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주먹' 깊어진 강우석..전설은 이제 시작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3.04.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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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의 19번째 영화 '전설의 주먹'이 공개됐다. 원작의 트라우마를 걷어낸 '전설의 주먹'은 웃음과 액션, 드라마가 아우러진 강우석표 영화다. 강우석표 영화는 보다 깊어졌고, 보다 재밌어졌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전설의 주먹'은 한 때 고교시절 싸움꾼으로 날렸던 가장이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시 맞싸움을 펼친다는 이야기. 네 명의 소년이 있었다. 88올림픽 국가대표 권투선수를 꿈꾸는 고교생, 그 고교생에게 흠뻑 두들겨 맞고 계속 도전하는 다른 학교 싸움꾼, 88 꿈나무와 친구를 맺는 같은 고등학교 일진, 그 일진과 함께 다니지만 할아버지가 재벌인 소년.


세월이 흘렀다. 88 꿈나무는 손님보다 파리가 많은 국수집 사장이 됐다. 마누라는 일찍 세상을 떴고, 하나뿐인 딸아이는 사고만 친다. 딸은 아빠랑 말은커녕 눈도 잘 안 마주친다.

다른 학교 싸움꾼은 건달이 됐다. 잘 나갈 줄 알았지만 후배 건달들에게 찬밥 신세다. 재벌 손자는 재벌 회장이 됐다. 고등학교 일진은 회장 밑에서 회장이 사고 치면 영혼을 팔아가며 수습하고 산다. 자식을 유학 보내고 기러기아빠로 산다.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르게 살던 친구들이 한 무대에 선다. 과거 일진이었던 싸움꾼들을 무대에 올려 이종격투기를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온다. 88꿈나무는 사고 친 딸의 합의금을 위해, 건달은 도박 사이트 뒷거래를 위해, 과거 일진은 대기업 회장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링에 오른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 때문에 링에 오르지만 링 안에서 과거의 전설이었던 자신을 찾는다.

영화가 이렇게만 끝났다면 '전설의 주먹'은 뻔한 영화가 될 뻔 했다.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구상을 가져 오돼 '전설의 주먹'을 자기 색깔로 바꾸었다. 우선 원작에서 소년들이 원죄처럼 공유했던 사건을 뺐다. 원작에서 가해자였던 국수집 사장 딸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이 두 가지 선택은 원작의 쓸쓸한 마이너 정서를, 가족영화로 탈바꿈시켰다.

강우석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가해자였다고 현재 루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회한을 반성으로 이어지게 하고, 다시 현재를 긍정하게 만든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현재를 긍정했다면 '전설의 주먹'은 과거 싸움꾼들이 다시 피 터지게 싸우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반성은 '전설의 주먹' 속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강우석 감독이 깊어졌다는 증거다.

강우석 감독은 깊어졌다.

웃음과 감동, 재미를 추구하는 건 여전하지만 튀고 날기 보단 뚝심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후반부 30여분을 액션으로만 끌고 가는 건 보통 뚝심이 아니다. '전설의 주먹' 액션은 각기 드라마를 담당하며 영화를 끌고 간다. 풋내 나는 싸움, 절실한 싸움, 잘 나갔던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싸움, 후회가 뒤섞이는 싸움, 그리고 모든 걸 잊고 오로지 주먹만을 교환하는 싸움. 뚝심 있게 이어지는 각각의 싸움이 이야기를 끌고 가며 감정을 끌어 오르게 만든다.

88 꿈나무였던 황정민이 고교 동창회를 찾아가는 장면과 가족을 위해 영혼을 팔던 과거 일진 유준상이 가면을 벗어던지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두 축이다. 2시간 33분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않는 건 이 두 장면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끈끈하게 묶어주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과 강우석 감독을 오가던 유준상의 연기는 '전설의 주먹'에서 한층 빛을 바란다. 생활을 위해 가면을 쓰고 살 때의 얼굴과 그 가면에 균열이 가는 순간, 그리고 외국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해 "아빠가 제일 잘하는 게 돈 버는 거잖아"라며 제일 잘하는 영어로 인사하라고 할 때의 모습,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링 위에 오르는 모습은 이 배우의 연기 디테일이 그야말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황정민은 '신세계'에 이어 '전설의 주먹'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굳힐 만큼 선전했다. 늙어 보이겠다며 앞머리까지 뽑아가며 비열한 재벌 2세를 연기한 정웅인은 이 배우에게 코미디만 바랄 수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지루가 맡은 국정원 역할은 과거 강우석 영화에 흔한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다. 그러나 과거 이런 역할과는 달리 튀지 않게 영화에 녹아들면서 마지막 해피엔딩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만든다. 강우석 감독 영화가 깊어졌다는 반증이다.

당신의 전설은 언제였나, 일본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전설의 주먹'은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전설을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니라 지금이 바로 전설을 쓰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오는 1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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