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NC의 흐름을 봤고 3구 안에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성향이기에..."
상대는 적극적으로 스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임찬규(34·LG 트윈스)는 못 치게 던지는 게 아닌 오히려 쳐보라는 듯 공을 뿌렸다. 2975일 만에 NC 다이노스전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비결이자 임찬규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 잘 돋보인 경기였다.
임찬규는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105구를 던져 2피안타 3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1회부터 타선에선 홈런이 나왔고 2회 5-0으로 크게 앞서갔다. 7회엔 오스틴 딘의 멀티홈런까지 터지며 8-0 리드를 잡았다. 불펜진도 안정적 투구로 8-0 승리를 완성했다. 시즌 12승(4패), 다승 공동 1위로 뛰어올랐다.
마지막 NC전 승리가 무려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2018년 7월 4일 7이닝 3실점 승리를 거둔 뒤 8년 1개월 동안 14경기에서 0승 5패, 평균자책점(ERA) 7.24로 NC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이날은 달랐다. 1,2회를 삼자범퇴로 마친 임찬규는 3회 삼진 2개를 잡아낸 뒤 천재환에게 몸에 맞는 공으로 첫 출루를 허용했으나 김주원을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워 무실점을 이어갔다.

4회엔 2사에서 블레인 크림에게 첫 안타를 허용한 뒤 박건우에겐 내주며 이날 첫 득점권 위기를 맞았다. 이우성의 날카로운 타구가 좌익수 방면으로 향했는데 홍창기가 미끄러지며 타구를 걷어내 미소를 지었다.
5회도 큰 위기 없이 마친 임찬규는 6회 이날 처음으로 주자를 3루까지 보냈으나 NC의 중심 타자 블레인과 박건우를 침착히 범타처리하며 이날 투구를 마쳤다.
늘 그렇듯 빠른 공으로 상대를 압도한 게 아니었다. 최고 시속 144㎞, 최저 135㎞ 직구(33구)와 타이밍을 빼앗는 큰 낙폭의 커브(35구), 타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체인지업(22구)과 슬라이더(15구)를 섞어 영리한 피칭을 펼쳤다.
경기 후 만난 임찬규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이 길게 느껴졌는데 지금 팀 상황이 안 좋은 만큼 개인적으로 안 좋은 흐름을 끊어서도 좋지만 팀이 승리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경기 초반부터 몰리는 공이 없었다. 불리한 카운트에 몰린 NC 타자들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공엔 방망이를 참다가 루킹 삼진을 당했다. 이날 잡아낸 4개의 삼진 중 3개가 루킹 삼진이었고 모두 3회 안에 나왔다. NC 타자들은 전략을 바꿔봤지만 연이어 보더라인에 꽂히는 공에 정확한 타격을 하기 힘들었다.
최근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작성하며 달라진 흐름을 이어간 임찬규는 "항상 투수는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가 있는데 안 좋을 때 뭐가 안 좋은지, 뭘 간파당했는지 빠르게 체크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커맨드에 더 신경을 우리 수비가 너무 좋기 때문에 최대한 안 좋을 때 '빨리 맞춰잡자'는 생각으로 던졌던 게 흐름을 타면서 여기까지 잘 왔다"고 설명했다.

8년 동안 약했던 팀을 상대로, 더구나 적극적으로 승부를 펼치는 타자들에게 오히려 쳐보라는 식으로 공을 뿌렸다. 제구가 강점인 임찬규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임찬규는 "투수는 항상 거기(보더라인)를 보고 던지기 때문에 결과가 잘 나왔던 것 같다. 그 전에 안 치는 상황에 빠르게 카운트를 잡고 가야 되는데 그 부분이 조금 어려웠다"면서 "오늘같은 컨디션에도 좋은 수비들을 많이 해줘서 더 쉽게 쉽게 잘 넘어갔다"고 말했다.
맞춰잡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는 건 임찬규가 늘 강조하는 지론이다. "상대가 공격적일 때 같이 공격적으로 들어갔다가 배럴 타구나 좋은 타구가 나오면 그때 조치를 취해야 될 부분이고 일단 같이 빠르게 승부를 봐야 적은 개수로 많은 이닝을 갈 수 있다"며 "중간 중간에 빠지는 공들이 많아서 투구수는 많아졌지만 그래도 분석에 성공한 것 같다. 전력분석 팀에도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지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너무 공이 빠지면 타자들이 쉽게 참아낼 수 있고 몰리는 장타로 연결되기 좋다. 타자의 방망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더라인 근처의 공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타자가 스윙을 주저하게 만드는 걸치는 스트라이크를 어렵지 않게 던질 수 있는 제구가 뒷받침 돼야 가능한 경기 운영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게 임찬규의 힘이다.
임찬규는 "누가 가운데를 보고 던지겠냐마는 모든 공은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을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못 치는 공은 볼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미국처럼 100마일(약 161㎞)를 상회하는 공을 던진다면 엑스트라 브레이킹이라고 존에서 형성되는 변화로 헛스윙을 만들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투수들이 앞으로도 생길 것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보더라인과 그 안팎을 왔다 갔다 하면서 타자들을 공략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자신과 같은 유형의 투수들을 더 좋아한다. 잭 그레인키, 카일 헨드릭스 등 제구를 바탕으로 영리한 경기운영을 펼치는 투수들이다. 임찬규는 "그 선수들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렇게 운영을 잘하고 컨트롤이 좋은 투수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 시즌 MLB를 뒤흔들고 있는 제이콥 미저라우스키(밀워키 브루어스)의 이름도 나왔다. 밥 먹듯이 시속 160㎞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며 13승 5패, ERA 1.68로 올 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1순위로 꼽히는 투수다.
임찬규는 "저랑 구질이 똑같더라"면서 "저랑 같은 공이지만 20㎞씩만 빼면 된다. 그러면 딱 맞다. 제가 직구가 140㎞이고 그 선수는 160㎞, 커브가 130㎞대, 저는 110㎞대 나온다"고 웃었다. 사실 미저라우스키 정도 공이면 커맨드가 중요하겠습니까. 네모 안에 꽂으면 된다. 정말 멋있는 선수"라고 감탄했다. 구종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다른 전략을 택해야만 한다는 임찬규의 영리한 셈법을 읽어볼 수 있는 말이었다.
다승 공동 1위로 올라섰지만 신경 쓰진 않는다. 임찬규는 "신경 써도 될 게 아니다. 그랬으면 매년 했을 것이다. 신경을 쓰는 순간 다 끝난다"며 "다승왕은 잘 모르겠고 제가 이기면 팀이 많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저희가 높은 순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많이 이기면 정말 좋은 것 같다. 제가 승을 못 챙기더라도 제가 나간 경기에서 이긴다면 그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다가 막판에 뭔가 벌어지면 그때 도전을 하는 것이지 지금은 나가는 경기에서 팀이 이길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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