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손흥민 EPL 마지막 골... '파넨카 킥' 탄생의 비밀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손흥민 EPL 마지막 골... '파넨카 킥' 탄생의 비밀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발행 :
손흥민(당시 토트넘)이 지난 3월 9일(현지시간) EPL 본머스전에서 파넨카 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AFPBBNews=뉴스1

2025년 3월 9일(현지시간) 손흥민(33·현 LAFC)은 본머스와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28라운드 경기에서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리그 골을 넣었다.


토트넘이 본머스에 1-2로 끌려가던 후반 37분 손흥민은 특유의 돌파를 하다 상대 골키퍼에 걸려 넘어졌다. 손흥민은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EPL 통산 127번째 득점이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그가 성공시킨 페널티 킥은 '파넨카 킥'이었다. 파넨카 킥은 페널티 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한쪽으로 미리 몸을 던지는 걸 이용해 골문 중앙으로 느리게 차 넣는 킥이다. 손흥민은 경기 후 파넨카 킥 성공에 대해 "(이 킥은) 의도한 것이었다. 정말 많이 연습했다"고 밝혔다.


손흥민뿐 아니라 적지 않은 세계적 스타 선수들이 페널티 킥 상황에서 활용하고 있는 파넨카 킥의 역사는 197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독과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파넨카(77)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대담한 킥을 선보이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때부터 이 킥에는 '파넨카'라는 명칭이 붙었다.


파넨카는 어떻게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과 같은 중요한 무대에서 이런 킥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안토닌 파넨카의 2016년 모습. /AFPBBNews=뉴스1

이는 파넨카의 임기응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패스 능력이 뛰어난 플레이 메이커였던 파넨카는 자국 리그 클럽인 FC 보헤미안스 프라하에서 훈련이 끝나면 팀 동료 골키퍼와 자주 페널티 킥 내기를 했다.


보통 5개의 페널티 킥을 파넨카가 모두 넣으면 그의 승리였다. 반대로 골키퍼가 이 중 단 1개의 킥을 막아내면 골키퍼의 승리였다. 2024년 이 사실을 최초 보도했던 영국 BBC에 따르면 파넨카는 이 내기에서 자주 패해 골키퍼에게 맥주나 초콜릿을 사줘야 했다.


골키퍼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파넨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자신이 페널티 킥을 하는 순간 골키퍼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쓰러지는 특징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때부터 골문 중앙으로 킥을 시도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실제로 가운데로 페널티 킥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내기에서 파넨카가 승리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고 이후 자국 리그에서도 그는 이런 스타일의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상대 골키퍼를 당황시켰다.


파넨카가 리그 경기에서 자주 시도해 이미 체코슬로바키아 축구계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킥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체코 국경 밖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페널티 킥이 생소한 편이었다.


파넨카는 197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승부차기 무대에서 평소 갈고 닦아 왔던 파넨카 킥을 성공시키며 일약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 영웅으로 부상했다.


2015년 12월 열린 '유로 2016' 조 추첨식에 참여한 파넨카. /AFPBBNews=뉴스1

생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괴상한 페널티 킥에 당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 받았던 서독의 제프 마이어(81)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승부차기 결과는 5-3으로 체코의 승리였다. 승부차기에서는 자신감이 컸던 서독 선수들도 파넨카의 킥으로 패하자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우리는 파넨카 킥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2-2로 치열하게 전개된 두 팀의 결승전은 연장전까지도 승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당초 대회 규정은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경우에는 재경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승전 경기가 펼쳐지기 직전에 서독축구협회는 이 규정의 변경을 요청했다. 이미 서독 선수들이 이 대회를 마치고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만약 결승전에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재경기 대신에 승부차기를 하자는 주장이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1974년 월드컵 우승팀이었던 서독이 체코슬로바키아에 비해 전력이 크게 앞서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경기를 하는 게 오히려 서독에 훨씬 유리했을 지도 모른다.


선수들의 휴가 일정 때문에 서독이 승부차기를 하자는 요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파넨카 킥의 위대한 탄생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종성 교수.

추천 기사

    스포츠-해외축구의 인기 급상승 뉴스

    스포츠-해외축구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