전을 치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네덜란드, UEFA PO 패스 B(우크라이나·스웨덴·폴란드·알바니아)와 격돌하는 일본의 경우 잉글랜드·스코틀랜드와 유럽 평가전 2연전이 유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스코틀랜드는 남은 한 상대를 아프리카팀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미팀과는 이미 10~11월에 걸쳐 세 차례나 평가전을 치른 데다 월드컵 조별리그에선 만나지 않아 한국의 후순위 후보로 밀릴 수밖에 없다. 멕시코전에 대비하기 위한 북중미팀 평가전도 이미 지난 9월 두 차례 만났던 데다, 개최국은 물론이고 다른 북중미 팀들도 대회가 열리는 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결국 남은 후보는 3월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팀이 유력한 상황이다. 아프리카 팀들은 이달 모로코에서 개막하는 2025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있어 대부분 3월 A매치 일정이 미정이다.
아프리카팀에서도 그나마 '강팀'으로 분류할 팀이 있다. FIFA 랭킹 11위 모로코, 19위 세네갈 정도다. 다만 모로코와 세네갈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팀과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3월 평가전 상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대신 이집트는 이란, 알제리는 요르단과 같은 조에 속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이집트는 지난달 대한축구협회가 평가전 상대로 추진했다 무산됐던 북아프리카 지역팀 중 하나였다. 다만 이집트 역시 FIFA 랭킹은 34위, 알제리는 35위로 한국과는 격차가 있고, 일본과 한 조에 묶인 튀니지(40위)의 경우 3월 캐나다 원정설이 있다.
이처럼 홍명보호의 유럽 원정 2연전 구상이 이미 꼬여버린 듯한 가운데, 결국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최선의 대진을 꾸릴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홍명보호는 내년 3월 A매치 평가전을 마친 이후엔 별도의 국내 출정식 없이 5~6월 '결전지' 멕시코로 이동해 현지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 뒤 월드컵 본무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월드컵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는 결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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