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아닌 정우가 불쑥불쑥..이 악물고 눈물 참았죠"(인터뷰)

실화사건 다룬 영화 '재심'의 정우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2.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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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의 정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정우(37)는 눈물이 많다.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은 특히나 더 자꾸 눈물이 나는 영화다. 알려졌다시피 '재심'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목격자였던 10대 소년이 수사 과정에서 살인범이란 누명을 쓰고 무려 10년간 옥살이를 했던 사연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등을 통해 공분을 자아낸 바 있다. 정우는 이 사건 재심의 실제 담당 변호사와 이름마저 같은 흙수저 변호사 박준영 역을 맡았다. 먹고 살 길을 고민하던 속물이었으나 우연히 사건을 맡아 재심을 추진하며 먹차오르는 뭔가를 경험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모든 촬영을 마쳤건만 그는 영화 속 몇몇 순간, 몇몇 대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컥 눈물이 난다. 촬영 때부터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지려고 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간중간 대사를 내뱉을 때 그냥 개인 정우가 나와서 울컥 울컥 했을 때가 있었어요. 당사자인 현우(강하늘 분)에게 '내가 니 변호사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고요, '전재산 받아본 적 있습니까' 할 때도 그랬고요. 새로운 공간에서 그 대사를 내뱉으면 또 울컥해져요."


변호사 박준영이 아니라 정우가 그 상황에 놓였으면 어땠을까. 대사만 생각해도 목이 멘다던 정우가 '푹'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를 쳤다. "준영이는 뒤에 한 번 울잖아요. 제가 변호사였으면 아주 진작에, 그냥 계속 울고 그랬을 거예요." 연기 도중 울음이 나오려고 하면 사실 다른 방법이 없다. 정우는 '으…'하고 이를 악물며 참았다고 시범까지 해 보였다.

"시나리오를 접하기 전엔 정확히 이 사건을 알지 못했어요.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실화라는 걸 들었어요. 많이 놀랐죠. 충격적이기도 하고요. 가족분들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 감정이 촬영을 하며 쌓였던 것 같아요. 보통 작품을 하면 배역에 빠져 지낸다고 하잖아요. 저는 평소 그걸 잘 의식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선 배역보다도 전체적인 영화의 감정이 겹겹이 쌓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 감정이 관객들의 감정보다 과하면 안되니까, 억누르면서 미세하게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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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의 정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영화 초반 준영이 가볍고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정우의 아이디어가 한 몫을 했다. 시나리오는 다소 달랐지만, 무거운 소재에 캐릭터까지 무거우면 2시간 넘게 관객이 영화를 즐기며 따라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퍼머머리 헤어스타일도 직접 제안했다. 감독 또한 동의했다. 하지만 실화와 실존인물이란 늘 더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소재다.

"제가 연기하는 모습이 실제 변호사님 이미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감독님이 부담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매 신마다 이게 과한 거 아닌가, 덜한 것 아닌가 하며 여러가지 버전으로 찍었어요. 특히 초중반까진 버전이 몇 가지 있었는데, 코믹하다기보다는 허술해 보이는 속물 근성을 담으려 했어요. 자칫 잘못해서 준영이 비호감으로 느껴지면 안되잖아요. 연민의 정을 느껴야 호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을 잘 해주셔서 과하지 않게 묻어난 것 같아요. 솔직히 연기는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몇 가지 버전을 두고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

잘 먹고 잘 사는 것 외에 별 관심이 없었던 변호사가 억울한 약자의 사연을 접하고 사건에 뛰어들면서 인생 전체가 바뀌는 '재심'의 구조는 송강호 주연의 1000만 영화 '변호인'을 떠오르게도 한다. 극의 전개나 심지어 몇몇 대사까지도 '변호인'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다. 정우 역시 느끼지 않았을까. 정우는 "연급되는 자체가 영광"이라며 몸을 사렸다. 송강호에게는 꼬박꼬박 '선배님' 호칭을 붙이며 존경심을 드러내 마지 않았다. .

"송강호 선배님의 '변호인'이란 작품을 굉장히 감명 깊게 봤어요. 몇 번을 봤어요. 평소에도 존경하는 선배님이시고. 같이 언급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광이죠. 질문을 해 주셨으니까 대답하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건데, ('변호인'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려고 했어요. 다르다고 생각해야 했어요. 그게 제 살 길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변호인'에서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겠어요. 다만 '재심'에선 다른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제게도 다른 관객께도 더 좋지 않을까 했어요. '변호인'이란 영화는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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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의 정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그 연장선상이었을까. 정우가 심혈을 기울였던 대목은 하나 있다. 준영의 변화 과정을 서서히 그려내는 것이다. 한 눈에 드러나는 변화의 계기, 시점이 없는 건 '재심'의 미덕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정확한 포인트가 있어야 관객에게는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탓이다. 정우는 그러나 영화의 취지에 십분 공감했다.

"우리 영화는 속물적인 인물이 현우의 아픔을 믿고 이해하기까지를 그린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라는 것이 '나 오늘부터 너를 믿을게'라 말한들 그게 바로 마음이 바뀔까. '내가 오늘부터 니 변화사다'라고 하면 갑자기 정의로움에 불타게 될까. 과연 그런 히어로 같은 것이 준영의 모습일까. 아닐 것 같아요. 처음엔 내 이익을 위해 접근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게 잘못됐네 마음이 동요되고, 현우의 가족까지 알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그런 진심이 조금씩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요. 전 준영이 '내가 오늘부터 니 변호사다' 하는 순간도 약간의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신뢰가 깨지고 현우를 의심하기도 하잖아요. 전 진짜 사람이 저럴 수 있겠구나, 거기서 설득력을 느꼈어요. 다만 자극적인 느낌을 덜하겠다 했고요."

그렇게, 진짜처럼,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찍어낸 영화가 드디어 관객과 만난다. 정우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싶다기보다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작은 바람을 전했다. '재심'의 진심은 어디까지 가 닿을까. 영화는 오는 15일 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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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의 정우 /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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