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갈 길이 조금 멀다고 느꼈습니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23)은 KBO 역대 최연소 단일시즌 40홈런 기록을 눈앞에서 놓친 뒤 자신에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아쉽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설렌다.
김도영은 6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T 위즈와 홈 경기에 3번 타자 및 3루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4안타 1볼넷 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KIA는 KT를 8-3으로 꺾고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홈런은 없었다. 이날까지 홈런을 쳤다면 김도영은 22세 11개월 4일의 나이로 이승엽 전 감독이 가진 역대 최연소 40홈런 기록을 하루 앞당길 수 있었다. 이승엽 전 감독은 132경기 체제였던 1999시즌 89경기 만인 7월 23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40홈런에 도달했다. 당시 22세 11개월 5일이었다. 이미 21세 시즌 38홈런을 기록했고 2003년에는 56홈런까지 때리며 한·일 통산 626홈런을 남긴 아시아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
김도영의 도전은 끝내 하루 차이로 무산됐다. 지난달 26일 광주 롯데전에서 시즌 39호 홈런을 친 뒤 11일 동안 담장을 넘기지 못했다. 우천 취소 경기가 세 차례 있었고, 잘 맞은 타구가 담장 앞에서 잡히거나 펜스 상단을 직격하는 불운도 있었다. 자신도 기록을 의식하면서 평소보다 몸에 힘이 들어갔다.
김도영은 6일 경기 후 "최근 기록적인 부분을 나도 모르게 신경 쓰다 보니까 타석에서 내 모습이 전혀 안 나왔다"라며 "경기가 끝나고 '좋은 기록인데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래서 6일은 마음을 바꿨다. 1회 몸쪽 높은 공을 가볍게 밀어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3회에는 대니엘의 초구를 또 좌전 안타로 연결했고, 4회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체인지업까지 잡아당겨 중전 안타를 만들었다.
김도영이 정타에 집중하자 오히려 KT가 먼저 피했다. 6회말 2사 2루에서 자동 고의4구로 김도영을 거르고 해롤드 카스트로를 택했다. 카스트로가 곧바로 2타점 2루타를 터트렸다. 8회에도 김도영은 강한 땅볼로 내야안타를 만들었다. 4안타 1볼넷, 다섯 번 타석에 들어가 다섯 번 모두 출루했다. 김도영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면서 야구장에 나왔다. 마지막 타석을 빼고는 기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기록을 놓아버린 순간 김도영다운 모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어진 고백도 의미심장했다. 그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데 있어서는 아직 내가 견딜 힘이 없다는 걸 이번에 많이 깨달았다. 앞으로 갈 길이 조금 멀다고 느꼈다"고 담담하게 돌아봤다.
그렇다고 기록에 매몰돼 팀 타격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39호 홈런 이후 6경기에서 고의4구 3개를 포함해 볼넷을 무려 12개나 골랐다. 삼진은 단 3개. 출루율은 0.556이었다. 홈런을 빨리 치고 싶은 조바심 속에서도 무작정 공을 쫓지 않았다.
이날 김도영 뒤에서 고의4구 굴욕(?)까지 경험한 동료 카스트로가 김도영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카스트로는 4타수 4안타 6타점 1도루 1득점으로 김도영의 바로 뒤 타순에서 팀 타선을 쌍끌이했다.
경기 후 카스트로는 자신을 거르고 김도영을 상대한 것에 "(김)도영이가 우리 KBO 리그에서 제일 위험한 타자고, 경계 대상 1호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거르고 날 선택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개의치 않았다.


카스트로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6시즌 450경기를 뛴 베테랑이다. 그런 빅리거의 눈에도 김도영은 미래에 메이저리그에서 뛸 재능이 충분한 선수였다. 카스트로는 "(김)"도영이는 워낙 좋은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큰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라며 "가진 게 너무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선수라 특별히 해줄 조언이 없다"고 미소 지었다.
김도영은 자신을 낮췄지만, 이미 올 시즌 120경기에서 타율 0.306, 39홈런 98타점 103득점, 출루율 0.412 장타율 0.633 OPS 1.045로 MVP 레이스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햄스트링 부상을 세 차례나 겪은 뒤 복귀한 첫 시즌이라는 걸 떠올리면 지금의 성적은 더욱 놀랍다. 스스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김도영은 지난 6월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재활 기간에 리프레시를 위해 인형 뽑기를 거의 매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2025시즌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SNS에 "부상으로 몸보다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면서도 "내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꼭 팀에 도움이 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킨 첫 풀타임 시즌이 지금이다. 특히 부상 복귀 첫 시즌임에도 일취월장한 3루 수비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김도영의 수비 범위(RF9)는 2.75로 리그 최고 수준이다. 100이닝 이상 선수로 좁혀도 3.30의 이영빈(LG 트윈스· 111⅔이닝) 다음인데, 881이닝의 김도영과 이닝 수 차이가 현격하다.
수비율도 300이닝 이상 소화한 3루수 중 리그 4위다. 핫코너라 불릴 정도로 유격수만큼이나 전후좌우 활동량이 많은 3루에서 이 정도 활약은 햄스트링 부상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떨쳐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지점에서 이승엽 전 감독과 김도영의 차이가 보인다. 이 전 감독은 압도적인 홈런 생산력으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었다. 김도영은 장타에 빠른 발, 주루, 그리고 이제는 안정된 3루 수비까지 더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미 2년 전 40도루를 기록하면서 국내 선수 최초 40홈런-40도루까지 홈런 단 두 개가 모자랐다. 아직 23세에 불과한 김도영은 언젠가 이승엽도 밟지 않았던 길을 처음 개척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김도영은 최연소 40홈런 기록 달성 실패에 "생전 한 번뿐인 기록이라 아쉽다"면서도 "앞으로 쌓아갈 기록이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6일)까지만 아쉬워하고 털어버리겠다"고 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김도영의 한마디가 더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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