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 영화가 유난히 사랑한 악녀 혹은 요부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8.10.2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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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유난히 사랑했던 '역사적 여성'들이 있다. 그 옛날의 클레오파트라나 살로메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들부터, 잔다르크나 안나 카레니나처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여인들은 여러 차례 스크린 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었고 수많은 스타들이 캐릭터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여성이 있다면 바로 마타 하리다. '여간첩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20세기 초 유럽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시대를 앞서간 에로틱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역사적 인물로서 마타 하리를 살펴보면, 그녀는 1876년 네덜란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마가레타 게크루디아 젤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20세가 되기 전까지 그녀의 라이프스토리는 꽤 전형적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13세까지는 행복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부모의 이혼으로 그녀는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다. 게다가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고, 결국 그녀는 삼촌 집에 얹혀살다가 이른 결혼을 결심한다. 18세에 자기 나이 두 배인 30대 중반의 군 장교와 결혼한 마타 하리. 그녀는 남편의 근무지인 인도네시아로 가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폭력적인 남편을 견디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비범해진다. 집을 나온 그녀는 인도네시아 전통춤을 접하게 되며 '마타 하리'라는 무대명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유럽으로 돌아온 그녀는 1903년부터 파리 생활을 시작한다. 서커스에서 말을 타고 모델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녀는, 곧 이국적이고 난잡하며 육감적인 댄스의 일인자가 되어, 파리 클럽계를 장악한다.

그녀는 백만장자를 스폰서로 잡아 호화로운 삶을 살았으며, 유럽 각국의 정치가와 군 장교와 유명인사들과 관계를 맺었던, '셀러브리티 콜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길지 않았고, 1917년 41세의 나이로 프랑스군에 의해 총살형을 선고받는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이중첩자로 활동했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였다.


마타 하리라는 역사적 인물은 영화를 통해, 특히 1931년 그레타 가르보(사진)라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졌고 또한 순화되었다. 물론 마타 하리에 대한 영화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있었다. 1921년부터 최근까지 80여 년 동안 10여 편의 각종 마타 하리 영화들이 나왔고, 1985년엔 섹스 심벌 실비아 크리스텔이 역을 맡아 전장을 후끈 달구었던 한 여성의 육체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봉은 역시 그레타 가르보였다. 가르보는 단 한 장면의 노출 신도 없이, 단순히 눈빛과 허스키한 목소리만으로 남자들의 애간장을 졸이는 요부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영화 내내 담배를 피워대며 수많은 남자들 사이를 오가는 그녀.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는 결국 '순애보의 여인'이 됨으로써, 악녀에게도 한 가닥의 진실한 사랑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타 하리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녀는 이중간첩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됐다는 설도 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공문서가 2017년에 공개되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녀가 '미스터리의 여인'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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