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세븐'이 미국 시장에 통한 이유

이덕규 객원기자 / 입력 : 2019.02.2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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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세븐(Epic Seven)'이 미국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매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정확히 2월 19일 기준으로 구글 플레이 7위, 애플 앱스토어 9위다. 한국 게임으로는 컴투스 '서머너즈 워(Summoners War)'에 이어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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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미국 모바일게임 시장은 국내 게임 불모지에 가까웠다. 유저 성향이 국내 유저와 확연히 다른 데다 네트워크 환경도 국내에 비해 열악해 공략이 어려운 시장으로 꼽혔다. 그 대안으로 영어권 국가에서 인지도가 높은 '해리포터', '스타워즈' 등 유명 IP를 기반으로 개발된 게임이 선봉에 나섰지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미국 유저가 멀티 콘텐츠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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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애플 앱스토어 매출차트(출처: App Annie)
미국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차트는 개성이 뚜렷하다. 다른 국가 매출 차트에서는 RPG가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하는데, 미국 매출 차트는 심플한 캐주얼 게임이 강세를 보인다.

실제로 차트를 살펴보면 대부분 순한 약육강식 게임인 'io'시리즈부터 '캔디 크러쉬 사가', 'BLAST'류 퍼즐 등 캐주얼 게임이 대부분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이나 'Roblox',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역시 상위에 올라 있으나 이런 특이 케이스 외에는 플레이타임이 짧고 단순한 게임이 대다수다. 상술한 게임들이 국내 시장에서는 그리 매출 순위가 높지 않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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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선택지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 게임, Episodes
캐주얼이 아닌 경우는 일정 요소를 특화시킨 게임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스토리라인을 강조한 시뮬레이션 장르인 'Episodes'나 'Choices'가 있고, 전통적으로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얻어 왔던 '전략형' 게임들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바일 MMORPG계의 터줏대감격인 '오더앤카오스'나, 슈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을 위시한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들이다.

정리하자면 '선택과 집중'이다. 국내 시장처럼 하나의 게임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있는 멀티콘텐츠 게임보다는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콘텐츠가 대중적이든 마니악하든 오로지 개발사가 상정한 핵심에만 초점을 맞춘다.

극과 극의 취향이 공존하는 차트인 셈이다. 그래서 국내보다 다양한 장르가 포진하지만, 오히려 수익 모델이 다양하고 이른바 '돈 쓸 구석이 많은' RPG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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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은 갓겜이 맞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은 국내에서도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즉, 잘 만든 게임은 미국 한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슈퍼셀의 간판 작품인 '클래시 오브 클랜'을 비롯한 '클래시 로얄', 최근 출시된 '브롤스타즈'는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권에 안착한 지 오래다. 국내 유저들이 MMORPG, 또는 수집형 RPG 일색인 내수 시장 환경에 다소 지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미 유저는 상황이 반대다. 국내와 달리, 앞서 소개한 차트에서도 보이듯 단 하나에만 집중한 게임이 대부분이다. 유력 업체로 언급되는 개발사 중에서도 수준 높은 RPG를 만드는 곳이 없다. 심플한 퍼즐에도 질리고, 일정 콘텐츠를 반복하는 데 질렸다면? 거의 종합선물세트에 육박할 만큼 '할 일 많은' RPG에 눈길이 가지 않을까?

환상의 타이밍을 잡은 에픽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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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미국 모바일게임 유저들은 멀티 콘텐츠 RPG, 이른바 '한국형 수집 RPG'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에픽세븐'은 그 시기를 아주 잘 파고들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에픽세븐'이 유명한 IP거나 범접 불가한 수준의 명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력적인 라이브 2D 비주얼을 채택하고 수집형 RPG에 기대되는 대부분 콘텐츠를 갖췄지만, 현재로써는 명작보다는 수작의 포지션에 가깝다.

사실 과거 미국 모바일게임 시장의 경향을 생각하면 인기를 얻을 만한 타이틀은 아니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사례가 존재하지만, 이 경우는 IP 자체의 힘이 강력한 작품이라 '에픽세븐'과 동일 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실제로 현재 미국 양대 마켓 매출차트를 1위부터 100위까지 쭉 훑어보면 익숙한 타이틀을 딱 세개 발견할 수 있다. '서머너즈 워', '라그나로크 M', '에픽세븐' 3개이며 이 외에 국산 타이틀은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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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너즈 워'의 경우 글로벌 출시 이후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내 왔던 게임이다. 수집형 RPG 쪽에서는 꽤 오래된 게임이지만, 유사 장르 게임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반면 2014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선전해 오고 있는 몇 안되는 장수게임 중 하나다. 그 이유는 타 수집형 RPG에 비해 전략성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었다.

때문에 전략 및 밸런스에 초점을 맞춘 업데이트를 진행해 왔고, 본래 택틱류 게임을 선호하던 미국 유저의 입맛에 맞게 변했다. 즉, 한국보다는 미국 취향에 더 들어맞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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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로크 M'은 IP의 인지도가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 RPG의 전형이 미국 시장의 호응을 끌어냈다는 사실이다. '서머너즈 워'는 강한 전략성으로, '라그나로크 M'은 IP의 힘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 담음새만 달랐을 뿐 본래 미국 시장이 전통적으로 소비해 오던 게임이다. 그러나 '에픽세븐'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 개발사가 만든 철저한 한국 수집형 RPG임에도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건, 미국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사실 '에픽세븐'을 접하는 국내 유저들의 입에서 '참신함'과 '새로움'이 나올 리는 없다. 하지만 미국 유저들에게는, 그럴 수 있다.

미국 시장, 모바일 RPG 블루오션?

요컨대 '에픽세븐'이 명작이어서, 또는 대규모 마케팅 활동이 주효해서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많은 국내 대기업이 철저한 현지화와 대규모 마케팅을 무기로 미국 시장을 두드렸지만 '에픽세븐' 정도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까.

재미있게도 '에픽세븐'의 매출 곡선은 미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글로벌 출시 초기 양대 마켓 매출 10위권 내로 빠르게 진입했다가, 현재는 20위권으로 내려온 상태다. 이른바 '페이트 그랜드 오더' 식 랜덤박스 모델은 미국에서도 썩 좋지 않아서 그에 대한 반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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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세븐’ 북미 시장 랭킹 추이: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상위 랭킹은 유지 중이다
그럼에도 '에픽세븐'이 소비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의 요구와 게임성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모바일게임 유저는 '전략'과 '스토리'를 선호하고, '에픽세븐'에는 둘 다 있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유저들에게 계속해서 놀 거리와 할 일을 제시했다.

더 놀라운 점은 해외 시장 진출 시에 필수로 여겨지는 현지화를 면밀히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보통 현지화는 해외 진출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며 많은 개발사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에픽세븐'은 특별한 현지화 없이도 미국 시장에 안착했다. 소위 '운때'가 잘 맞은 셈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미국 유저가 그만큼 모바일 RPG를 원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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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 점차 파이가 줄어드는 국내 시장을 바라보며 많은 개발사는 글로벌 진출을 꿈꿔 왔다.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이었고, 아시아를 거쳐 미국까지 왔다.

일본은 게임을 새로 만들 정도의 현지화를 거치지 않으면 공략이 어려운 시장이고, 중국은 압도적인 규모와 정서의 유사성으로 각광받아왔지만 국가 단위의 규제 및 판호 정책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었다. 반면 미국은 국내와 문화가 판이하고 네트워크 인프라 문제로 대기업이 아니면 섣불리 다가서기 힘든 시장이었지만, 어쩌면 앞서 언급한 시장보다 멀티 콘텐츠 RPG를 더욱 잘 소화할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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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타일이 미국에 통하다니
미국 시장은 아시아권 시장에 비해 어렵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보자. 미국 시장에는 수준 높은 시나리오 기반의 수집형 RPG가 없다. 대부분 유저가 콘솔을 통해 RPG를 즐기리라 여겨왔지만, 이제는 미국 유저도 할 거리가 넘치는 모바일 RPG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는 단계에 왔다.

'에픽세븐'보다 뛰어난 퀄리티를 가진 국산 게임도 많고, 그들 중에서는 해외 유저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타이틀이 있을 것이다. '에픽세븐'의 이번 성과가 여타 게임들의 해외 진출, 특히 미국 시장 진출에 있어 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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