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한국시간) 개막한 2026~202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지난 시즌에 비해 크게 변한 부분이 있다. EPL에서 베팅 회사의 유니폼 전면 광고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최근 EPL 유니폼 스폰서십 시장에서 베팅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았다. 지난 시즌에는 20개 EPL 구단 가운데 11개 구단의 유니폼 전면 광고를 베팅 회사가 했을 정도다.
하지만 베팅 회사의 유니폼 전면 광고 금지에 따라 올 시즌 EPL 구단의 유니폼 전면 광고에는 금융사와 테크 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졌다.
지난 2006년 토트넘이 온라인 게임과 카지노 플랫폼인 맨션과 4년간 약 640억 원의 유니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된 이후 계속됐던 베팅 회사의 EPL 스폰서십 전성시대가 끝난 셈이다.
문제는 베팅 회사의 유니폼 전면 광고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베팅 회사의 광고가 EPL에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베팅 회사는 유니폼 소매, 트레이닝 키트(훈련복)와 경기장 LED 광고판에 광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스톤 빌라와 에버튼은 지난 시즌까지 유니폼 전면 광고를 했던 베팅 회사가 올 시즌부터는 유니폼 소매 광고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아스톤 빌라는 올 시즌 르완다 관광청과 계약을 맺고 유니폼 전면에 '비지트 르완다(Visit Rwanda)'를 새겨 넣었다. 르완다가 독재 정권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이 같은 광고를 한다는 점에서 아스톤 빌라의 접근 방식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EPL 중하위권 구단인 본머스도 베팅 업체의 광고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본머스 구단 유니폼 소매에는 카지노 업체의 광고가 붙어 있고 트레이닝 키트에도 베팅 업체의 로고가 붙어 있다.
최근 10년 간 베팅 업체의 광고는 EPL 중하위권 구단 재정의 젖줄이었다. 2016~2017 시즌에 소위 빅 6(아스널,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토트넘)를 제외한 14개 구단이 유니폼 전면 광고로 벌어들인 평균 매출은 64억 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이들의 평균 매출은 약 150억 원으로 높아졌다. 이 같은 매출 상승의 1등 공신은 EPL 축구 광고에 집중했던 베팅 업체였다. 지난 시즌 14개 EPL 구단의 광고 매출 가운데 약 70%는 베팅 업체와의 스폰서십 계약에서 발생했다.

재정능력이 탄탄한 빅 6 구단들도 베팅 업체 광고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표적인 구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다. 맨유는 베팅 업체 베트웨이(Betway)와 트레이닝 키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 스폰서십 금액은 연간 약 378억 원에 달한다. 이는 EPL 중하위권 구단의 유니폼 전면 스폰서십 보다 높은 액수다.
글로벌 스포츠 베팅 업계에서 최상위권에 속해 있는 베트웨이는 아스널,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 EPL 빅 클럽과도 계약을 체결해 공식 베팅 파트너로 등록돼 있다.
토트넘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토트넘은 트레이닝 키트는 물론 LED 광고판에도 인터넷베팅 플랫폼 베타노의 광고가 등장한다. 여기에 토트넘 구단의 유니폼 소매에는 베타노를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 게임 회사 카이젠 로고가 붙어있다.
베팅 업체는 다른 업종의 기업보다 광고 예산을 많이 쓰는 편이다. 베팅 업체가 테크 기업이나 금융사보다 훨씬 높은 스폰서십 계약 금액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팬 층을 확보한 EPL 광고 시장은 이들이 회원 수를 늘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시장이다. 여기에 EPL에서 생존하기 위해 거액의 스폰서십이 필요한 중하위권 구단들은 베팅 업체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EPL이 구단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베팅 업체의 광고를 수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 특히 베팅 업체의 EPL 구단 유니폼 전면 광고가 금지된 이후 나타난 이들의 우회 광고 모델은 이 금지 조치의 진정성을 퇴색시켰다는 평가다.
문제는 더 강력한 베팅 업체의 EPL 광고 금지 조치가 나오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EPL은 2023~2024 시즌을 기준으로 영국 경제에 약 17조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국가 경제의 중요한 엔진이다. EPL은 10만 개가 넘는 일자리도 창출한다. 휘청거리는 영국 경제를 감안하면 EPL 효과는 이처럼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런던 중심 경제 구조의 덫에 빠져 있는 영국에 EPL은 더욱 소중하다. EPL이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의 약 60%는 런던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한다. 그 중심지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등 영국 북서부 지역이다. 이처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EPL의 가치는 높다. 리버풀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에버튼의 열혈 팬이자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을 역임했던 앤디 버넘(56) 영국 총리도 이 부분에 관심이 많다.
EPL 20개 구단이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대한 구단 재정 규모의 차이가 좁혀져야 한다. 여기에는 빅 6를 제외한 나머지 14개 구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베팅 업체의 스폰서십은 외면하기 어려운 카드다. 지난 2023년 EPL 구단이 합의했던 부분도 2026~2027 시즌부터 베팅 업체의 유니폼 전면 광고 금지에 그쳤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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