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버스 뛰어든 김혜민 간호사, '진짜 영웅'의 감동 시구

김우종 기자 / 입력 : 2016.07.0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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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자로 나선 '영웅' 김혜민 간호사.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넥센 히어로즈 구단의 '히어로즈'는 '영웅들'을 뜻한다. 지난 5월 31일. 중부내륙고속도로. 한 고속버스가 앞에 달리던 화물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속버스는 차로를 가로로 막아선 채 멈췄다. 도로변 가드레일 쪽과 맞닿은 버스 뒤편 엔진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엔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나머지 승객들이 모두 버스에서 탈출하는 사이, 버스 기사만 핸들에 눌린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연기는 더 심해졌다. 급기야 뒤쪽 엔진에서는 화염이 일기 시작했다. 버스가 전소되기 일보직전.

이때 한 여성이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레커차도 도착했다. 래커차가 버스 앞쪽에 쇠줄을 건 뒤 앞으로 나가자 핸들과 기사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 여성이 기사를 구출했고, 얼마 후가 됐을까. 버스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성은 분당 차병원 소아응급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혜민(26)씨였다. 김혜민 씨가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IA-넥센전을 앞두고 마운드에 섰다. '영웅 군단' 넥센 구단이 '마이 히어로 데이' 이벤트를 맞이해 '진짜 영웅' 김 간호사를 시구자로 초청한 것이다.


시구에 앞서 김 간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영웅답지(?)' 않은 작은 키, 그리고 가냘픈 손목이 눈에 띄었다. 체중 50kg이 안 된다고 했다. '영웅'은 쾌활하고 씩씩한 목소리를 냈다.

김 간호사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앞에 화물차가 있었고, 버스가 뒤에 있었다. 그런데 앞에 있던 화물차가 속도를 줄였다. 다소 간격이 좁았다. 급정거 하면서 '쿵'하고 부딪혔고 버스가 돌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뒤쪽에 타고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찰과상을 입은 사람도 보였으나 기사님이 가장 많이 다쳤다. 핸들에 몸이 눌린 상태였다. 혼자서 몸을 디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사고 샹황을 설명했다.

이어 김 간호사는 "처음엔 버스에 불도 안 났고, 연기만 나는 줄 알았다. 연기가 날 때 사람들끼리 불을 진압해보자 하면서 차 내에 있던 소화기 투척용 소화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차 뒤쪽이 낭떠러지 같은데 걸쳐 있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기사님이 승객들을 향해 '문 열고 나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동으로 나가는 법을 알려줬다. 그러자 내가 '기사님도 같이 나가셔야죠'라고 이야기했다. 기사님은 본인이 다친 줄도 모르고 혼자 따로 나갈 테니 승객들에게 다 나가 계시라 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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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민 간호사가 시구에 앞서 사인을 주고 있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다행히 레커차가 사고 발생 후 빠른 시간 내에 현장에 도착했다. 김 간호사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기사님을 빼려고 했지만 핸들이 들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레커차 레일에 핸들을 감은 뒤 앞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당기다가 풀어지면 더 세게 눌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빼내야 했다. 결국 핸들이 들렸고, 기사님을 업은 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미 차량에는 불이 붙고 있었다. 하지만 김 간호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를 구하기 위해 불붙는 버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들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손수건에 물을 적신 뒤 기사님을 향해 '119가 올 때까지만 잠깐 저와 같이 있자'고 한 그는 "차가 폭발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불이 붙기 전에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성인 2명이 기사님을 빼내려고 해도 잘 안 됐다. 다들 불을 끄는데 주력했는데, 불도 안 꺼졌다. 운이 다 좋았다. 우연히 앞에 가던 차들도 멈춰선 뒤 투척용 소화기를 던져주기도 했다. 모든 게 다 딱딱 맞아 떨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김 간호사가 버스로 뛰어드는 모습은 한 시민의 동영상 촬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는 "영상을 보면서 제가 그때 그렇게 뛴 줄도 몰랐다. 기억나는 건, 기사 아저씨가 나올 생각이 없었다는 것. 불이 안 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면서 "레커차와 119가 오기 전까지 '큰일 났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다 위험하다고 밖으로 나와 있으면 기사님이 위험해 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사님에 다가간 뒤 '119 올 때까지만 같이 있자고 했다. 사실, 저도 심장이 막 빨리 뛰었지만 불안해 할 지도 몰라 '연기 나니까 조금만 같이 기다려요'라고 했다. 아버지 같은 분이 껴 계셔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3일 오후 6시 경기 시작을 몇 분 앞두고 넥센의 홈 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우리 사회의 영웅, '진짜 영웅'이 시구자로 나섰다. '진짜 영웅'이 시구를 한다는 말에 김 간호사는 "그게 저라서 그런지 실감이 잘 안 난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어 "사실 얼굴도 알려지면서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그러나 '나도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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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타이어 한국총괄 임금옥 전무가 김혜민 간호사(오른쪽)에게 표창장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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