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문명 6’의 신규 확장팩, ‘문명 6: 몰려드는 폭풍’은 본편에 감칠맛을 살려주는 좋은 조미료라 생각한다. 확장팩으로 추가된 자연재해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선택을 고려하게 하며, 새로이 추가된 외교 승리와 좀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후반부 플레이 양상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게임 후반부를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본편에서 단조로운 플레이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문명 6: 몰려드는 폭풍’을 추천한다.
자연재해와 지형 효과는 '몰려드는 폭풍'이 본편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콘텐츠다. 새롭게 추가된 자연재해 시스템은 매 턴마다 무작위 확률로 허리케인, 홍수, 화산 분화, 가뭄 등의 다양한 재해를 발생시킨다. 자연재해의 종류에 따라 피해를 끼치는 방식과 지속 기간도 달라지며, 화산이나 홍수처럼 특정 타일에서만 발생하는 자연재해도 존재한다. 자연재해는 타일에 건설된 시설에 피해를 주거나 파괴하기도 하고, 도시의 시민 수를 감소시키거나 효과 반경 내의 유닛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재해 시스템이 판에 박힌 전략을 방해하기 위해 추가된, 개발자의 악의가 담긴 시스템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홍수를 예로 들어보겠다. 범람하기 쉬운 타일에 위치한 도시는 강에 인접한 타일을 통해 식량 산출량에서 큰 이점을 얻을 수 있고, 초반부터 성장에 강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화산이나 홍수 그리고 폭풍 등은 확률적으로 타일의 자원 산출량을 증가시키기도 하기에, 위기를 발판삼을 능력을 갖췄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홍수로 인한 피해와 도시 복구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즉, 좋은 타일에는 그만큼의 위기를 동반하게끔 했다 할 수 있다. 이전 DLC인 ‘흥망성쇠’에서 알박기 형식의 도시 개척을 제한하고 국경 도시의 관리를 까다롭게 만들었다면, 이번 ‘몰려드는 폭풍’은 도시 개척과 운영에 있어 위기를 감수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DLC다.
지형이 게임에 끼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들도 대거 추가되었다. 공병 유닛으로 산악 타일을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터널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댐 특수 지구는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건설할 필요가 있으며, 해상타일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운하 타일, 해양 타일에 건설 가능한 시스테드(해양도시), 쓸모없는 타일에는 풍력이나 지열 및 태양열 발전소 등이 추가되었다.
이 중 후반부에 추가되는 친환경 발전 시설과 시스테드는 쓸모없는 타일을 유의미하게 바꿀 수 있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몰려드는 폭풍'의 후반부 주요 시스템인 기후 변화를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유용한 시설들이다. '몰려드는 폭풍'에서는 현실의 기후 변화(혹은 지구온난화)처럼 문명들이 생성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총 7단계에 걸쳐 기후가 변화하고, 이에 따라 지도상에 표기된 타일들이 점차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지도상의 빙하도 사라져가며, 자연재해가 발생할 확률과 재해 강도도 증가하기 시작한다.
탄소 배출은 전력을 생성하기 위해 발전소를 가동할 때 발생하는데, 기후 변화가 두려워 전력을 포기할 일이 없을 정도로 전력을 소모해서 얻는 보너스 효과는 강력하다. ‘몰려드는 폭풍’에서는 게임 후반부 건물들의 보너스 효과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력이 요구되는데, 전력은 석탄, 석유, 원자력, 친환경 발전 등을 통해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석탄과 석유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탄소를 배출하기에 흔하디흔한 석탄 발전소만 운영하다 보면 1900년이 채 안 되어 모든 해수면이 상승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몰려드는 폭풍'은 전력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과 전력 보너스를 유지하려는 경쟁으로 게임 후반부를 시작하게 되며. 그 이후에는 기후 변화 대처 방안이 갖춰질 때까지 탄소 배출량을 조절하거나, 발전에 사용되는 자원을 다른 곳에 활용하기 위해 친환경 발전에 집중하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해양 타일이 된 타일을 활용하기 위해 시스테드를 건설하게 된다. 이렇듯 '몰려드는 폭풍'에서는 게임 후반의 내정에서도 타일 개발과 지형 활용의 비중이 매우 커졌으며, 전력과 탄소 배출 그리고 기후 변화 이 세 시스템의 밀접한 관계를 세심히 관리하는 일도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 재해 강도를 극단적으로 높게 설정한 게 아니거나, 침수될 타일이 없는 경우에는 기후 변화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점도 꼽을 수 있다. 특히 침수될 타일이 없는 경우에는 기후 변화는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들을 견제할 수 있는 편법 아닌 편법으로 사용되곤 한다. 게다가 문명 시리즈의 시간 흐름이 실제 역사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듯이,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지나치게 빨리 진행된다는 느낌도 종종 들곤 한다. 거기에 게임 시작부터 (즉 고대 시대부터) 어느 타일들이 침수될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기에, 침수될 타일을 피해 개발하면 플레이 양상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리곤 한다.
외교 승리는 '문명 5: 멋진 신세계'에 있었던 외교 승리를 개선하여, 세계 의회와 세계 경쟁을 통해 획득한 외교 승리 점수를 모아 달성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큰 틀만 놓고 보면 '문명 5: 멋진 신세계'의 세계 의회처럼 안건을 통해 다양한 보너스나 페널티를 생성하고, 이를 플레이어 문명의 발전에 활용하거나 타 문명을 견제하는데 활용하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문명 6'의 플레이 방식과 시스템에 맞춰 세부적인 점을 대폭 수정한 점이 큰 차이라 볼 수 있다.
가령 '문명 5: 멋진 신세계'에서는 외교 승리를 위해서 일정량의 대표단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동맹 도시 국가 확보에 주력해야 했는데. 이번 '문명 6: 몰려드는 폭풍'에서는 외교 승리를 위해선 세계 의회와 세계 경쟁을 통해 외교 승리 점수를 일정량 모아야 승리하는 점으로 바뀌었으며, 안건에 사용되는 투표권은 대표단에서 외교적 환심이라는 신규 자원으로 대체되었다.
외교적 환심은 '외교 플레이를 위한 금'이라 정의할 수 있다. 외교적 환심은 안건을 발의하거나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금이나 전략 자원처럼 타 문명과 거래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외교적 환심은 매 턴당 일정량씩 적립되고, '문명 5: 멋진 신세계'처럼 도시 국가의 종주국이 됨으로 추가적인 획득이 가능하다.
세계 의회와 세계 경쟁은 '멋진 신세계'보다 좀 더 다양해졌는데, 정확히는 '멋진 신세계'에 있던 안건들에다가 '문명 6'의 시스템과 콘텐츠에 맞는 안건들의 추가와 수정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특정 문명이 자연재해를 입거나, 도시 국가를 점령하거나, 종교를 전파하는 행위 등에 대해 타 문명의 지원을 요청하는 비상 안건을 발의할 수 있게 된 점은 '멋진 신세계'에는 없는 '몰려드는 폭풍'만의 신규 시스템이다.
외교 승리와 세계 의회의 변화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 국가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타 문명과 외교 관계가 좋지 못하더라도, 거래를 통해 외교적 환심을 확보함으로 현실적인(?) 패권 외교를 가능케 해준다. 또한 비상 안건 발의를 활용해 타 문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데, 이로 견제도 하고 비상 안건 보너스도 챙기는 일거양득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몰려드는 폭풍'에서 패권주의 성향의 외교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비상 안건을 통한 문명 간의 경쟁은 현실 세계의 이념싸움 같은 양상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외교적 환심은 돈과 자원으로 쉽게 거래할 수 있고 도시 국가는 외교적 환심을 생산하는 거로 끝인지라, 문명에서 나오는 산출량이 적으면 외교적 승리를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외교적 환심을 얻을 방법이 다양하긴 하나, 세계 의회와 비상 안건을 원하는 대로 꾸준히 가져가기 위해선 많은 양의 외교적 환심을 보유할 필요가 있고, 결국 외교적 환심을 자원 거래로 획득하거나 비상 안건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양의 자원과 산출량을 확보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문명 5: 멋진 신세계’의 외교 승리는 ‘문명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문명이 누구인가’를 뽑는 느낌인데, ‘문명 6: 몰려드는 폭풍’의 외교 승리가 ‘누가 외교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일장일단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는 외교 승리 점수를 제거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
오스만, 프랑스와 영국의 신규 지도자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처럼 ‘흥망성쇠’에 있던 콘텐츠와 연관이 있는 문명도 등장했다. 즉, ‘몰려드는 폭풍’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라도, ‘흥망성쇠’에서 도입된 총독과 충성도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추가된 문명들이 강세를 보이는 시대, 내정에 강한 문명과 외부 확장에 강한 문명의 수는 나름대로 균형 있게 잘 배분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확장팩을 통해 새로이 추가된 문명이란 특성상, ‘문명 6’의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요구하고 있는데. 만약 ‘흥망성쇠’를 해본 경험이 없거나 ‘문명 6’의 시스템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 ‘몰려드는 폭풍’의 신규 문명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거기다 ‘몰려드는 폭풍’에서 추가된 미래 시대까지 고려하면, ‘문명 6’과 대폭 달라진 후반부 전략에 적응하는 일에 적지 않은 노력이 들것이라 생각한다.
21세기의 자연재해라 할 수 있는 미세먼지가 등장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