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여제' 최민정(성남시청)이 결승 진출에 실패한 상황에서 '차세대 에이스' 김길리(성남시청)가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체면을 세웠다.
김길리는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결승에서 1분28초614로 산드라 벨제부르(네덜란드), 코트니 사로(캐나다)에 이어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원래 한국은 최민정과 김길리라는 확실한 '원투 펀치'를 앞세워 메달 사냥에 나설 계획이었다. 두 선수가 함께 결승에 올라 서로를 견인하고 견제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최민정은 준결선에서 5명 중 4위에 그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결승 스타트 라인에 선 한국 선수는 김길리 뿐이었다.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벨제부르와 힘이 좋은 사로 등 서구권 강자들이 김길리를 에워쌌다. 최민정 없이 이들을 홀로 뚫어내야 하는 어려운운 싸움이었다.
김길리의 질주는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레이스 초반 후미에서 기회를 엿보던 김길리는 4바퀴를 남기고 특유의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하며 3위로 올라섰다. 2바퀴를 남기고는 선두권 도약을 노리며 인코스를 파고들었지만, 체격 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의 몸싸움과 스피드에 밀려 다시 3위로 처졌다. 마지막 바퀴까지 사력을 다해 스케이트 날을 밀어 넣었으나 순위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낸 값진 질주였다. 앞서 혼성 계주 불운에 이어 이날 준결선에서도 하너 데스멋(벨기에)의 반칙에 휘말려 넘어지며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어드밴스(ADV) 티켓을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선에 오른 김길리는 최민정 없는 결승 무대의 중압감을 이겨내고 시상대 가장 낮은 자리에 올라갔다.
경기 후 김길리는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듯 눈물을 훔쳤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생각보다 메달의 무게가 무겁다"며 "결승까지 오는 과정에 충돌이 많아 '제발 넘어지지 말고 후회 없이 타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도중 선배 최민정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경기 직후 최민정은 후배 김길리를 안아주며 축하를 건넸다. 김길리는 눈물을 보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제가 너무 존경하는 언니가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좋았다"며 "(언니가) 그냥 다들 '잘 탔다'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전했다.
최민정 대신 '에이스'의 자격을 증명한 김길리. 이제 그의 시선은 주종목인 1500m와 3000m 계주를 향한다. 김길리는 "1000m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남은 경기에선 더 과감하고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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