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가 대혼돈과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팀 시스템의 붕괴부터 수뇌부 총사퇴,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협회 행정의 난맥상까지. 스타뉴스는 한국축구가 마주한 위기 원인을 짚어보고, 무너진 신뢰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길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출항했던 홍명보호가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48개국 중 최종 34위(1승 2패)라는 초유의 성적표를 남기고 조기 탈락했다. 32개국 체제였다면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했을 역대 최악의 결과였다. 사령탑과 협회 수뇌부가 동반 퇴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습 과정마저 행정 공백과 진흙탕 법정 폭로전, 촌극으로 얼룩진 임시 감독 공채, 과거 국제 경기 심판 성접대 파문까지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며 한국 축구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중미월드컵 실패는 예견된 참사였다. 2년의 준비 기간을 확보했음에도 상대 맞춤형 전략이나 전술적 유연성은 없었다. 동아시안컵부터 고집한 수비적 스리백 전술은 본선 조별리그 3경기 내내 실점하며 무너졌다.
최약체라 방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은 "한국 분석은 끝났다"며 자신감을 보였고, 실제로 한국의 전술적 승부수는 전무했다. 여기에 남아공과 최종전에서 손흥민과 이재성을 선발 제외한 선수 기용까지 겹치며 자멸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44년 만의 월드컵 최저 순위라는 굴욕으로 돌아왔다.

참사 직후 홍명보 전 감독은 멕시코 과달라하라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질의응답도 없이 2분 만에 사과문을 읽고 사퇴했다. 취재진마저 10분도 안 돼 쫓기듯 현장을 떠나야 했다. 정몽규 전 회장 역시 물러났다. 그러나 수습은 더욱 파행으로 치달았다.
선임을 주도했던 이임생 전 기술이사는 사과나 청문회 출석 대신 캄보디아 나가월드FC 테크니컬 디렉터로 도피성 부임을 선택했다. 이 전 이사는 휴대전화를 교체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가운데, 문체부 감사 결과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참가 신청서를 내며 "정몽규 전 회장이 '그럼 홍명보 감독으로 하세요'라고 지시했고, 김정배 전 상근 부회장으로부터 내정 발표와 계약 실무 등 구체적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국회 청문회마저 촌극을 빚었다. 지난 7월 30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는 시스템 검증 대신 홍 전 감독 자녀의 병역 문제 등 사생활 파헤치기와 "왜 졌는가"라는 비전문적 질의로 흘렀다.
여기에 한국 축구의 도덕성을 무너뜨린 과거 비리까지 터졌다. 문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축구협회는 지난 2011~2012년 런던 올림픽 예선과 브라질월드컵 예선 등 7경기에서 외국인 심판진에게 마사지 업소 법인카드 결제 등 성접대를 제공하고 '심판 마사지' 명목으로 부회장 라인까지 결재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러한 내홍 속에서도 대표팀 현장은 단기 땜질 처방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타뉴스 취재 결과 월드컵 직후인 7월 초 축구협회에는 굵직한 사령탑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구체적 조건이 담긴 지원 의향서를 냈고, 거스 포옛 감독은 물론 복수의 해외 사령탑이 에이전트를 통해 접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장이 공석인 축구협회는 정식이 아닌 임시 사령탑 체제로 방향을 틀었다.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후 5개월간 임시 사령탑을 돌려막다 홍명보 선임 파행을 겪었던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협회 역사상 최초로 대한체육회 규정에 맞춘 공개채용 방식을 도입했으나 잡음도 따랐다. 코칭스태프 전원의 커리어를 합산하는 정량 평가 방식에 지난 시즌 전북 현대의 2관왕을 이끌었던 감독이 가교 역할로 이동국 코치를 사단에 포함했다가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와 함께 국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격 요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1일 이사회를 열고 로베르토 모레노(스페인) 감독 선임을 공식 승인했다. 전원 스페인 국적으로 꾸려진 모레노 사단의 기본 계약 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당초 협회는 9월부터 11월까지 A매치 6경기만 맡기는 단기 임시 사령탑을 채용하겠다고 공표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평가를 거쳐 2027년 1월 아시안컵까지 팀을 이끌 수 있는 연장 옵션을 포함하며 계약 조건을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축구계 관계자 C는 "대표팀이 흔들릴 때마다 단기 임시 사령탑으로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당초 11월까지라던 임시 감독의 임기를 협상 과정에서 아시안컵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꾼 점이나, 해외 유수 지도자들의 관심 속에서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내외 지도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과 함께 체계적인 평가 기준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짚었다.
북중미월드컵 참사 이후에도 대표팀 운영은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 사령탑 체제 속에서 2027 아시안컵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 축구가 이번 위기를 딛고 시스템을 재정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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