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여고 박강빈(17)이 아웃사이드 히터로는 작은 키인 175㎝ 불리함을 극복하고 전국대회 결승전 MVP로 우뚝 섰다. 그 뒤편에는 코트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훈련했던 시간이 있었다.
박강빈은 최근 서울 중앙여고에서 스타뉴스와 만나 "아웃사이드 히터는 공격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이 받아줘야 한다. 여러 가지를 다 보여줄 수 있는 포지션이다. 공격이 안 되는 날에는 리시브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보통 아웃사이드 히터 유망주들은 공격과 수비를 모두 챙겨야 하는 점에 부담을 느낀다. 특히 현재 고1~고3 학생들은 코로나 19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한 선수가 많아 훈련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탓에 많은 반복 훈련이 필요한 수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강빈은 달랐다. 그는 "물론 아웃사이드 히터가 해야 할 게 많아서 힘들긴 하다. 잘될 때는 항상 재미있는데, 안 될 때는 하기 싫다. 하지만 받고 때리고 여러 가지를 다 보여줄 수 있어서 매력적인 포지션"이라고 활짝 웃었다.
자신의 말을 증명한 경기가 이달 초 끝난 2026 IBK기업은행배 전국중고배구대회였다. 이때 중앙여고는 지난 6일 충북 제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18세 이하 여자부 결승에서 선명여고를 세트 점수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3월 춘계연맹전과 5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모두 선명여고에 패했던 중앙여고는 이후 6월 2차 연맹전 익산보석배와 7월 대통령배에 출전하지 않고 내실을 다졌다. 그리고 세 번째 결승 맞대결에서 제대로 설욕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중앙여고는 초반 서브와 리시브가 동시에 흔들리며 1세트를 내줬다. 분위기를 바꾼 선수가 2세트부터 본격적으로 투입된 박강빈이었다.
박강빈은 적극적으로 리시브에 가담하며 후방을 안정시켰고, 빠르고 정확한 서브로 상대 수비도 흔들었다. 공격에서도 작은 신장에 주눅 들지 않았다. 블로킹과 오픈 공격까지 성공시키며 흐름을 중앙여고 쪽으로 가져왔다. 게임 체인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낸 박강빈은 결국 결승전 MVP까지 품었다.
이때를 돌아본 박강빈은 "내가 후보로 있다가 들어간다는 것은 언니들이 잘 안 풀려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진짜 많이 든다"라며 "들어가자마자 (김)미주 언니가 첫 공을 올려줬는데 바로 득점이 났다. 그때 '오늘 뭔가 되겠다' 싶었다"고 웃었다.
동료들의 격려도 힘이 됐다. 박강빈은 "내가 잘 안 될 때도 언니들이 옆에서 계속 '괜찮다', '잘했다'고 해줬다. 그래서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냥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장윤희(56) 중앙여고 감독이 박강빈에게 원하는 역할도 화려한 에이스와 거리가 있다. '살림꾼 같은 아웃사이드 히터'다. 장 감독은 "(박)강빈이에게 원하는 것은 수비와 리시브다. 자기 앞에 오는 공만이 아니라 옆 선수의 공까지 받아주고, 나쁜 볼에 대한 처리도 다른 선수들보다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빈이가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오)세인이나 (박)서윤처럼 힘 있는 선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기 장점을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라며 "수비와 리시브에서 장점을 보여주고, 어려운 공도 처리하면서 '저 선수는 배구를 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엄격한 잣대지만, 선수 본인도 이미 중학교 때부터 같은 답을 찾고 있었다. 박강빈은 "중학교 때 감독님께서 항상 '받아야 살아남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계속 리시브를 연습했고, 많이 받아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공격 방식도 자신에게 맞게 바꿨다. 강한 힘으로 블로킹을 뚫기보다 블로커 손을 이용해 쳐내는 공격을 자주 시도한다. 블로킹에서도 높이로 정면 승부하기보다 공이 그대로 지나가지 않게 바운드를 만들어 뒤 수비가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박강빈은 "내가 블로킹 타점이 높은 편은 아니니까 밑에서 최대한 받쳐주려고 한다. 공이 바로 지나가지 않게 바운드라도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스승도 그런 박강빈의 활용 가치를 높게 본다. 특히 경기 초반부터 나서는 유형보다는 흐름이 풀리지 않을 때 투입돼 변화를 만드는 역할에 주목한다.
장 감독은 "(박)강빈이는 화려함보다는 아기자기하게 배구를 할 줄 아는 선수"라며 "밖에서 기다렸다가 경기가 안 됐을 때 들어가면 더 잘되는 유형이다. 팀에는 안 될 때 뭔가 도와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강빈이가 그 역할을 잘해줬다"고 평가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경해여중을 나온 박강빈은 당시 자신보다 신장이 좋은 아웃사이드 히터들과 경쟁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길을 고민했고 직접 서울의 중앙여고 문을 두드렸다.
박강빈은 "원래 팀에는 나보다 신장이 좋은 레프트들이 많았다. 내가 살아남아야 하니까 다른 길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중앙여고에 연락해서 훈련을 봤는데 괜찮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장 감독에 따르면 박강빈은 진학 이후 발목 수술과 행정적인 문제까지 겹쳐 거의 1년 동안 제대로 실전을 뛰지 못했다. 경기 감각을 되찾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올해 18세 이하(U-18) 대표팀을 경험한 뒤에는 자신감도 한층 붙었다.
박강빈의 롤모델은 GS칼텍스 유서연(27)이다. 큰 신장은 아니지만, 공격과 리시브를 모두 해내는 아웃사이드 히터다. 박강빈은 "(유)서연 언니는 키가 엄청나게 큰 선수는 아닌데 공격도 다양하게 잘하고, 받는 것도 잘해서 멋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도 명확하다. 파워풀한 공격 대신 받아낼 수 있는 공을 하나 더 받아내고, 어려운 공 하나를 더 살리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승전, 팀이 흔들리던 순간 코트에 들어가 결국 MVP까지 거머쥐었다.
박강빈은 "내가 막 돋보이기보다는 뒤에서 받쳐주고, 자잘한 공들을 받아주면서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성장해 내년 있을 V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 내에 뽑히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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