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진우 선배님 3003이닝 기록은 꼭 깨고 싶습니다."
송진우 전 코치의 3003이닝은 '대투수' 양현종(38·KIA 타이거즈)의 일생일대 꿈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힘들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올해는 역발상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더 많이 던져야 대기록에 가까워질 것 같았는데 정반대였다. 이닝을 줄이자 오히려 불가능해 보였던 3003이닝에 도전할 시간이 다시 생겼다.
양현종은 지난 5일 광주 KT 위즈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7피안타 1볼넷 2탈삼진 3실점으로 시즌 10승(6패)을 따냈다.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최고 시속 144㎞ 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섞어 96구를 던졌다. 1회부터 무사 1, 3루에 몰리는 등 매 이닝 주자를 내보냈다. 그러나 대량 실점을 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5이닝을 버텼고 KIA의 6-3 승리에 발판을 놓았다.
양현종도 "항상 이기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데 오늘(5일)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등판한 경기라 긴장도 많이 됐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면 그에 걸맞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모든 타자와 상황에 집중해 내 공을 던지려 노력했고, 수비들이 많은 도움을 줘서 귀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2026년 양현종을 설명하는 장면과 같았다. 한때 양현종에게 5이닝은 만족할 만한 결과가 아니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연속 180이닝 이상을 던졌고, 2016년에는 200⅓이닝까지 책임졌다. 2024년에는 KBO 최초 10시즌 연속 170이닝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 행진이 끊겼다. 30경기에서 153이닝에 머물렀고 7승9패 평균자책점 5.06에 그쳤다. 투구 수가 많아질수록 힘이 떨어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때 이범호 KIA 감독이 다른 길을 제안했다. 이범호 감독은 6일 경기를 앞두고 "지난해 (양)현종이와 이야기하면서 '이닝 수만 조금 줄이면 충분히 다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이닝을 줄이면 불펜 투수들을 많이 써야 하긴 하지만, 팀한테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80~90구 안에서는 아직 몇 년을 더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라며 "5~6이닝 정도만 딱 던져주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아직 충분히 선발 투수로서 경쟁력이 있다. 나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 조언을 받아들인 양현종은 달라졌다. 긴 이닝을 목표로 하지 않고 5이닝을 전력투구로 확실하게 책임지면서, 올해 22경기 10승6패 평균자책점 4.25, 106이닝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키움전에서는 13시즌 연속 100이닝까지 달성했다. 송진우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작성한 KBO 역대 최장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38세 6개월 4일로 KBO 역대 다섯 번째로 많은 나이에 한 시즌 10승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두 자릿수 승리도 통산 12번째다. 김광현(38·SSG 랜더스)이 지난해 KBO 최초로 달성한 12차례 10승 시즌에 양현종도 올라섰다. 2009년 첫 10승에서 올해까지 무려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양현종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한다. 송진우의 3003이닝이다. 송 전 코치는 21시즌 동안 672경기에 등판해 210승 153패 103세이브, 3003이닝의 기록을 남겼다. KBO 역대 최다승과 최다이닝 기록 모두 여전히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양현종은 현재 통산 2762⅔이닝을 던졌다. 송 전 코치의 기록까지 정확히 240⅓이닝이 남았다. 통산 196승으로 200승에도 단 4승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003이닝은 갈수록 멀어지는 듯했다. 1년, 1년이 다른 38세 투수에게 앞으로 240이닝 이상을 더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
그런데 계산법이 바뀌었다. 한 시즌 170~180이닝을 고집하다 힘이 빠지는 대신 5~6이닝, 80~90구를 기준으로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해 남은 4~5차례 등판에서도 이닝을 더 쌓고, 내년과 그 이후에도 100이닝 안팎을 책임질 수 있다면 3003이닝은 다시 현실적인 사정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범호 감독 역시 바로 그 미래를 바라봤다. 이범호 감독은 "나도 (양)현종이가 마지막에 송진우 선배님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걸 한번 보고 싶다. KIA 타이거즈라는 명문 팀에서 그런 투수가 한 명 나와주면 굉장히 의미가 있다. 올해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좋은 성적을 내서 꼭 그 기록을 한번 해줬으면 한다"고 미소 지었다.
정작 선수 본인은 개인 기록에 대한 욕심을 한발 내려놨다. 양현종은 "어렸을 때는 10승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팀이 이기는 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있다. 내가 승리투수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팀이 이길 수 있다면 그 승리가 더 값지다. 앞으로 남은 시즌 이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좋은 기록과 팀 성적도 따라올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록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대기록에는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철완에게 3003이닝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이제 더 많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던지는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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