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혜선, 저질렀다 사고쳤다 그리고 해냈다(인터뷰)

"다신 연기 못할수도 있겠다 생각도"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0.06.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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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술'의 감독 구혜선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동훈 기자 photoguy@
고백해야겠다. 구혜선(26)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기자의 무딘 눈썰미를. 그녀를 처음 발견한 건 2002년께였다. 동그란 눈의 인형같은 아가씨가 5대 얼짱으로 불리며 인터넷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다. 떠도는 사진만으로도 '참 예쁘구나' 싶었던 그녀는 아니나다를까 화제 속에 CF모델로 데뷔했고, 시트콤과 사극, 일일극의 주인공을 거쳐 탤런트로 승승장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혜선이 그저 '당차고 매력적인 연기자구나' 싶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구혜선은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로 아시아를 누비는 스타가 됐고, 소설 '탱고'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가 됐으며, 일본 뉴에이지 음악 거장과 소품집을 발표한 음악가가 됐다. 그리고 2010년 햇살 좋은 초여름의 어느날, 기자는 연기자도, 작가도, 음악가도 아닌 영화감독 구혜선과 마주했다. 구혜선은 개봉을 앞둔 첫 장편영화 '요술'에 대해서,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사람들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꽃 같은 얼굴에 활짝 웃음을 머금고.


-드디어 장편영화 감독이다.

▶저질러버렸다.

-글도 쓰고, 음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지금 보니 그 모든 활동들이 마치 감독 구혜선을 위한 준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도 내가 영화를 하려고 이렇게 해 왔나 할 정도다. 저는 원래 가수를 하려다 사장님(YG 양현석 대표) 추천으로 연기자가 됐는데, 그것까지도 마치 영화를 하기 위한 것 마냥….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불명확했는데 영화를 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어렸을 적에는 나의 그런 불명확한 것들이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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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술'의 감독 구혜선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동훈 기자 photoguy@
-그 다음 목표가 또 있나?

▶어렸을 때는 목표 같은 게 없었다. 지금도 명확히 정해놓은 목표는 없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 다만 문화적인 걸 저도 즐기고, 보시는 분들도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직 나는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를 못 찾은 것 같다. 만약 무언가 최종이 된다면 그게 영화이지 않을까? 모든 게 다 들어가니까. 제 천성이 오지랖인데, 그 넓은 오지랖의 최종 결과가 이거인 것 같다.

-소속사가 제작사가 됐더라.

▶사고치고 부모님께 이실직고 하는 것 같았다. 영화 만들기로 하고, 스태프 계약 다 하고나서 나중에 '일이 이렇게 커졌으니 수습해주셔야 할 것 같다' 그랬다. 사실 제작을 하는 데 있어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게 목표인데 제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신인감독에다 뭐 하나 뚜렷이 해 놓은 게 없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미친 짓'을 했다. 조금 의미를 부여하자면 회사도 저도 투자해서 수익을 가져가는 게 아니다. 위드캠페인에 기부하면서 영화도 후원을 받게 됐다.

-덕분에 YG엔터테인먼트가 처음 영화제작사가 됐다.

▶저는 종신계약을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사장님은 제 삶을 응원해주는 분이면서 제 뜻을 보고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까지 하셨다. 첫 영화 제작에 '우린 미친 짓을 한 것 같아' 하면서…. 일단 최대한 적은 돈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후에 배급을 받자 했고, 결국 이후 배급과 투자를 따냈다. 작은 규모지만 큰 일이고, 기쁜 일이다. 사고를 쳐 버렸다.

-어느 순간 구혜선이란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소극적이고, 어디 나서지도 모셨다. 영화사 아침의 고 정승혜 대표님을 만난 다음에 이렇게 바뀌었다. 이렇게 된 게 다 대표님 탓이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가져갔더니 버리라고 하시곤, 다음에 단편 시나리오를 가져갔더니 '찍어 찍어' 하면서 반 강제로 밀어부치시고, 그림 보여드렸더니 책 내라고 막 해주시고, 나중엔 글을 쓰고…. 그렇게 저를 끌어주는 분이었다. 처음엔 질질 끌려가기만 했다. 지금은 제가 해야 한다. 지금 수습중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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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술'의 감독 구혜선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동훈 기자 photoguy@
-처음 얼짱으로 데뷔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까마득하겠다.

▶그리 오래 전이 아닌데도 많이 지난 것 같다. 내가 27살이 될 줄은 몰랐다. 또 이 나이가 돼서 이렇게 사고치고 다닐 줄 몰랐다. 상상도 못한 일이 정 대표님 때문에 벌어졌다.

그땐 그냥 막연했다.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고민보다는, 이거 하고 싶은데 신기하다 식의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길을 내어주셨다. 양현석 사장님, 정 대표님…. 의지가 별로 없었는데 발굴해 주신 거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겸손한 표현이다. 대체 못하는 게 뭔가.

▶항상 예쁘게 포장을 해주셔서 죽겠다. 이러다가 이름 앞에 '천재' 붙으면 어쩌나 싶다. 제가 하는 건 열심히 하지만, 매사에 어설프다. 정신줄 놓고 다닌다. 일단 숫자 들어가는 걸 잘 못하고 정리정돈도 못한다. 제 핸드폰 번호도 한참 몰랐을 정도다. 심지어 자동차 수리 맡기고 차 번호가 생각 안날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모르는 건 너무 무식하니까, 무식하다는 소리 많이 듣는다.

-'꽃보다 남자' 금잔디랑 비슷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다. 제 모습이 많이 있었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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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술'의 감독 구혜선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동훈 기자 photoguy@
-배우로서 연출을 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미녀 여배우라는 점 때문에 어떤 선입견도 있었을텐데.

▶배우들이 조금 닫힌 생활을 하고 숨어 지내는 게 캐릭터 변신에 좋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버리고 가는 부분이 있다. 혹여 잘못되면 연기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위험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저는 지금껏 늘 발랄하고 긍정적인,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꿈이 없는 여인을 많이 연기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문직 아니면 꿈이 명확한 캐릭터가 들어온다. 구혜선이 이런저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도 잘 하리라는 기대가 있나보다. 손해보다 긍정적인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영화 외에도 이전부터 보여 온 다방면의 관심 때문에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꽃보다 남자'의 영향이 컸다. 전에는 했는데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또 위드캠페인을 같이 하는 바람에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건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쁜 게 아니다. 이적씨라든지 나얼씨라든지, 조영남 이외수씨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분이 많다. 저는 막 저질러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있지 않나. '완벽하게 잘 하지 않을 거면서 왜 나와?' 이건 본인 스스로 가능성을 닫는 거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하고… 이런 일들이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 죄가 아니라,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막 쏟아내는 거다.

-구혜선이 어떤 롤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어렸을 적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나이가 들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 제가 이런 일을 벌리면서, 물론 포장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자극을 받는 건 같다. '구혜선이 뭔데 뭔데' 이러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제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포털사이트에 가면 '구혜선처럼 전시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같은 질문이 오른다. 이런 일이 흐뭇하다.

저는 굉장히 많이 열렸다. 부담도 없어진 것 같다. 부정적인 시선이 쏟아질 때도 더 편해졌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한다는 게 중요하다. 실패는 더 많을 거다. 밥을 하나 제대로 하기까지도 실패가 얼마나 많나.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밥상을 차려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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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술'의 감독 구혜선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동훈 기자 photo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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