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기어, 육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남성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9.01.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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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객들에겐 ‘느끼한 아저씨’ 정도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386세대들에게 리처드 기어라는 이름은 ‘위험한 육체’의 대명사였으며, 위험하기에 매혹적이며 에로틱한 남자였다. 1977년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로 시작된 그의 섹슈얼한 이미지는 <아메리칸 지골로>(80)에서 본격적인 장을 연다.

직역하면 ‘미국의 남창’ 정도? 하지만 <아메리칸 지골로>의 줄리앙(리처드 기어)은 단순한 ‘남창’이 아니라 상류 사회 여성들에 둘러싸인 ‘심야의 사교계 인사’이며, 상원의원의 아내인 미셸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조금은 진부한 설정이지만, 미셸은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진실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 스크린에 블론디의 ‘Call Me’가 흘러나오면 줄리앙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달려간다.


이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가 보여준 이미지는 육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성이다. 그는 카메라 정면에서 별 거리낌 없이 벗은 몸을(상체뿐만 아니라 하체도!) 드러낸다. 이것은 여성을 압도하기 위해 육체를 과시하는 마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그는 수많은 영화에서 짙은 남성성을 내세워 여성들을 사로잡았지만, 한 번도 마초인 적은 없었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77)에선 ‘굿 바’(good bar), 직역하면 ‘좋은 막대기’라는 노골적인 이미지였지만 리처드 기어를 지배하는 건 육체보다는 감성적 매력이었다.

<아메리칸 지골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지 몸을 파는 남성이 아니라, 몸을 매개로 사랑을 얻으려는, 어떻게 보면 순애보적인 남성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살인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쓸 뻔하지만, 결국은 미셸이 알리바이를 증명해줌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고, ‘진실한 사랑’을 얻는다.


뜨거운 육체를 지녔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심장을 지닌 남자. 이 이미지는,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리처드 기어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사관과 신사>(82)에서 장교 후보생으로 등장하는 그는 극도의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데, 그 모든 훈련 과정보다 두 배는 화끈한 섹스 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브레드레스>(83)는 그가 1980년대 초에 구축한 헝크(hunk, 매력 있고 섹시한 남자) 이미지의 정점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아메리칸 지골로>를 능가하는 아찔함을 보여주는데, 결코 근육질이라고 할 수 없는 그의 몸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건, 모성애를 자극하는 눈빛과 허무함의 극단을 향해 달리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리처드 기어는 더 이상 몸을 내세운 캐릭터를 맡지 않는다. 대중들이 더 이상 자신의 ‘몸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이후 그는 <귀여운 여인>(90)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백만장자가 되어 줄리아 로버츠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준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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