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음반 20선③민채 'Heart Of Gold'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02 16:14
  • 글자크기조절
image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랜만에 읊조려보는 '오월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이 대표 투쟁가가 뜬금없이 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민채의 미니앨범 'Heart Of Gold'(사진) 덕분이었다. 아주 낯선 이 '민채'라는 여성가수의 생애 첫 EP 1번 트랙이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이라니. 잘 알려진 대로 이 노래를 번안한 곡이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생채기를 담은 '오월가'다. 원곡은 프랑스 샹송가수 미셸 폴라레프가 1971년 작사작곡한 곡. 자신이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 도시계획으로 망가지는 것에 반대하다 결국 죽고만 루시엥 모리스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떠들썩한 구호가 떠오르기 마련인 '오월가'와 달리 민채의 'Qui A Tue Grand Maman'은 가냘프고 애처롭고 서글프다.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두 노래를 잇고 있는 유사성의 끈마저 순식간에 놓칠 수 있을 정도. 특히 민채의 음색과 창법에 실린, 노래의 풍경 혹은 이미지가 너무 서정적이어서 더 화가 난다.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그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대해. 'Il y avait du temps de grand 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e, seules restent les pensees/ et dans tes mains il ne reste plus rien..'(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정원에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마음만 남아있지요 그리고 두 손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 민채라는 가수, 그리고 지난달 7일 발매된 이 앨범 'Heart Of Gold'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더욱이 4번 트랙으로 실린 'Hello Mr. Monkey' 역시 흔히 접해온 원곡이나 번안곡과는 아주 다른 맛을 들려준다. 색소폰 소리에 섞여도는 이 여성보컬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이 앨범 유통사인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 말을 자세히 들어보자.

"에반스레코드의 홍세존 대표님이 이어폰을 건네주었다. 동교동 어느 술집이었다. 민채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순간이다. '헬로 미스터 몽키'를 리메이크한 음악이었다. 목소리가 나오는 첫 소절부터 빨려들어갔다. 올해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드디어 9월이 되었고 민채의 첫번째 EP앨범 발매를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총 10곡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녹음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정규앨범은 무리였다. EP앨범으로 가닥을 잡고 가을이라는 시간과 힐링과 안식이라는 분위기를 컨셉트로 잡았다.


이에 맞춰 첫 EP의 선곡회의가 진행되고 일사천리로 디지털싱글과 내년 초에 발매할 2nd EP까지 대략적인 스케줄링을 했다. 민채를 처음 알게된 '헬로 미스터 몽키'는 과감히 내년 1월에 싱글로 발매하기로 했고 3월경 봄기운을 담은 '햇살'을 발매하기로 했다. 난관이 시작된 건 타이틀곡 선곡이었다. 여러 의견 조사 결과 '라라라'와 '외로움이 서툴러'가 박빙이었고 나는 '라라라'를 선택했다. 타이틀곡 선곡은 발매 전까지 계속되는 고민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또 기억나는 건 이번 앨범의 재킷 디자인이었다. 이 앨범은 민채의 보컬이 절대적인 작품이다. 게다가 그녀는 예뻤다... 따라서 아티스트의 명확한 부각이 요구되고 그러기 위해선 일러스트 디자인보다는 인물컷 위주의, 클로즈업된 인물컷 디자인에 의견이 모아졌다. 제작사와 유통사간 충분한 기획 및 실행회의를 통해 발매가 되다보니 무척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아직 그녀를 만나진 못했다...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는 재즈보컬리스트다. 재즈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 본 앨범과 같은 팝 싱어를 거부했다고 한다. 무려 7년 동안이나. 이번 앨범은 홍세존 대표의 말대로라면 끝없는 구애의 산물이라고. 민채는 피아노를 전공한 재즈 보컬리스트로 2004년부터 여러 아티스트들과 같이 팀을 이뤄 재즈클럽을 중심으로 공연해왔다. 민채의 팝 앨범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뭐냐고 홍세존 대표에게 물었다. 클럽 에반스에 공연 오디션을 보러왔는데 재즈와 함께 보사노바곡을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렀다고 한다. 바로 그 보사노바와 피아노와 가창이 재즈 외에 다른 장르의 작품 제작을 구상하게 된 계기였다."

이창희 대표 말을 듣고 보니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민채는 역시 재즈신에서 내공을 다진 아티스트였던 게다.

이어지는 2번 트랙 '외로움이 서툴러'는 민채 보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곡. 웅산과도 다르고 나윤선과도 다른 그녀만의 그 무엇. 다분히 팝적인 색채가 가득하지만 피아노, 더블베이스, 드럼 등 반주는 역시 재즈스러워서 '홍대 여신 누구누구' 같은 묘한 하이브리드적 매력을 풍긴다. 여기에 기타 줄의 치찰음과 느닷없이 들려오는 하모니카 소리가 가슴을 후려친다. 민채 작사작곡의 3번 트랙 'La La La'는 초겨울에 딱 맞을 노래. '..그렇게도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 다 지난 일인 걸/ 의미가 없잖아/ 수많은 시련에 닫혀버린 너의 맘/ 널 다시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언제라도 쉬어갈 수 있도록 너에게 힘이 돼줄게/ 소중한 너에게 세상에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걸/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가 필요해'. '위로'와 '힐링'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맞다. 민채는 아직 대중에 낯선 아티스트다. 하지만 5번 트랙 'True Love', CD에만 실린 마지막 6번 트랙 '4월30일'까지 듣다보면 그 낯설음이란 오히려 실보다 득이 더 많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새 2집은 성공한 1집과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나 강요도 없고, 이러이러한 댄스가수가 저러저러한 발라드를 부르는 데 대한 그런 위화감이나 색안경도 없는 그런. 오로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음악과 노래와 음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잊혀진 배타적 즐거움! 민채의 'Heart Of Gold'는 그걸 말해준다.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