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보고있나? 마블..이게 진짜 현실일세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1.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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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래비티' '퍼스트 어벤저' '아이언맨3' '토르: 다크 월드'
2010년에 나온 '마블 어벤져스 캐릭터 가이드'에 따르면 토르의 신상명세는 이렇다.

본명 토르 오딘선, 직업 아스가르드의 왕자 겸 천둥의 신, 신장 1.98m, 체중 290.25kg, 능력 뛰어난 힘과 방어력을 지녔으며 천둥 번개를 조종할 수 있다. 묠니르를 사용해서 날거나 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


그리고 그의 6개 항목 능력치(최대 7)는 다음과 같다.

마법력 6, 힘 7, 방어력 6, 전투력 4, 지능 2, 민첩성 4.

마블왕국의 빼놓을 수 없는 히어로 아이언맨은? 마법력 6, 힘 6, 방어력 6, 전투력 4, 지능 6, 민첩성 5


녹색괴물 헐크는? 마법력 1, 힘 7, 방어력 7, 전투력 4, 지능 6, 민첩성 3

리더십과 군인정신 하나는 끝내주는 캡틴 아메리카는? 마법력 1, 힘 3, 방어력 3, 전투력 5, 지능 3, 민첩성 2

실제로 지난달 30일 개봉한 '토르: 다크 월드'(감독 앨런 테일러)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더 세지고 더 정의로워졌다. 어둠의 종족 다크 엘프에 맞서 토르는 예의 충직한 망치 묠니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아스가르드와 지구에서 그야말로 신출귀몰한다. 역시 '힘'(7)과 '마법력'(6)에 관한 한 그는 최고다. 토르는 인간 차원의 슈퍼영웅 정도가 아니라 그냥 '신'인 것이다. 심지어 그의 덜떨어지고 못된 동생 로키(톰 히들스턴)도 마법력은 6, 방어력은 6이다. 이렇게 마블은 토르,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여기에 쉴드 조직을 가세시켜 정교하지만 가공스러운 별천지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에 비해 지난달 17일 개봉한 '그래비티'(Gravity.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세계는 처참할 정도로 허약하다. 위성궤도상 무중력 우주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을 고치기 위해 파견된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와 매트(조지 클루니). 광활한 우주와 바로 밑에 큼지막하게 보이는 둥근 지구를 배경으로, 우주선 주위를 마치 '월E'처럼 유영하며 서로 썰렁한 농담을 나누는 것까지는 좋았다. 인근에서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가 무서운 속도로 이들을 덮치기 전까지는.

이후에는 모든 게 재난이었다. 얼굴보다 훨씬 작은 잔해뭉치 한 방에 동료 우주인 얼굴에 구멍이 뻥 뚤리고, 지구에 돌아가 우주 무용담을 들려줘야 할 듬직한 우주선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세상에 상상이나 했을까. 우주에도 쓰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머리는 비상하고 용기마저 가상한 두 남녀 우주인도 이런 위기상황에는 그저 우주복 안에 마련된 산소 잔량에 제 한 목숨을 오로지 맡겨야할 불쌍한 어린 양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마법력 0, 힘 0, 방어력 0인 허약한 존재가 스톤과 매트인 것이다.

이게 인간과 지구의 현실이다. 그저 10분이라도 산소공급이 끊어지면 죽고마는 인간, 저항과 마찰 없는 우주에서 브레이크 없는 관성의 법칙에 걸리면 그냥 한없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 대기권 안에 들어오면 그 무시무시한 중력가속도의 법칙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인간. 이에 비해 마블의 세상과 히어로들은 얼마나 태평한가. 이 세상 저 세상 순식간에 옮겨다닌 토르야 무중력의 힘이 얼마나 센지, 중력의 압박이 얼마나 무서운지, 산소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아챌 틈조차 없었다. 아이언맨도 슈트만 입으면 중력가속도의 법칙, 관성의 법칙, 질량불변의 법칙 따위는 깡그리 무시할 수 있고, 캡틴 아메리카는 '무대포정신'에 입각해 우주선에서 대기권으로 그냥 뛰어들면 그뿐일 인간이다.

하지만 보고 있나? 마블. 이 허약한 인간들이 일궈내는 위대한 성취를, 마법력 0, 힘 0, 방어력 0, 지능 0, 민첩성 0인 인간이 만들어낸 이 전투력 7의 기적을. 멀쩡한 중국발 우주선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에 느꼈을 삶의 쾌감과, 그때 코와 입을 통해 기도와 폐부를 파고들 산소의 짜릿한 맛과, 온 몸 구석구석이 받아들일 그 지구 바닷물의 짠내와 백사장 뻘의 비린내를, 당신들은 아는가. 부모 잘 만난 토르, 돈 많은 토니 스타크, 방사선 잘못 쪼인 죄밖에 없는 브루스 배너, 실험빨일 뿐인 스티브 로저스는 죽었다 깨나도 모를 이 숭고한 반전과 촉촉한 촉감!

맞다. 가공스럽고 정교해마지않던 마블 월드는 이 심심한 '그래비티'가 쏘아올린 묠니르 한 방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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