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스 드 사드,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선각자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김형석 / 입력 : 2009.05.1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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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변태’로 치부되곤 하는 ‘사디즘’의 어원이 된 사드라는 인물은, 18~19세기에 걸쳐 살며 여러 스캔들과 파격적인 소설을 남겼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쾌락 일변도’의 성적 행위에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계몽주의의 ‘이성의 압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 했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다.

<프라하의 봄>(88)과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90)을 만든 필립 카우프먼 감독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섹스 영화’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퀼스>(00. 사진)는 엄연히 한 인물에 대한 전기영화이며 그 주인공은 바로 마르키스 드 사드 후작이다. 이 영화엔 ‘사드’라는 인물에서 연상되는 가학적 장면이나 파격적 섹스 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사드가 54세였던 1794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의 세월을 담은 <퀼스>는, 인간의 본성과 그것에 대한 억압을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사드(제프리 러쉬)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당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감옥 같은 곳이었고, 의사인 콜라르(마이클 케인)는 사드를 고문한다. 한편 콜라르의 어린 아내는 사드의 소설을 읽고 성적 자유를 찾아 남편으로부터 도망친다. 정신병원 원장은 젊은 쿨미어 신부(조아퀸 피닉스). 그는 사드와의 대화에서 잊고 있었던 인간의 본능을 되살리게 되고 갈등한다. 신부를 사랑했던 세탁부 마들렌느(케이트 윈슬렛)의 죽음은 신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신부는 그녀의 시체를 껴안고 오열하며 성적 판타지를 떠올린다.

사드는 시대의 풍운아였다. 프랑스대혁명은 그의 삶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으며, 황제의 아들과 함께 뛰어놀 정도의 특권층이었던 사드는 방탕한 청년기를 보냈고, 창녀들과의 과격한(?) 행위가 문제시되며, 평생 도피와 수감 생활을 반복한다. 그는 11개의 감옥과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27년을 갇혀 살았고, 그곳에서 소설을 썼다. <저스틴> <살로 소돔 120일> <침실의 철학>은 모두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며, 항간에서 은밀히 유통되었다.

사드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독일의 의사인 크라프트 에빙이 ‘음란성 가학 증세’에 ‘사디즘’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부터였다. 이 용어는 사드의 세계를 크게 오해한 것이었다. 사드의 소설은, 이성의 계몽이 도덕적 인간을 만든다는 당대의 지배적인 생각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회엔 다양한 욕망과 이기심이 존재하며, 삶은 쾌락의 추구이고, 쾌락은 표면적으로만 안정적으로 보이는 삶을 파괴하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위해 글을 썼으며, 파괴적인 에로티시즘이 흘러넘쳤다.


사드는 격정과 반항의 에너지가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 사람들’이 회피하는 영역의 것들은 그의 소설에서 중심을 차지했고, 권력자들은 그에게서 펜(즉 ‘퀼스’)과 종이를 빼앗았다. 하지만 그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글을 썼고, 그가 구현한 세계관은 후대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좋은 교과서가 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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