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 장훈이 극찬한 ‘일본 남자’ 구로다의 학구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5.01.03 09:00
  • 글자크기조절
image
구로다 히로키가 일본으로 돌아왔다. /AFPBBNews=뉴스1





‘살아 있는 전설’인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74)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다가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우완 투수 구로다 히로키(39)가 연간 무려 150억원 이상 차이(메이저리그 구단 제시 200억원, 히로시마 40억원)가 나는 연봉을 뒤로하고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로 돌아오자 “오랜만에 ‘진정한 일본 남자(男子)’를 만나게 됐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 역시 “오랜 기간 야구계를 지켜보고 있지만 이런 선수는 처음이다”라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미 벌만큼 벌었으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있는 사람이 더 한다’라는 말도 일부에게는 해당된다. 필자도 기자로 28년 째 돌아오고 돌아가는 많은 선수들을 취재했지만 구로다 같은 결정을 한 선수는 처음 보게 됐다.

필자는 구로다의 메이저리그 첫해였던 2008시즌 LA 다저스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도 하고 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다. 그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프로야구와는 다른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학구열(學究熱)’이었다. 그런데 그 학구열은 돌아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구로다가 곧바로 구단을 통해 현재 일본 타자들의 자료를 입수해 장단점 분석과 특징 파악을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구로다는 히로시마 카프에서 11년을 뛴 뒤 2008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33세였는데 3년간 3530만 달러(1달러 1000원 단순 환산, 약 353억원)에 계약했다. LA 다저스 감독이었던 조 토리 감독이 높이 평가한 구로다의 강점은 ‘볼 스피드를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차이점에 대해 구로다가 스프링캠프 데뷔전에서 언급한 내용도 상당히 특이했다. 그는 2월29일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등판해 ESPN이 생중계한 가운데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 데뷔전을 가졌다. 그는 경기 후 당연히 당시 애틀랜타 강타선을 이끈 치퍼 존스나 마크 테셰이라와 상대하면서 느낀 소감을 얘기할 것 같았는데 ‘메이저리그 팬들은 시범 경기인데도 정말 집중해서 게임을 관전해 더 긴장됐다.’고 말했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프로야구를 경험하고 LA 다저스로 간 류현진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경기가 시작되면 ‘공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따라서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투수의 일거수일투족에 팬들의 눈길이 집중된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시작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첫 스프링캠프에서 33세의 베테랑급 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로다는 LA 다저스의 신인 투수로서 신고식까지 무난하게 치렀다. 그렇게 순조롭게 적응해가던 구로다가 3월8일 열린 세인트루이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2이닝 동안 5피안타 3실점의 난타를 당했다.

강판된 후 클럽하우스로 몰려온 일본 기자들과 메이저리그 취재 기자들이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자 그는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존에 대해 아직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과 비교할 때 스트라이크존 상하 좌우 폭이 야구공 하나 정도 넓은 것 같다’고 자신이 느끼는 차이점을 설명했다.(이 부분은 2014시즌 이례적으로 극심했던 타고투저 현상을 겪은 한국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타자 강정호도 연구해야 한다.)

이후 구로다의 접근 방식은 주목할 만 했다. 구로다는 자신의 통역을 데리고 LA 다저스의 새 간판 타자였던 앤드류 존스를 찾아가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공격 성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앤드류 존스는 그의 질문들 중 하나가 ‘메이저리그에는 초구에 항상 공격적으로 나서는 타자들이 많은가?’였다며 구로다의 진지한 자세에 놀랐다고 밝혔다. 구로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계속 통역의 도움을 받아 주요 상대 팀들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타자의 장단점과 특징, 습관을 분석해 메이저리그 장벽을 넘을 준비를 했다.

구로다의 2008시즌 첫해 성적은 31경기에 선발 등판해 183 1/3이닝을 던지며 9승10패를 했다. 10승을 못했지만 평균 자책점은 3.73으로 안정적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학구열은 2011년 LA 다저스에서 13승(16패), 2012년 뉴욕 양키스 첫해 16승(11패) 성적의 밑바탕이 됐다.

한편으로는 일본 프로 출신들은 자신들의 경쟁력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야구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어가 필요한 부분은 통역에게 맡기고 메이저리그의 기술적 차이를 파악하고 적응하는데 주력하는 것을 눈 여겨 볼만 했다.

이 부분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는 다른 점이다. 대학시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는 영어와 문화적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프로를 거친 구로다는 야구 경쟁력을 갖추는 것에 더 집중했다. 한국프로야구 정상급 투수 출신인 류현진도 구로다와 같은 방식으로 메이저리그를 극복하고 있다.

히로시마로 돌아온 ‘으리 남’ 구로다도 새해 40세가 됐다. 일본과 메이저리그에서 모두 에이스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은 학구열은 모두가 배울 만하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