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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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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기구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야기, 영화 '덕혜옹주'를 연출한 이는 허진호(53) 감독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외출'과 '행복', '호우시절' 등 섬세한 사랑의 이야기로 멜로의 대가로 불린 감독의 선택은 어쩌면 뜻밖이기도 하다.

조선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덕혜는 13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뒤 평생 조국을 그리워했다. 일본인과 결혼해 딸까지 낳았지만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고, 설상가상 광복을 맞은 조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해 쉰이 넘어서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를 극화한 '덕혜옹주'는 남녀의 섬세한 감정선을 즐겨 그렸던 감독의 전작과는 스토리라인은 물론 구성과 규모까지 완전히 다른 영화다. 여름 대전에 참가한 총제작비 100억대 대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 온통 마음을 뺐겨 무려 8년을 준비했던 허진호 감독의 힘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허진호표 멜로가 아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는 반응이 상당하다. 허진호 감독은 그녀의 기구한 삶에도 이 영화는 결코 새드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관객의 평가를 기다렸다.

-'덕혜옹주'가 개봉 첫날 3위로 출발했다. 상승세는 느껴진다.


▶누가 그랬다. 우리 영화도 덕헤옹주의 삶만큼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매일 관객수 확인하고 있는 게 지질하기 하지만 그러고 있다.(웃음)

-누군가는 '덕혜옹주'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분명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다르다, 아니다'는 반응을 보인다.

▶저도 그런 반응들을 봤다. 후반부는 역시 내가 만든 영화가 같다는 사람들도 있고, '덕혜옹주'가 제 영화인지 몰랐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 한 사람을 내세운 타이틀롤 자체가 주는 이질감도 있었던 것 같다.

-일단 멜로에서 벗어났으니까.

▶멜로를 만들어 왔을 뿐 굳이 러브스로리를 해야겠다 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멜로적'인 사람도 아니고. 일상에서 이야깃거리를 찾다보면 남녀 주연배우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감정 변화를 표현해 왔다고 생각한다. 큰 작품을 하면서도 늘상 해보고 싶은 이야기이기는 하다.

-많이 울었다는 반응이 상당하다.

▶신파를 만들어내야겠다 생각한 부분도 분명 있다. 덕혜가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는 장면을 뒤에서 보여준다거나 하긴 했지만, 전보다 감정들이 많이, 세게 나온다. 손예진의 영향도 크다. 제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감정을 세게 가져갔던 영화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보다. 많이 운다는 게 좋은 건가 싶긴 하지만.

-관객들이 인물의 감정을 잘 따라갔다는 이야기는 맞을 것 같다.

▶많은 분이 울었다는 공항신은 이 영화를 시작한 지점이다. 그저 어렸을 적 아이돌처럼 사랑받는 존재가 기구하게 살았고 딸까지 자살했고… 이런 이야기였다면 영화를 안 만들었을 것 같다. 공항을 통해 덕혜가 돌아올 때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그가 돌아온다는 것, 그를 부르는 '아기씨'라는 단어는 이 영화를 만들어 간 출발이기도 했다. 그래서 염두에 두고 '너를 다시 찾을 것이다' 이런 대사도 넣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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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눈물을 참기 어렵더라.

▶촬영 땐 할머니 보조연기자들이 많이 오셨다. 사실 이 분들 연기 지도하기가 어렵다. 조감독이 먼저 설명했다. '이 분이 13살 때 떠나서 38년 만에 귀국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상궁이다, 아마 '아기씨'라고 할 것 같다. 공주님이라고도 할 거다…' 등등. 그런데 이 할머니들이 엄청나게 우셨다. 계속 찍는데 계속 우셨다. 표정들을 보면 울면서 슬퍼하고 좋아하고 계신다. 이게 우리 이야기의 힘인 것 같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기라는 게 어떤 설정에 몰입한다면 누구나 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손예진도 후시 녹음을 하며 울기에 '왜 자기 연기를 보며 그렇게 우나' 했는데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상황이 슬펐던 거지.

-영화의 출발이나 다름없는 장면인 만큼 실제 비행기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덕혜옹주를 담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텐데.

▶예산 문제가 있으니까. 굉장히 큰 세트를 지을 생각도 있었지만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어서 실제 공항에서 촬영했다. 공항 촬영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선 하나만 넘어가도 한참을 다시 수속해 돌아가서 들어와야 하더라.

-손예진에 대한 호평이 상당하다.

▶'외출' 이후 6년 만의 작업이다. 영화 내용상으로도 그렇지만 현장에서도 '내가 이 영화를 책임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도 중심을 지키면서 함께하는 사람도 배려하더라. 그런 점에서 굉장히 성장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연기도 굉장히 강하고 힘있게 잘 했다. '비밀은 없다'에서도 봤지만, 세고 굵은 연기를 하더라. 신기 같은 게 느껴져서 접신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 눈빛이 약간 달라지는 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서 손예진이라는 모습이 없어진 것 같았다. 촬영도 진짜 고생했다. 시모노세키 항에서는 그 중요한 장면을 하루 만에 찍어야 했으니.

-화제가 됐던 손예진의 직접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더라.

▶감독님, 우리 영화 왜 이렇게 찍어요 하고 묻더라. 이야기했다. 여자 주인공인데다 덕혜라는 인물이 위인도,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드라마가 많지도 않고… 대중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큰 예산을 가져갈 수 없는 것 같고…. 영화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그 이유가 컸는데 손예진 본인이 투자를 알아봐도 되겠냐고 하더라.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마음인 거다. 물론 영화가 잘 될거란 믿음도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의도는 순수했지만 그 정도 계산이야 했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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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 사진=이동훈 기자


-남자들에게 먼저 호감을 표현하곤 했던, 이전 영화 속 당찬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도 비친다.

▶김소현이 한 어린 덕혜가 장한이가 피아노를 못 치는데도 '잘 치시네요' 하고 먼저 이야기를 한다. 한택수에게도 '이 놈'이라는 표현을 쓴다. 손예진이 하는 성인 덕혜로 넘어가며 무기력하게보이는 느낌이 있다. 이방자 여사도 어렸을 적 똑똑하고 활발했던 분이 일본으로 온 뒤 말이 없어졌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남편 소 다케유키와 관련해 쓴 혼마 야스코의 책을 읽어보면 그가 덕혜옹주를 사랑했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에도 '그냥 행복하게 살았어도 괜찮을 텐데 왜 못 그랬을까' 하는 대사가 나온다. 저 역시 그 질문을 갖고 있었다. 덕혜에게 조국이, 왕실이, 끝까지 가져가려고 했던 자존심이 무엇이었을까.

-그 때문일까. 서럽고 무력한 처지지만 덕혜도 주체적인 면모를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인 반면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극화된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자료나 에피소드가 너무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게 그거다. 극화를 위해서도 개연성과 정당성이 필요했고,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다. 덕혜가 독립운동을 했다든지 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친일연설을 하게 되는 대목 또한 기록에 없는 내용인데.

▶기록은 없지만 그녀 역시 분명 이용당했을 것 같았다. 그런 연설을 했을 수도 있고,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잘린 손가락으로 일본인들이 공기놀이를 했다는 증언이 있을 만큼 비참한 생활을 한 것도 사실이니까. 덕혜가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고 힘을 주는 지금 구성은 덕혜가 뭔가 하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겼다. 13살 나이에 원수의 나라에 와서 살며 반감이 있었을 것이고 자존심 있는 덕혜가 한번은 마음 속으로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최소한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비현실적인 건 김장한 쪽이다. 덕혜와 정혼할 뻔했고 육사 출신 엘리트에 알고보면 독립운동가다. 심지어 딱히 멜로도 없는데 헌신적인 순정파다.

▶박해일과 그 이야기를 하긴 했다. (웃음) 왕조를 회복시키려했던 복벽주의까지는 아니었어도 충성심이 있는 인물로 생각했다. 멜로로 만들면 그 쪽으로 치우칠 것 같더라. '기자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요' 하며 덕혜를 조국에 데려오는데 자칫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는 느낌으로 명분이 흐려질 것 같았다. 찍었다 뺀 키스신은 '이게 마지막인가' 하는 느낌으로 손예진이 먼저 입술을 대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인물이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건 박해일이란 배우 자체의 힘도 컸던 것 같다. 박해일 자체가 개연성이랄까.

▶맞다. 박해일이 '박선비' 느낌이 있지 않나. 술집에서 긴 시간 술을 마셔도 긴 시간 꼿꼿하게 앉아서 '하하하' 하며 마신다. 취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손에진 정상훈 윤제문 라미란 다 좋아했다. 나도 좋아하고.(웃음) 삶 자체가 바르고 잔머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란 느낌이다. 박해일 자체가 개연성 같은 느낌이 있다.

-관객들이 '덕혜옹주'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

▶이 영화가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봤으면 좋겠다. 덕혜옹주의 삶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고통과 비극들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마지막엔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고, 쓸쓸하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 해피엔딩이라 하긴 그렇지만 새드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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