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 법이다. 배우 한수연(33)에게 20%대의 시청률을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은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런 작품이다. 드라마 종영 이후 지난 달 31일 스타뉴스와 인터뷰한 한수연의 표정은 시종일관 밝았다.
극 중 표독스러웠던 중전의 눈빛은 온데 간 데 없이 나긋한 말투와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저에게 너무 고마운 작품이에요. 촬영하면서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벌써 좋았던 기억만 나네요. 다 보상받은 느낌이에요. 마냥 감사해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지난 달 18일 종영했지만,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웃었다.
"예전엔 작품이 끝나고 나면 쫑파티를 한 뒤로 일정이 없었어요. 보고 싶었던 영화나 책을 보면서 미뤘던 문화 생활을 하다 보면 '이제 끝났구나' 실감을 하는데, 이번엔 포상휴가도 다녀오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고 얼마 전엔 '해피투게더'도 촬영했고요. 공백이나 결핍을 느낄 겨를이 없네요. 하하."

한수연은 드라마 종영 후 함께 고생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3박 5일간 필리핀 세부로 포상 휴가를 다녀왔다. 그는 "짧지만 소중했던 시간"이라고 뜻 깊었던 휴가를 회상했다. 특히 드라마에서 남장 내시 홍라온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유정과 친밀해지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유정이와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괴리감이 생길까 걱정 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선배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연기를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악랄한 중전 캐릭터를 연기한 한수연은 김유정과 첫 촬영부터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했다. 그는 "유정이가 그때 뺨을 맞고 울었다"며 "얘기를 들어보니 라온이가 어쩌다 어릴 때부터 엄마랑 떨어져서 남장까지 하고 궁에 들어와 서러움을 당하게 됐는지 생각하면서 울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왕세자 이영 역의 박보검과는 드라마 내내 팽팽한 대립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한수연은 평소 '착한' 박보검 이미지 탓에 촬영하면서 몰입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감정을 끌어올리려면 걔(박보검)를 미워해야 하는데, 연기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데, 인성까지 좋으니까 미워해야 할 지점을 찾지 못하겠더라"고 웃었다.
"보검이를 보면서 감정을 올리기엔 틀린 것 같더라고요. '너(박보검) 때문에 아들이 왕위에 못 앉았어. 정말 악 같은 존재야'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끌어올렸죠. 슛 들어가기 전엔 정 어려우면 시선을 보지 않고 일단 감정을 끌어올리기도 했죠. 막상 연기할 땐 보검이의 눈빛과 감정이 너무 좋아서 호흡이 잘 맞았던 같아요."
중전의 아버지로 딸과 날 선 갈등을 연기한 영의정 김헌 역의 천호진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한수연은 "선배님과는 마지막까지 어려워하면서 결국 못 친해졌다"며 "종방연 때도, 세부 휴가 때도 안 오셔서 카리스마 선배님으로 이별했다"고 말했다.
한수연은 천호진과의 촬영 에피소드를 전하며 "겁박하는 신에선 정말 무서운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다"며 "아버지를 밟고 일어선다는 마음으로,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직전의 마음으로 했다. 그렇게라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심정으로 내지르면서 연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6년 영화 '조용한 세상'으로 데뷔 이후 본격적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은 한수연은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첫 악역에 도전했다. 한수연은 악독한 중전 역을 제안 받았을 당시 "부담감도 있지만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며 "잘 해내고 싶은 맘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악역을 안 해봤기 때문에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악역을 보면 '내 인생에 언제쯤 저런 악역이 올까'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첫 악역에 공중파 미니라니, 거기에 시청률까지 대박이 났으니 모든 게 기적 같았죠."
그는 첫 촬영 당시 연출자인 김성윤 감독으로부터 "어린 '미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한수연은 "많이 주문한 것도 없이, 그 말만 딱 했다"며 "나중에 현장에서 강약 조절하는 부분들을 잘 잡아주셨다. 시청자와 밀당을 잘하시는 분 같더라. 감독님이 마에스트로니까 나는 지휘자에게 맡기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한수연은 자신의 첫 악역 연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바라는 연기에 대한 이상향이 높아서 만족은 못한다"고 조심스럽고 입을 연 그는 "그래도 첫 악역치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중전을 연기하는 동안 스스로 괴롭히면서 힘들게 했기 때문에 결과까지 냉담하게 얘기하고 싶진 않다"고 평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자 "배우는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주고 표현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라는 타이틀에 대해 나름의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타인의 삶을 최대한 진솔하게 전달하는 이야기꾼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배우가 돼 있어야죠. 늘 시작이란 생각으로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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